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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Jun 11. 2023

꽃의 각오

소설가의 산문 14

꽃의 각오     

                 

  

  말했는데? 꽃이라고. 우리 집에는 남편이 바짝 긴장하는 날이 두 번 있는데, 내 생일과 결혼기념일이다. 그래서인지 생일이 아직 몇 주나 남았음에도 남편은 뭐가 갖고 싶냐고 벌써 여러 번 내게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꽃이라 했는데, 그는 자꾸 흘려들었다. 남편이 이마에 주름을 밀어 올리며 크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본다. 그 눈은 이렇게 묻고 있다. 진심이야? 그 눈빛은 두 가지 의문을 품고 있다. 하나는 자신의 선물 예상가보다 너무 저렴해서일 것이고, 다음은 꽃은 내가 아무 때나 손쉽게 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꽃을 받고 싶다. 더 정확히는 ‘남편이 주는 꽃’을 받고 싶다. 남편은 꽃을 사는 것을 대단히 쑥스러워하는데, 중년의 남자가 꽃집에 들어가 주인에게 이것저것 주문하며 꽃을 둘러보는 행위 자체를 어색하고 겸연쩍어한다. 아마 그것은 그 시절 남자들의 ‘사나이 가오’와 충돌하는 그 무엇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곧 그것이다. 그 부끄럽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행위를 ‘나를 위하여’ ‘기꺼이 해내는’ 남편을 나는 보고 싶다. 자기가 편한 것, 자기가 쉽게 줄 수 있는 것에는 노력과 수고가 결여된다. 그것이 빠진 선물은 상대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 좋아할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렵고 힘든 일을 기쁘게 감수하는 것, 그것을 사랑 말고 달리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그 사랑의 증표로 요구하는 것이 꽃을 사는 일이라면, 그 정도는 들어줘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꽃을 좋아한다. 그 환하고 반짝이고 흔들리는 것을 사랑한다. 내가 꽃을 좋아한다고 하면 꽤 많은 사람이, 꽃은 비싼 데 반해 금방 시들어서 좀 그렇지 않냐고 묻는다. 맞다. 정확하게 바로 그 지점이 내가 꽃을 좋아하는 이유다.

  세상에는 좋아서 가까이 두었지만 책임을 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크게는 가족이 그러하고, 작게는 반려라 부르는 동물과 식물이 그렇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숱한 상황이 우리를 자주 곤란하게 한다. 돈을 지불했다고 해서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예뻐서 산 옷은 점점 쌓여 환경 쓰레기가 되고, 맛있게 먹은 음식마저 건강을 위협하는 살로 배신한다. 이 모든 것이 자의로 내 돈을 들인 결과다.

  

  

  그러나 꽃은 다르다. 한 시절, 격정적으로 피었다가 미련 없이 소멸한다. 나는 꽃의 이 극단적 자세를 경애한다. 죽을 각오로 피는 마음, 꽃은 처음부터 버림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 꽃의 좋은 시절을 간직하려 ‘드라이 플라워’하는 이들은, 꽃의 이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다. 꽃은 시들어 자신이 버려져야 할 공식적· 합리적 이유를 제공하고, 썩어 다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버려질 때 버려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타오르는 꽃을 향해 쓰는 돈은, 차라리 순정하다.

  

  

  남편은 벌건 얼굴로 꽃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꽃집 주인이 편지를 가져오면 같이 포장해 준다 해서 써 갔는데, 그 편지를 받아 그녀가 다시 옮겨 적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나는 아주 예쁜 글씨로 쓴 ‘당신을 처음 본 그날’로 시작하는 남편의 연서를 읽을 수 있었다.

  꽃다발을 받고 너무 좋아하는 나를 보며 남편도 뿌듯한 듯 보였다. 더 필요한 것 없어? 남편이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거면 돼? 그가 거듭 물었고 나는 충분하다며 웃었다. 남편은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얼굴로 가져와 내 볼을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렸다.

  

  

  다음 날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남편이 더 필요한 것 없냐고 해서 괜찮다고 했더니 진짜로 믿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정색한 친구들은 일제히 그럴 리가 있냐며, 기다려 보라고 했다.

  나는 친구들 말대로 얌전히 기다리는 중이고, 그 기다림은 벌써 두 달을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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