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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항살이 Oct 07. 2022

선 넘기는 고무줄놀이하듯

'내 문제'와 '내 병 문제' 사이의 혼란을 극대화시키는 것

  지금부터 쓸 내용은 나를 가장 많이 갉아먹는 부분인 동시에 ADHD와 관련이 있는 것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어 이야기를 꺼내기 주저되는 부분이다. 병 탓이 아닌 나의 자질 부족, 도덕성 부족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ADHD 환자가 늘 고민하는 '내 문제'와 '내 병 문제' 사이의 혼란을 극대화시키는 것. 사회성의 문제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성은 친구 관계나 학교, 일터 등의 상하 관계, 혹은 거리 있는 사람과의 격식을 갖춘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지켜질 것으로 통하는 태도, 반응 등 적정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것을 모른다. 선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할 만큼 움츠러드는가 하면, 훌쩍 뛰어넘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상대의 표정과 행동을 읽고 필요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잘 못 한다. 부족한 주의력 탓에 성장 과정에서 똑바로 학습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인간관계 상의 다양한 어려움으로 연결된다. 나에게상호작용에 있어 과하게 소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떻게 대할지 모르겠으니 아예 반응하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을 읽을 수 없는 타인에게 '반응 없음'은 하나의 냉담한 반응으로 보이기도 한다. 인사를 해도 잘 받아주지 않는 사람. 도움을 받아도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나는 충분히 가깝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차갑다는 인상을 주었다. '쿨하다'거나 '시크하다' 같은 단어로 포장되는 특성이 아니라 '사회성 없다', '예의 없다' 정도로 해석이 되는 이 인상은 결코 관계 형성에 도움되지 않는다.


  행사가 끝나고 다 같이 자리를 정리할 때 한 귀퉁이 거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꾸준히 도움을 준 사람에게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아도 됨을 말할 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놓인 나는 직접 요청받거나 지적받기 전까지 무슨 행동이 필요한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더 할 일이 있는가 - 아니오 - 끝. 내 머릿속에 있는 공식은 이게 다였다. 남들 다 일하는데 혼자 쳐다만 보는 사람. 지금껏 도와줬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없는 사람.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자연스럽게 인성의 문제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게 착하게 보이고 싶어 한다. 특히 누구에게도 책잡히기 싫어 노심초사하는 나는 가식이라도 부려서 인성에 난 구멍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 의지에 반하는 몇 번의 실패와 당혹스러움을 겪었으니 점점 눈치를 많이 보게 되었다. 눈치는 어느 정도의 사회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타고난 뇌 기능의 문제로 결코 눈치가 빠를 수 없는 상태에서 보기만 열심히 보니 매사에 불안감이 깔리고 결국 관계는 더 위축된다.



  그런가 하면 어떻게든 거리를 뛰어넘어 친밀해진 후에는 정반대의 문제가 생긴다. 한 번 말과 행동이 편해진 상대에게는 어떤 수준까지 허용되는지 잘 파악하지 못해 자주 후회를 했다. 이전에 언급한 바 있듯이 나는 흥미 있거나 아는 주제의 이야기가 들리면 대화에 불쑥 끼어들 때가 잦다. 먼저 튀어나가는 말을 막고 보다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하려면 생각의 속도보다 빠른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하려던 행동에 제동을 걸고 하지 않던 행동에 시동을 거는 것은 ADHD 환자들이 어려워하는 일인 데다, 나는 주의력 검사에서 특별히 그 부분이 낮게 나오기까지 했었다. 평소 조용하기까지 하던 사람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대화에 끼어들고는 돌아서면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부끄러워한다, 이것이 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친하다고 생각해서 친구에게 막말이나 기분 나쁠 행동을 하고 절교당하기 일쑤였다. 공감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당해도 기분 나빴을 법한 행동들이 맞았다. 그러나 그것을 표출할 때는 적당함에 대한 감을 잡을 수도 없었고 생각나는 말이 나가는 것을 막지도 못했다. 한 학년이 시작되면 같은 반 친구를 곧 만들었지만 오래 지속하고 깊은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드물었다. 드러나게 싸우거나 점점 거리두기를 당하고, 그것이 내 탓임을 느끼는 경험도 늘어났다. 관계에서의 실패 경험은 너무나 쉽게 일반화되어서, 나는 아주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쌓아야 할 때에도 상대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달고 살았다. 나의 촉이 좋은 것인지 그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 구분할 수도 없으니 불안감은 늘어만 갔다.



  불안해하고 어려워하면서도 생각을 거치지 않은 말과 행동은 불쑥 튀어나온다. 이 양 극단 사이에서 나는 구불구불한 선을 그리며 겨우 중심을 맞추고 살아가는 중이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긴 하지만, 이런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긍정적인 평가와 성공 경험의 누적이었다. 몇 번 교류한 상대가 나에게 사람 대 사람으로 호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 때,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잔뜩 긴장하고 마주한 상대가 반갑게 인사할 때, 나의 어떤 행동에서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전혀 그렇지 않음을 표현할 때 나는 조금씩 불안감을 깨고 안정을 찾는다.


  ADHD의 증상들이 표출적으로 나타나 문제가 될 때는 상황이 다르겠지만, 나는 증상들로 인해 문제를 만들고 관계에서의 실패를 겪을까 봐 지나치게 스스로를 숨기는 방향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지금도 적당히 자신을 개방하고 상대가 나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키우는 연습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 도움이 된 것은 기본적으로 나에게 호감을 가질 준비가 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었다. 가령 같은 관심사를 교류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이라면, 상대를 평가하기보다는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더 무게를 둘 것이다. 그리고 관계의 양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사람을 겪고 관찰하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감을 얻는다.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약을 먹으며 평소 같으면 불쑥 튀어나왔을 말이나 행동을 생각으로만 하고 끝낼 때가 꽤 많아졌다. 인간관계에서 여러 번 실패를 겪으며 말과 행동을 망설이게 된 탓도 있지만, 치료의 도움으로 망설이기보다는 잠시 숨을 고를 여유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표현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 조금은 명료하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단순히 충동 억제로만 효과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논쟁이 생겨 화가 났을 때 상황을 완전히 파국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여러 말들이 튀어나오려 하지만 충동을 누를 수 있고, 혼자만의 세계에 들어가 입을 닫고 스스로를 생각의 급류에 흘려버리기 전에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그리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지 생각해보면 나의 문제 해결 방식이 조금은 변했음이 느껴져 뿌듯하기도 하다.


  

  이 글을 잇는 데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꾸만 발목을 잡는 것은 '내가 쓰고 있는 내용이 ADHD와 연관 지을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혼자만의 문제에 질병의 이름을 붙여 도움도 되지 않고 공감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글을 쓰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의 여러 문제들이 ADHD 때문인지, 아니면 남들도 이 정도는 견디고 사는지, 단지 나의 모자람과 나쁜 성격 때문인 건지 혼란스러워하는 것 자체가 ADHD 환자들이 늘 가지고 있는 고민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최대한 글을 마무리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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