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15
다낭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밤이었다. 짐을 찾은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앉아 베트남 유심으로 바꿔 끼우고 서둘러 게이트를 나섰다. 도착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러 사람들 속에서, 30년 전쯤 여행사직원이 엉터리로 등록한 내 여권이름을 든 청년을 발견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가끔 드러나는 이국의 거리를 40분 정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서자 예쁜 색감의 열대과일이 대나무 바구니에 담긴 채 우리를 맞았다. 피곤했던 아들과 나는 여행의 감상은 내일로 미루고 일단 잠부터 자기로 했다. 호이안 올드시티의 노란 건물 앞에 작고 흰 오토바이가 그려진 액자를 사이에 두고 우린 각자의 침대로 자석처럼 끌려 들어갔다.
목청껏 질러대는 닭울음소리와 희미하게 들리는 오토바이의 소음, 그리고 나를 둘러싼 낯선 공기에 눈을 떴을 때는 밖이 훤했다. 연달아 5박을 예약한 덕분인지 호텔 측이 업그레이드해 준 방의 발코니에는, 수영장과 수영장을 에워싼 키 큰 나무와 일출과 석양을 벅차게 감상할 수 있는 하늘이 주어졌다.
아들은 이불을 둘둘 말고 잠에 빠져 있었다. 구름에 가렸던 해가 드러날 때마다 아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아들의 까만 속눈썹과 솟은 콧대와 꼭 다문 입술을 오래 바라보자, 이 아이와 함께 지나온 시간들이 차례차례 머릿속을 지나갔다.
갓난쟁이가 엄마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아들은 엄마'만' 찾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누구의 품에도 안기지 않았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말을 잘 듣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아닌 사람이 안으면 경기하듯 울어댔으므로 가까이 있는 친정부모님도 나를 도와줄 수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음으로 떠 안기듯 친정에 맡기고 온 날도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아야 했다. 이러다 애가 잘못될까 봐 연락했다며 거의 울먹이는 친정엄마의 목소리에는 힘들어하는 딸과 혹시라도 손자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 걱정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아들은 심지어 남편에게도 가지 않았다. 남편이 식탁에 앉으면 반대로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떨어져 남편 혼자 밥을 먹은 날도 적지 않았다. 나는 이토록 폭력적이면서 압도적인 사랑이 있다는 것을 갓 태어난 아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의 모든 것은 아들의 것이었다. 나는 모든 순간을, 시간을 아이와 함께해야 했다. 아들은 내가 화장실 문을 닫게 내버려 두지 않았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나를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아들로 인해 반쯤 얼이 나가있는 상태였지만 돌이켜보면 이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 또한 아들 덕분이었다. 아들의 나를 향한 전폭적이고 절대적이면서 무조건적인 신뢰는 상상이상의 것이었다. 아들의 눈빛엔 내가 자신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 그것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이 작고 여린 생명체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내가 비로소 진짜 '엄마'가 되는 순간이었다.
햇살이 아들의 얼굴뿐 아니라 방 안 전체에 가득 차자, 아이가 기지개를 켜며 눈을 떴다. 방 안을 빙 둘러보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내게 시선이 닿자 입술 끝을 잔뜩 끌어올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조식 먹으러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