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진창에서 기어 나오기

오랜만입니다

by 어항살이

마지막 글을 쓴 지 3년이 넘었다. 나에게 꾸준한 연재 같은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방치해 둔 곳에서 먼지를 좀 털어내 본다. 늘 비슷비슷한 삶을 사느라 해가 가는 감각도 둔해졌는데 그 사이에 손안에 인공지능이 들어왔고 계엄령이 떨어지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봤고 정권이 바뀌었고 계절은 여름만 남고 나머지는 뒤죽박죽 섞여버렸다. 나는 살이 좀 쪘고, 술을 마신 다음날엔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떤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좋은 소식이 될지 두고두고 후회할지는 솔직히 확신하기 어렵다.


지난 3년간, 아니 사실 그전부터, 나는 소위 말하는 '고립청년'이었다. 지금은 아닌가? 사실은 그걸 모르겠다. 직업 없음, 구직 시도 경험 없음, 구직 의사 없음. 솔직히 말하자면 고립 생활은 꽤나 안락하다. 흔히들 고립, 은둔이라는 수식어에 떠올리는 모습은 방구석에서 사람도 만나지 않고 인터넷만 하는 풀 죽은 모습일 테다. 누군가는 그렇게 살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기도, 아니기도 했다. 꾸준한 벌이도 없고 학업을 이어가지도 않았지만 어떤 시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할 일이 있었다. 그 할 일이란 대상을 바꿔가며 넘쳐나는 시간과 관심을 쏟고 없는 돈을 긁어 쓰는 일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놀았다.


확실히 해두자면 노는 게 나쁘거나 부적절한 상태는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나이에 맞춰 사회적 과업을 달성하고 자식 낳아 길러 결혼시키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게 정상성의 신화는 애초에 허상이 되었지 않은가? 그래, 젊어서 잠깐 노는 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잠깐이라는 말은 그리스 비극 속의 장난질 같은 것이다. '언젠가 정신을 차리'기로 하고 지금은 논다. 그 말인즉 놀만큼 논 어느 시점엔 정신을 차리고 어른이 된다는 미래를 상정한다. 그것은 조건이지 예견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 언젠가는 내가 직접 만들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속도에 멀미가 나서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든 과부하가 걸렸든 초등학교부터 십수 년 동안은 잠시 멈춰도 자동으로 다시 재생이 됐었는데, 이제 아무도 재생 버튼을 눌러주지 않는다.

몇 년 놀아보면 몸이 근질근질하니 취업이든 진학이든 뭔가 그럴싸한 것이 하고 싶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백수 한량 생활이 체질에 맞는 사람은 꽤 흔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으면서도 의무와 책무로부터 자유로운 삶은 정말, 진짜로 달콤하다. 물론 당장 생존이 급한 경제 상황인 사람에게는 이게 다 팔자 좋은 소리인 줄을 알고 있지만, 아주 조금의 비빌 언덕만 있다면 생활 반경을 그 언덕만큼 줄여 가며 기어이 가족의 짐을 자처하고 말았던 게 내 경험이었다. 이럴 경우 가족에게 빌붙어 산다는 배부른 자기혐오도 곁들여진다(어쨌든 기댈 데가 있다는 특권을 가졌기에 이 정도 수준으로 살아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내 주변에는 단기 아르바이트나 젊음을 담보로 내어주는 소액 대출 등에 기대어 하루살이를 하는 삶들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벌어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게 만드는 자본의 독점이고 아르바이트를 우습게 보는 시선이다. 그러나 그 아르바이트도 하기 싫어한다면, 잠시 돈이 급해 어쩔 수 없었을 뿐 평상시에는 돈 버는 노동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면?

가족에게 빌붙기는 최소한의 생활비 수준을 초과할 수 없었다. 생활 반경을 줄이다 보면 공간과 경험과 인간관계 측면에서 고립되기 마련이다. '그냥 쉬었음' 같은 상태가 흔해지는 건 국가적으로 꽤나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므로, 요즘은 지자체에서 고립 청년 지원사업을 한다.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제법 흥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그 모든 활동은 '취업'을 목표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나를 좌절케 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재미있어하는 것들을 위해 시간을 쓰고 발품 팔기는 해도 일하기는 싫어했다. 그런 나를 혐오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놀려면 돈이 필요해, 그런데 돈 벌려면 일해야 돼, 그런데 일 하기 싫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 끔찍한 딜레마를 말로만 힘들다고 하면서 견디는 걸까?

거울 속에 다 큰 어른의 몸으로 드러누워 발버둥 치고 떼쓰는 내가 있었다.


