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지 님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고, 나도 하나쯤 수집할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물질적인 수집 말고, 마음으로 좋아하며 애착을 갖고 이어나갈 수 있는 정서적 수집을 하고 싶었다. (물질적 수집은 이미 많이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정서적 수집이란 이런 것이다.
‘책이나 영화를 보며 만난 좋은 문장과 감상을 수집하는 일’,
‘길에서 만난 예쁜 간판 사진을 수집하는 일’,
‘매일 다르게 펼쳐지는 하늘 풍경을 수집하는 일’
이렇게 사진이나 문장을 나만의 프레임으로 오려낸 뒤, 그때 든 생각을 더해 하나의 기록으로 남겨두는 거다. 그러면 그 기록들이 하나둘 모여 언젠가 책처럼 두꺼워질 것이고, 혹여 먼 미래에는 하나의 역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가끔 이런 재밌는 상상을 한다. 먼 훗날, 인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지성체가 지구를 거닐게 된 미래에. 과거의 모든 기록이 소실되어 인류가 그저 '잊힌 신화'가 되었을 때. 한 탐험가에 의해 나의 낡은 일기장이 발견된다. 그들은 이 작은 기록 조각을 통해 인류라는 거대한 수수께끼를 맞춰나간다는, 뭐 그런 스토리다.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어쨌든 나는 이번에 새로운 기록을 만들기로 했고, 그 주제로 정서적 수집이 될만한 무언가를 하나 정해보기로 했다. 뭐가 좋을까? 우선 내가 매일 보는 것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보기로 했다. 여행처럼 어쩌다 한 번 가는 걸 가지고 수집이라 내세우긴 어려울 테니까. 이왕이면 나의 시야에 가까이 있지만 주의를 두지 않았던 것들 속에서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마음속으론 좋아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해 온 것들. 그걸 모아봐야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냐며 하찮게 여긴 것들을 되짚어보며 그 안에서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 봤다.
처음 머릿속을 스친 건 구름이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좋아하니까. 구름을 관찰해 보는 건 어떨까? 내친김에 며칠 구름 수집을 시도해 봤다. 매일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 모양에 ‘이거다!’ 싶었다. 한동안 구름 사진을 찍으며 꽤나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 며칠이나 이어졌고, 그럴 때면 더는 수집할 게 없어 아쉬움도 늘었다.
구름 수집은 실패로 끝났다. 실패를 경험했으니 이제는 조정을 해야 할 시간. 나는 아쉬운 점을 보안할 궁리를 했다. 수집할 거릴 찾고 싶을 때 바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이왕이면 예쁘고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조금은 세부적인 카테고리로 좁힐 수 있는 건 무엇일지 고민했다.
곧이어 나는 두 번째 답을 찾았다. 들풀이었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하늘을 올려보는 것만큼 땅을 내려다보기도 좋아한다. 그러면 그때마다 길가에 들풀이 솟아올라 있는 걸 보게 되는데, 그 생명력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기운을 얻기도 한다.
‘들풀이 가진 저 기운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사진과 글과 그림을 활용한다면? 어쩐지 좋은 일이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들뜬 마음은 확신으로 이어졌고 나는 곧장 첫 번째 수집을 시작했다.
아직은 저 풀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떻게 자라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차차 알게 되겠지. 조급해 하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건 기록하겠다는 마음이니까. 나의 수집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사는 걸 기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