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가 내려서 아침 산책에 나서지 못했다. 새벽부터 요란하게 내린 비가 아침 내내 이어졌다. 나는 산책을 나가는 대신 비 멍을 하기로 했다. 우리 회사 건물 동관과 서관 사이, 그러니까 카페와 베이커리 작업실 사이에 서서 비 오는 풍경을 구경했다.
출근길 통행에 불편이 없도록 한적한 모서리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폰 없이, 타이머 없이, 그저 가만히 서서 10분 남짓 서 있었다. 가만히 있는데도 기력이 꽤 많이 소진됐다. 한자리에 우두커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건 꽤나 고된 일이었다. 초등학교 아침 조회 시간에 운동장에 오와 열을 맞춰 서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을 들었던 이후로 오랜만에 느끼는 노곤함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건 몸도 힘들지만 정신이 더 힘들다. 누가 날 이상하게 보면 어쩌나 싶어서 내심 불편한 마음이 깃든다. 괜히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고 팔짱을 끼거나 꺽다리를 짚기도 한다. 그 모습이 꼭 주의력이 바닥난 유치원생 같아 우습다.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오직 나의 상상만이 나를 지켜보고 불안하게 만든다.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주의력을 간신히 붙들어가며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집중하려 애썼다. 흩날리는 나무들과 가지런하게 내리는 빗방울 사이에서, 내 마음속에 숨죽인 채 웅크려있던 조각난 불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꺼져가는 모닥불에 젖은 장작을 넣은 것마냥, 잠시 사그라들었다가 이내 확 하고 활활 타올랐으며, 또 한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비 오는 날은 생각이 깊어지고 더 침착해지곤 한다.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마음을 차분히 만들기 때문인듯하다.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거리의 풍경도, 우산으로 온몸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리고 이 정도 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개의치 않는 새들의 움직임도. 모두 마음속에서 자장가가 되어 울려 퍼진다.
생각이 깊어지는 오후, 발등에 고개를 묻고 거닐다가, 미처 마르지 못한 물웅덩이 속에서 맑은 하늘이 나 여깃노라 인사를 건넸다. 그래 하늘은 늘 거기에 있었지. 흔들리는 건 마음일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