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탯줄을 자르며 (3)

에세이16

by 이화정

오전엔 주로 산책을 했다. 숙소를 나와 20분 정도 걸으면 올드시티 초입에 닿았다. 옛 도시의 모습이 유산으로 남은 마을로 아들과 손을 잡고 걸었다. 쉼 없이 경적을 울려대는 오토바이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작고 큰 상점마다 매단 비단 등 아래를 지날 때,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흰색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은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도 수업에 늦지 않게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의 얼굴은 밝았고 그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드리나무의 잎사귀들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렀다. 그 아이들을 보자 아들의 고등학교 시절이, 차마 다 헤아리기 힘든 아이의 분투와 그것을 지켜보느라 애가 타던 나의 시간이 다시금 떠올랐다.

고집통 아들은 자라면서 조금씩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엄마의 남자인 아빠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자기 뜻대로 성질을 부리다간 친구와 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태권도 학원에서 열리는 1박 2일 캠프를 좋아했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체험학습을 손꼽아 기다렸다. 여전히 공부는 뒷전이고 가끔은 말도 안 되게 성질을 부리기도 했지만 타인에게도 사정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조금씩 '아기'에서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고난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막 중학교 2학년이 된 아들과 뉴스를 보며 나눈 대화가 시발점이었다. 그 대화가 몰고 올 폭풍 같은 나날을 그 순간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저녁, 과일을 먹으며 우리는 소파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다. 뉴스프로그램이었고, 정치인들이 서로를 향해 고함을 지르거나 드잡이를 하는 시끄럽고 난잡한 국회의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아들은 근래에 유독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이쪽과 저쪽의 주장을 귀담아듣던 아들이 입을 열었다.

"엄마, 저는 정치를 해야겠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고등학교가 떠올랐다.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이끄는 세계인이 되는 것'이 그 학교의 목표였고, '서로 다른 가치는 공존할 수 있는가, 발전은 지속가능한가, 무엇이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가,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가 교육의 핵심 질문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그곳을 추천했다.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문제는, 그 학교가 특목고라는 것이고 아들은 공부는커녕, 학원도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기회다 싶었다. 그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다 해도 이것이 공부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었다. 뭘 해도 본전이상이었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른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학원 좀 보내줄 수 있어요?"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아들이 처음부터 학원에 다니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도 여느 엄마들처럼 태권도와 피아노, 미술학원 같은 예능 쪽은 물론이고 학습지를 받고 공부방을 등록해 다니도록 했다. 그러나 아들은 공부방을 관뒀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부방에서 나올 필요가 없다고 연락을 해왔다. 숙제를 전혀 해오지 않으며 질문에 대한 대답 또한 일절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죽했으면 사설학원 선생님이 그만 나오라는 말씀을 할까. 학습지도 빼먹기 일쑤였다.

그랬다. 아들은. 비록 예전처럼 생떼를 피우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고집이 셌다. 자기가 하지 않겠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고, 그러니 나의 지시나 권유는 무용지물이었다. 나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들에게 억지로 무엇을 하게 하는 일은 서로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돈을 버리고 관계까지 해치는 일을 나도 그만두었다.

그런 아들이 스스로 학원을 가겠다니. 당시 아들의 성적은 중간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그런 점수로는 그 학교를 꿈꾸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목표가 생긴 아이는 태도부터 변했다. 숙제와 수행평가에 공을 들였고, 시험기간엔 게임을 하지 않았다. 조금씩 성적이 오르더니 마침내 모든 과목이 90점을 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설마 했는데, 정말 그 고등학교에 합격해 버렸다.

합격소식은 달콤했다. 우리는 기쁨을 만끽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현실감각이 돌아온 내가 말했다.

"거기에 적응하려면 지금처럼 공부해서는 안 될걸? 네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를 거야."

그러나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의 꽤 긴 시간을, 게임과 잠과 친구와 노는 것으로 채웠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아이이므로 나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핑계고 어쩌면 나도 아들처럼, 안일했는지도 모르겠다.

새 교복을 입고 첫 등교한 그날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선생님이 전부 영어로 말해요. 한국 사람인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일주일이 지나고 기숙사로 데리러 갔을 때, 아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탄 아들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차 안엔 정적만이 감돌았다. 집에 도착해 겨우 눈을 뜬 아이가 말했다. 영어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숙제가 뭔지 모르겠고, 수학과 과학은 한국말인데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으며, 나머지 과목들도 모두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아들의 얼굴은 침울했고 절망적이었다. 실패도 결이 다른 성장이라 믿는 나는 애써 그 말을 모른척했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다시 금요일, 참담한 얼굴로 차에 탄 아들은 이제 아예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을 보는 나 또한 힘들었지만, 이것 또한 겪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내 결심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전학이란 단어를 먼저 꺼내게 된 건 식탁에 앉은 아이가 멍한 눈으로 중얼거리듯 내뱉은 다음 말 때문이었다.

"엄마, 애들이 나랑 같은 팀을 하기 싫어하면 어떡하죠? 나 때문에 성적이 떨어질까 봐, 그래서 전부 나를 피하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울고 싶었다. 아이가 그동안 겪었을 학교의 공기가 어떤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너무 안쓰러워 숨쉬기가 힘들었다. 아이가 나쁜 생각을 할까 봐 덜컥 겁이 나기도 다.

"전학 가자. 꼭 거기 있을 필요는 없어. 일반고라면, 좀 더 여유가 있을 거야. 전학 가자. 응?"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