이쯤에서 나의 웅대한 자기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자기애', '자의식 과잉', '완벽주의' 등으로 설명되기도 하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자아가 커지고 자신을 무대 위 주인공처럼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상태 그대로 어른이 되어버린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런데 난 이 연극이 뭔지도 모른다! 나는 머뭇거린다. 관객들은 실망한 나머지 무대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연극을 망치다니, 세상이 무너진다.

그러나 이 연극도, 무대도, 관객도 모두 내가 내린 판단이다. 누군가 내 쪽을 바라보는 것 같다면 그가 나를 바라보는 것일 가능성이 있지만, 정말 나를 봤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나를 흔드는 것은 내가 내린 판단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몇 년이 걸렸는지, 자아가 커가던 청소년 무렵부터 생각하면 오래 묵은 문제였다. 상담 치료에 투자한 돈이 얼마인지 어림짐작도 못 할 지금도 편하진 않다. 피로하거나 정신적으로 취약할 때는 길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나 스스로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에 낯선 사람에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시비 걸진 않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남들이 본다고, 그들에게 보여져야 한다고 믿는 '나'는 완벽했다. 일일이 풀어보자면 우스울 정도로 자아도취였다. 나에겐 그게 당연했고, 완벽하지 않으면 죽을 만큼 부끄러웠다. 나는 그럭저럭 완벽한 자기상을 유지한 채 성인이 되었지만 당연히도 와장창 무너졌다. 자기애가 강하다고 하면 기고만장해서 만사에 자신감이 넘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쉽게 고통받는다.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만 세서, 애지중지한 자아가 티끌만큼이라도 훼손되면 공격성이 튀어나온다. 밖으로 표출하거나, 내 안에 남아 나를 공격하거나. 양쪽 다 일어나되 한쪽 방향성이 우세한 것이 보통이고, 나는 내부를 향하는 비중이 높았던 것이다. 공격성을 동력 삼아 수치심을 무한히 생성하는 사고회로가 점점 더 깊어졌다. 자기애의 표현은 종이 한 장 차이로 겸양에서 오만함 수준으로 뛰어오른다.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뭘. 조금 더 나아가면, 난 더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인데. 고작 이 정도를 두고 대단하다고 하다니, 다들 한심하다. 수줍고 소심하고 신중한 겉모습을 한 채로 나의 자아는 어디까지 덩치를 키우고 있었던가. 솔직히, 와, 재수 없다.


돌이켜보면 '일 하기 싫고 놀고만 싶은데 노는 데에는 돈이 들고 돈 벌려면 일해야 한다'라는 딜레마는 조금 억울하게도, 나에게마저 그렇게 중대한 문제가 되지 못했다. 사람은 밥을 먹어서 살지 않는다. 사람은 '밥값'을 해야 산다. 나는 나의 '밥값 못 함'이라는 감각에 썩어 들어갔다. 단지 돈이 없어서였을까? 신자유주의적인 노력 성공 신화를 주입받으며 살아온 탓일까? 나이 차면 취업하고 돈 벌어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에 연연하지 않는 척하면서, 내심 부끄러웠던 것일까? 어떤 의미든지 간에 밥값을 한다는 감각, 무언가를 행하고 유의미한 결과를 생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음으로써 사람은 살아진다. 그리고 꾸준히 들어오는 돈만큼 효과가 확실한 결과물도 없다. 넉넉하게 벌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아주 조금의 돈이면 그만큼의 자유가 생긴다(다른 말이지만, 그래서 빈곤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보다 더 적은 선택지를 갖고 가장 무난한 선택을 강제당하는 상황을 겪는다). 나는 의무와 책임, 출근 시간과 마감 기한으로부터 자유로웠지만 누구보다 좁은 세상에 갇혔다.

편하긴 하니까, 가족에 기대 이 정도 생활을 안위하는 것만도 충분히 특권이니까, 하고 위안 삼으면서도 나는 슬펐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도 꽤나 힘이 들었다. 난 이런 걸로 만족할 사람이 아닌데. 고작 이것도 못 하다니, 내가 한심하다. 고작 이런 일로 어리숙하게 굴다니, 내가 한심하다. 병적인 수준의 자기애가 아니라도 스스로가 초라한 상태라고 판단하면서 유쾌한 사람은 없다. 작은 물에 만족하는 사람은 그 작은 물이 초라하다고 판단하지 않을 뿐이다. 그것은 착각이나 합리화가 아니라 그 사람이 인식하는 세계 자체이다. '작은 물'이라는 말 자체도 세상이 임의로 내린 판단이므로 사실 타인의 세상이 큰지, 작은지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자기애는 강박의 수준이었고, 내 세계가 작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내가 초라하다고 생각했다. 발목을 잡는 건 '일 하기 싫음'이 아니라 '아무거나 하기 싫음'이었고 '서툰 모습 보이기 싫음'이었다. '아무거나'가 아닌 건 대체 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에 능숙해질 수 있는데? 이럴 시간에 뭐라도 하는 사람이 나보단 낫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자책이다. 신기하게도 방 안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할 때 자의식이 점점 부풀어 오른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다 보니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할 수 없는지도 잊는 것이다. 미디어와 인터넷에서 남들이 왈가왈부해대는 말을 전부 받아들이다 보면 더욱 심해진다.


