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탯줄을 자르며 (1)

에세이14

by 이화정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일은 육아였다. 그중에서도 아들을 키우는 일이었다. 내가 처한 환경이나 아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나란 사람 자체가 한 생명을 돌보고 키우고 성장시키는 일에 적당하지 않아서이다. 나는 나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었고, 운 좋게 그것을 지지하는 가족과 살았고, 그래도 된다고 말하는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육아는, 전혀 성질이 다른 문제였다.

내가 아들의 탄생을 아들과 의논하지 않았듯, 아이와 나 사이에는 어떤 합의도 없었다. 그래서 아들을 키우며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받아들이고, 알아차리고, 깨우쳐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아이가 내게 보내는 절대적 신뢰와 사랑 덕분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라는 기한이 두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일 앞에서 절망할 때는, 이 상황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끝이 있다면 견딜 수 있다. 달리기를 하거나 등산을 할 때, 모든 기운이 소진되어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을 것만 같은데 믿을 수 없는 기운이 어디선가 솟아날 때가 있다. 바로 끝이 보일 때다.

달리기의 피니시라인이 보이거나 까마득하던 산의 정상석이 눈에 들어올 때가 바로 그때다. 운이 좋다면 러너스하이도 경험할 수도 있다. 그 일을 대충 해서는 러너스하이가 오지 않는다. 몸이 극한 상태에 도달해야만 대량으로 쏟아진 엔도르핀을 맞을 수 있다. 말도 안 되게 작고 무지막지한 악당이 조금씩 인간이 되어간다고 느끼던 아들의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나는 셋째를 가질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때가 바로 러너스하이에 해당하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바꿔 말하면, 그때가 오기까지 내게 육아는 탈진할 지경의 힘듦이었다. 물론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고, 그것은 매우 훌륭한 결정이었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보살피는데 헌신하는 일은 엄마로서 아주 보람된 일이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자신을 지워가는 작업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의 많은 부분을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의 뒤로 미루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와의 정신적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분리를 의미했다. 나는 물리적으로 분리되지 않는 완전한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내 빨래를 하면서 아이가 벗어놓은 옷들을 모른 체하기는 힘든 일이고, 어차피 차리는 밥상에 아이 것도 준비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 방을 청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가 밥 먹는 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게 뻔하다. 당연하지 않은 일이 당연하게 여겨질 때,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일찍이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집을 떠나라. 너희가 다니는 대학이 어디건 예외 없이.

막 성인이 된 아이와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이와 이별하는 내 나름의 의식이다. 5년 전 첫 아이인 딸과는 루앙프라방이었고, 이제 여행을 떠날 아들과는 호이안이다. 대학이 정해지는 순간 특별한 기준 없이 즉흥적으로 여행지를 정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두 도시가 모두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좋아하는 곳이 그런 덴가 보다. 시간이 지나도 예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소. 그리고 그런 곳은 아이와의 지난날을 추억하며 이별을 하기에 아주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티켓팅을 하고 호텔을 잡고 짐을 쌌다. 베트남의 어디가 좋다느니, 무엇을 꼭 사야 한다느니, 이런 체험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지인들의 얘기는 흘려들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내 아들과 지난 시간을 얘기하며 아주 근사한 작별을 하는 것이다.

나는 호이안 올드시티와 변두리 촌스러운 매력이 공존하는 딱 중간쯤에 있는 호텔에 내리 5박을 예약했다. 트윈 배드를 확실히 하는 메일을 호텔과 두 번 주고받았을 뿐 다른 건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들은 예상보다 훨씬 더 이 여행을 반겼고, 우리는 설레며 하루하루 그날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즐겁게 이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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