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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Jul 09. 2024

친절하고 다정하게,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소설가의 산문 15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는데 전화가 울렸습니다. 오전 10시쯤이었지요. 발신인은 A였습니다. 나지막이 흐르는 쇼팽의 선율과 갓 내린 커피를 음미하던 저는 탐탁잖았지만 어쨌든 받았습니다. A가 주관하는 행사에 제가 참여하기로 했는데, 어떤 부분의 보완을 요구하는 전화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확 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행사는 A의 필요에 의한 부탁이었고, 그것은 그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은근슬쩍 제게 떠넘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입에선 전혀 다른 대답이 흘러나왔지요.

  “네,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이 순조롭게, 다 잘될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때 제가 막『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61페이지의 마지막 부분을 읽은 뒤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 생각이 어떤 양상을 취할지도 통제하지 못하지요. 다만 어떤 생각은 더 오래 품으며 고취할 수 있고, 어떤 생각에는 최대한 작은 공간만을 내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내려놓아라, 얽매이지 말라,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이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걸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연유로 이런 류의 책이 존재 이유를 갖는 것 아닐까요.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비록 아주 잠시라 해도 순해지기 때문입니다. 문장을 따라가는 동안만은 나를 반성하고, 타인을 이해하려 애쓰고, 욕심을 버리려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말을 전하는 이가 무려 17년이나 이국의 숲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려 애쓰고, 그 오랜 수행을 비웃듯 환속한 뒤에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명상과 깨달음을 전파하며 겨우 살만해졌을 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지요.

  이 책에 대한 다른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올해 초 저는 치앙마이로 보름 정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이 책도 가져갔었지요. 저자가 치앙마이의 숲속에서 오래 수행한 서양인 스님이라는 얘기에 딱이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조용하고 느긋하게 지내려 한 처음 마음과는 달리, 치앙마이는 구경할 곳도 많고 여행객들도 엄청나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빠이라는 시골로 옮긴 뒤에야 비로소 조금 여유가 생겼지요.

  치앙마이 전통가옥에서 늘어지게 늦잠을 잔 후, 저는 한 손엔 휴대폰 다른 손엔 책을 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허름한 식당에서 제가 좋아하는 팟타이를 맛있게 먹은 뒤 낮게 돌아가는 선풍기 아래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자리를 옮겨 연유가 듬뿍 든 태국 커피를 마시며 독서를 이어갔지요. 아시겠지만, 특별히 자극적인 서사가 없어도 몰입하기 좋은 책이잖아요. 그렇게 집중해서 독서를 하다 보면 또 몸이 조금 찌뿌둥해서 마사지 샵에서 전신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아! 태국의 마사지는 가격에 비해 얼마나 훌륭한지, 저는 아침 저녁으로 출근 도장을 찍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고는 황야의 무법자처럼, 석양을 뒤로 하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숙소로 돌아왔지요.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누워 다시 책을 꺼내 들었을 때, 그제야 알았습니다. 들고 나갔던 책은 이 손에 있는데, 같이 있어야 할 휴대폰이 없다는 것을.

  밖으로 뛰쳐나갔을 때 거리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시골 동네라 해도 내가 머무는 곳은 언제나 금발에 반바지를 입은, 커다란 배낭을 멘 여행객들로 붐비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대마가 가능하다는 초록 간판들 사이를 터벅터벅 걸으며 저장된 은행 앱들과 신용카드와 공인인증서를 생각했습니다. 200만원이 넘는 내 최신형 휴대폰의 남은 할부와 외우지 못하는 지인들의 전화번호와 그리고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범죄연루 가능성을 떠올리느라 지옥에 있는 것과 진배없었습니다. 그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역으로 짚어오는 제 행적의 어디에도 휴대폰은 없었습니다. 마사지샵에도, 몇 군데의 카페에서도, 접었다 펴면 어지간한 테블릿만한 그것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팟타이 식당에 갔습니다. 그날 제가 처음 들렀던 곳이지요. 저는 원래도 유창하지 않지만 그때는 절망으로 쓰러지기 직전이라 더욱 어눌한 영어로 말했습니다. I, left, … 여기까지 말했을 때, 늦은 끼니를 해결하러 온 여행자의 식사를 준비하던 젊은 여자가 여전히 웍질을 바쁘게 해대며 턱으로 어떤 곳을 가리켰습니다. 허름한 식당 구석의 꼬질한 식탁 위에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은색의 제 휴대폰이 거기 있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건네고 이제는 숫제 깜깜해진 빠이의 골목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저는 절대로 찾지 못할 거라 예상했습니다. 떠돌이 여행객들이, 가난한 태국인들이 그것을 그대로 두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국의 이 촌구석에서 저의 개인 정보가 몽땅 든 휴대폰을 도둑맞은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습니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방에 들어섰을 때, 제가 급하게 던지고 나간 책이 방바닥 한 가운데 놓여있었습니다. 새삼스럽고 유난하게 그것의 제목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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