지금은 형체도 가늠할 수 없는 자기애는 조금 내려놓은 상태다. 그렇다 해서 나도 해냈으니 너도 해낼 수 있다는 식의 교훈을 꺼내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무엇인가를 해나갈 생각을 하면 숨이 막힌다. 작고 단순한 일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나아가자는 말조차 할 수 없다. 어쨌든 언젠가는 '나아가'야 한다니, 무섭다. 아직도 달리다가 넘어질 미래의 언젠가가 두려워서 첫걸음마를 주저한다. 그래서 내가 디딘 땅바닥만 보고 있다. 앞 날은 일부러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어떻게 앞 날을 걱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렇게 하기 위해 애썼다. 멀리 봐야 이번 주의 일만 생각했고,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도 어떤 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그냥 기록이다. 난 이렇게 살았고, 지금은 그저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길래 3년이나 묵힌 글쓰기 창을 열었다. 최근에 어떤 과정을 마무리했기 때문에 나름의 안도감을 느꼈거나, 방금 부정했지만 사실은 알량한 교훈을 주고 싶은 오만함에서 비롯된 생각일 수도 있다. 뭐든 중요한 건 아니다.

진득한 무기력과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한 긴 치료를 받으면서 사람 꼴을 유지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였다. 딱 그것만 했다. 일주일의 최대 과제는 매일 머리 감기, 곰팡이 피기 전에 설거지하기, 갈아입을 속옷 없어지기 전에 빨래하기였다. 청소는 가끔 기분만 냈다. 그 밖의 시간은 인터넷을 하거나, 그저 앉아만 있거나, 어쨌든 집 밖에 있었다. 집이 좁을수록 내부에 오래 머무는 것이 독이 되었다. 인터넷은 현실 이야기를 최대한 피해 다니며 했다.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글이나 시간 때우기용 긴 지식 유튜브 같은 것을 봤고 몇 살에 연봉이 얼마니, 무슨 시험을 준비하느니, 저축을 얼마를 하느니, 이런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면 즉시 눈의 초점을 흐리고 창을 닫았다. 아, 저는 몰라요. 모릅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다시 우울해졌다. 그러니까, 시시해진 것이다. 언제든지 일상이 무너져 예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매일 집안일을 체크하고 카페에 가만히 앉아있다 오는 생활이 단조롭게 느껴졌다. 그즈음에 일을 하나 시작했다. 이제부터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작하지 않았다. 외식도 좀 더 하고 싶고 관심 있는 곳에도 좀 더 나다니고 싶으니까, 여전히 일은 하기 싫으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슬슬 구인글을 뒤적인 것이다. 용돈벌이 정도의 의미만 두면서 수입이 적더라도 최대한 짧고 혼자 일하고 만만하게 보이는 일을 찾았다. 계속 보다 보면 내용에 익숙해져서인지, 이 정도 일은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착각 내지는 용기가 생길 때도 있었다. 자기소개서 같은 걸 요구하는 업장은 쳐다도 보지 않았고 원클릭 지원만 했다.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는 겁을 집어먹고 가지 않은 적도 많았다(그래도 다른 데에 붙었다고 응답하지 노쇼는 하지 않았다). 면접을 봤지만 감감무소식인 경우도 생겼다. 기분이 좋지는 않아도, 면접을 보고 뽑아줬으면 하는 마음과 뽑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모두 간절했으므로 내심 안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면접도 없이 출근하라는 연락에 벌벌 떨면서 찾아간 곳에서 정말 별 것 없는 일을 시작했다. 근무 시간이 짧아 주휴수당은 당연히 없고 기술을 요구하지도 않고 외워야 할 것도 없는 일. 물론 합법적이고 안전하면서 그런 조건을 갖춘 일자리를 찾기 자체가 쉽지 않다. 어쨌거나 뭔가를 하고 돈을 받는 일을 시작한 생활은 그 전과는 차이가 있다. 아무리 짧은 일이라도 정해진 시간을 할애해야 했고, 그래서 식사 시간과 업무 시간 앞뒤로 일정을 계획하게 됐다. 사람 구경도 많이 했다. 새삼스럽게 사람 사는 모습이 정말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게임 속 NPC 정도로 여겼던 가게 직원, 버스 기사, 옆자리에 앉은 사람, 청소부, 순찰 도는 경찰, 진상 민원인과 응대하는 창구 직원까지, 그들 행동의 적절성을 떠나 모두 각자의 할 일과 곤경과 호오가 있었다. 나의 감정, 나의 존재에 쏠려있던 신경이 조금씩 밖으로 향하자 행동도, 사고도 훨씬 유연해졌다(위생 관리 이상의 외모 가꾸기를 거의 손에서 놓다시피 한 것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약을 꾸준히 복용하며 상담 치료를 계속 받았다. 술은 꽤 자주 마셨고, 운동은 잘 안 했다. 여전히 더 많은 일을 할 생각은 없었고 돈은 부족했다. 더한 목표가 없어졌다는 느낌이 들면 전과 같이 나의 초라함에 몰두하게 됐다. 정체기였고, 기분 그래프는 여러 번 등락을 반복했다.

