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연차를 내고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빈둥거렸다.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늦잠을 잤고, 간식거리를 마음껏 꺼내 먹으며 책을 넘기고 영화를 틀었다. 부지런히 허투루 보내는 게 오늘의 유일한 목표였다. 11시간 넘게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았다. 낮잠 한 번 없이 온종일 쾌활하고 명랑하게 살았다.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날이면 으레 불안함이 밀려오기 마련인데, 오늘은 그 감정마저도 외면하기로 했다. 불안에 휘둘리며 소모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회사 알람부터 꺼두었다. 덕분에 단 한 통의 메시지도 받지 않았다. 마음껏 가벼워질 수 있는, 제한 없이 산뜻한 하루였다.
아침 햇살 조금 기울어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들 즈음, 커피 잔을 손에 쥐고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매일 올리던 출근 영상을 건너뛰어도 된다는 사실이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습관처럼 릴즈 버튼을 눌렀지만, 앱은 자꾸 꺼졌다. 몇 번을 다시 열어봐도, 다른 계정으로 접속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하루 종일 릴즈를 보지 못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내 웃음이 나왔다.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면에 묶이지 않은 하루, 어쩌면 운이 따르는 날이었다.
보통 쉬는 날이면 나는 보복 소비에 빠지곤 한다. 평소 자제했던 도파민의 향연을 만끽하려는 듯, 열량 높은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달콤한 디저트를 잔뜩 먹는다. 쉬는 날을 그냥 보내는 건 왠지 아쉽고, 뭔가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마음을 조였다. 맛있는 걸 먹고, 영상을 몰아보며 시간을 채워야 비로소 ‘잘 쉰’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점심은 계란 하나와 죽 한 그릇으로 간소하게 해결했다. 저녁도 만둣국을 끓여 먹었는데, 평소보다 만두를 절반만 넣었다. 신기하게도 더 먹고 싶다는 욕심이 들지 않았다. 부족함도, 아쉬움도 없었다. 창문을 두들기는 에어컨 바람 소리를 들으며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는데,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왜일까? 오늘은 무엇이 달랐기에 이런 평온함이 찾아온 걸까?
그동안 내가 쉼을 대했던 방식이 떠올랐다. 쫓기듯, 불안하게 쉬었던 날들이 스쳤다. 쉼이란 나만의 리듬으로 숨을 고르는 시간이어야 하는데, 나는 자꾸 타인의 시선에 맞춰 보여주듯 쉬어왔다. ‘이렇게 쉬어야 잘 쉰 거야’라는 보이지 않는 기준에 나를 끼워 맞췄다. 쉼이란 말이 ‘숨을 쉬다’에서 왔다는 설이 떠올랐다. 숨을 쉴 때 우리는 남의 호흡을 흉내 내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아무 신경 쓰지 않고, 몸이 원하는 대로 숨을 쉰다.
오늘, 나는 비로소 그런 쉼을 배웠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만의 속도로, 숨 쉬듯 편안하게 하루를 보냈다. 불안도, 의무감도 내려놓고, 그저 나로 존재하는 시간을 만끽했다. 창가에 앉아 커피 향을 음미하고,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에 빠져들고, 영화 속 장면에 조용히 웃음 지었다. 이 모든 순간, 나는 그 행위 하나에만 집중했다. 쉼이란, 결국 나를 온전히 만나는 여정이 아닐까. 오늘 나는 참 잘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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