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2살 차이 나는 사촌 동생이 있다. 어릴 적엔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 가끔 할아버지 댁에서 마주치는 정도였지만, 의외로 허물없이 지냈다. 그 꼬맹이였던 녀석을 안아주고 업어주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어느덧 사회인이 되어 회사에 취직해 밥벌이를 하고 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어느 여름밤, 우리는 할아버지 댁 마당에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다. 할아버지 댁은 말 그대로 깡시골이었다. 논과 밭 외엔 아무것도 없는 마을, 가로등마저 없는 날이면 어둠 속에서 별빛이 또렷이 드러났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던 별들 아래에서 나는 어쭙잖은 지식을 내뱉었다. “저거 다 인공위성이야. 우리나라는 공해가 심해서 별이 보일 리가 없어.” 그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던지, 그 꼬마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그 말을 믿었다.
몇 년이 흐른 뒤, 우리는 또다시 같은 하늘을 보게 되었다. 그때 문득 예전의 헛소리가 떠올랐다. 우리는 또다시 같은 밤하늘을 바라볼 일이 있었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예전에 내가 저거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고 했었지? 그거 틀린 말이었어. 진짜 별이 맞더라.” 그러자 동생은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뭐야, 나 진짜 지금까지 인공위성인 줄 알고 있었단 말이야!”라고 외쳤다.
그 말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사소했던 내 말 한마디가, 이 아이의 청춘에서 별을 빼앗았구나 싶었다. 나의 말이 누군가의 밤하늘의 풍경을 뒤바꾼 것이었다. 한동안 그 죄책감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더욱 말을 조심하게 되었다. 확신 없는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게 되었고, 꼭 말을 해야 할 때는 “이건 확실한 건 아닌데…”라는 단서를 붙인다. 누구의 마음에라도, 다시는 무심코 멍울 하나 남기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이 스며든다. 그 녀석이 내 말을 의심 없이 믿어준 그 마음, 그 순수함이 내게는 선물처럼 느껴진다. 내 말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몇 년을 살아온 그 녀석의 믿음이, 내 인생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큰 행운으로 다가온다.
미안한 마음은 여전하지만, 동시에 고맙다. 그의 믿음 덕에 나는 말의 무게를 배웠고, 더 조심스럽고 따뜻한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그날 밤 이후로, 별을 보면 동생 생각이 난다. 그전까지 그 녀석의 밤하늘에 내가 있었듯이, 앞으로의 그곳에는 그 녀석이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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