그나마 이 상태에서 벗어난 것은 내가 꾸준히 지적 허영심, 혹은 학구열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 분야의 관심을 발전시켜 보자는 제안 정도는 귀에 들어올 만큼 여유를 되찾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학 졸업 학기에 대학원을 준비한 댔다가 이도저도 못 한 채 기회를 날려버리고도, 다행히 아직 전공 자체를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는 변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흥미는 있지만 직업 삼을 생각은 전혀 없었던 분야를 취미인 셈 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상담 치료에서 제안한 첫 목표는 결과에 연연치 말고 대학원 입학 원서만 써본다는 것이었지만 솔직히 원서를 쓸 생각도 없었다. 언젠가는 할 수도 있겠거니, 하지만 사실상 그럴 리 없다고 믿은 채로, 아무런 책이나 읽고 조금 더 익숙해진 뒤엔 논문도 읽었다. 원서 접수 기간을 알면 지원해야 할 것 같아서 대학원 홈페이지도 제대로 탐색해 본 적 없었고, 그래서 예정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읽기만 했다.

대학원 공부는 '양치기'가 아니라고들 한다. 논문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읽기만 한다고 공부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나에게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의 해소였다. 학부생 시절 왜 배우는 지조차 이해를 못 했던 과목들이 실제 연구에 적용되는 걸 보니 머리에 더 잘 들어왔고 대학원에서 어떻게 논문을 쓰는지도 어렴풋이 감이 잡혔다. 여전히 잘 모르지만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을 갑자기 시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학부생 때 이런 깨달음을 갖췄어야 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땐 모든 것이 무섭고 막막하고 어려웠다. 영어 논문을 해석하느라 바빴지 논문이라는 것이 일정한 논리 구조를 가진 글이라는 점을 몰랐다.

여전히 확실한 건 없어도 이전보다는 뭔가 좀 알겠다는 느낌이 드니 자신감이 붙었던 모양이다. 오랫동안 내 눈치만 보던 가족들이 슬슬 뭐라도 해야지 않겠냐는 내색을 비치기 시작할 즈음에는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뭔가의 선발 과정을 제대로 치러본 경험은 대학교 입시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그때의 괴로웠던 기억이나마 살려가며 이야기를 짜냈다. 쉬운 일이나마 시도해 보자는 이전의 노력들과는 이미 다른 단계에 와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피부가 뒤집어지고 새치머리가 나고 대중교통만 타면 기절잠을 잤지만, 어쨌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나 때문에 괴로워하는 시간은 훨씬 줄어들었다.


성공담처럼 글을 써봤자 아직 결과도 모르는 상태다. 좋지 않은 결과를 받는 상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다시 시도할 의욕이 생길 지도 의문이고, 어쩌면 그전보다 더 맥이 풀려 생활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합격해도 앞길이 막막한 건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것은 완벽한 나에 흠 날까 신경 쓸 시간에 무엇인가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무엇을 하느라 애쓴 감각은 잊지 않을 것임을 안다. 문제 하나를 틀렸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라는 흔한 말도 체감한다(일단 지금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런 글을 적어놓고 다음날부터 기분이 땅을 칠 수도 있고, 여전히 해결 안 된 문제들도 있지만, 그냥 그렇다고.

다시 강조하자면 이 글은 성공담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글도 아니다(자기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여건의 영향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많이 받았으므로 더더욱 그렇다). 3년 전에 쓴 글들도 그랬다. 성인이 되어 뒤늦게 ADHD 진단을 받고 나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적어내려갔다. 지금은 결과가 어찌 되건 3년 전이나 그보다 전에도 감히 엄두를 못 내던 일에 시도해 봤다는 사실 자체를 기록해 두고자 했다. 합격해서 면접 얘기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자기애도 강하고, 연연하지 않는 척 하지만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 있어서 주절주절 무용담 늘어놓을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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