지하철 연착에 대한 고찰

by 오제이


폭염이 계속된다. 이런 날에는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에어컨 아래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출퇴근 단말기에 퇴근을 인증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실시간 지하철 앱을 열었다. 열차는 없었다. 앞서가는 열차도, 뒤따르는 열차도 7정거장 씩 늘어져 있었다. 오늘 퇴근길은 지옥이겠구나.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총알처럼 달렸다. 배차 간격이 이렇게 벌어졌다면 혹시 중간에 긴급 편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희망 하나만을 품고. 자전거를 세우고 플랫폼에 섰지만, 전광판에는 여전히 ‘열차 없음’이라는 글자가 무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기적은 없었다. 이럴 수가.


서울 북부는 베드타운인데도 이상할 만큼 배차 간격이 좋지 않다. 괜히 투덜대고 싶었지만, 그 투정이 바꿔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불만을 삼키고 조용히 판단을 정리해 본다. 동대문에서 갈아탄 후 버스를 탈까. 아니면 석계에서 갈아탈까.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과 시원하게 가고 싶다는 마음이 겹쳐,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이 더위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건 오히려 더 지치는 일일지도 모른다. 서 있기조차 힘든 날씨다. 나는 결국 차분히 열차를 기다리기로 한다. 전광판에는 ‘광운대행’이라는 문구가 떴다. 우리 동네까지는 가지 않지만, 비교적 가까운 곳까지는 데려다준다. 이대로 다음 열차를 기다리다가는 분명 만원 지하철일 테니, 광운대행을 타고 중간에 갈아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석계역에서 내려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소요산행’ 열차는 아직 동대문에 있었다. 앞으로 15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석계역은 지상 역사라 햇볕이 그대로 플랫폼으로 쏟아진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바닥 위에서 사람들은 기둥과 스크린도어가 만들어주는 좁은 그림자에 간신히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 역시 그 그림자 아래로 들어가 서 있었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그림자조차 무색하게 했다.


나는 인내심을 끌어모아 책을 펼쳤다. 나보다 먼저 와 있던 젊은 여성은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플랫폼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목덜미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더워 보이는 헤드폰을 벗으면 조금 나아질 텐데, 이 폭염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묘하게 멋지게 느껴진다.


드디어 열차가 도착했다. 예상대로 만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에어컨이 최대로 작동 중이었다. 사람들 틈에 끼여 있어도 온도가 낮으니 그리 불쾌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팔짱을 끼고 시간만이 얼른 흘러가기를 바랐다. 몇 정거장을 그렇게 둥둥 떠다니듯 버텼고, 마침내 우리 동네에 도착했다. 이제 조금만 걸으면 집이다.



집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평소와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일찍 온 날보다는 10분, 보통날보다는 5분 정도 늦은 시각이었다. 만약 조급한 마음에 버스를 갈아탔거나 다른 노선을 이용했더라면 오히려 더 늦거나, 이 더위 속에 완전히 지쳐버렸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이렇게, 현실에 순응하며 조용히 기다리는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든다. 초조한 마음에 경로를 바꾸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5분 먼저 가겠다고 욕심을 내다가 10분 늦게 도착한 경험, 나는 수도 없이 겪어봤다. 고속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굳이 끼어들고 과속을 해도 도착 시간은 고작 5분 차이다. 그 5분이 정말 그만한 위험을 감수할 만큼 소중한 시간일까?


내가 아끼고 싶은 5분은, 하루 중에 다른 데서 얼마든지 절약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시야가 좁아진다. 그런 순간일수록 넓은 시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다. 오늘은 겨우 5분 늦었지만, 그 5분이 내게 알려준 건 ‘마음의 여유가 만들어준 평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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