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침입한 놈

내가 누구더라...

by 민진


같은 곳을 계속 돌고 있는 기분이다. 주택가를 뒤지고 있는데 골목길이 비슷비슷해서 어디가 어디인지도 잘 모르겠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너무 아파 어디에든 들어가 좀 쉬고 싶은데 보이는 것은 편의점뿐이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본 적은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본 적은 없다. 온통 젊은이들 투성이라 낯설고 불편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지하철을 물어보니,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며 몇 정거장 안 되니 택시타고 가라고 한다. 노인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자꾸 택시를 타라고 한다. 몇 정거장 안되니 걸어가야 한다. 다친 뒤로 지팡이 없이는 걷기 힘들지만, 그래도 걸어야한다. 다리도 아프고 지팡이를 쥔 손도 아프지만, 난 기운을 내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겨우 집에 도착해보니 복도로 나있는 작은 방 창문이 열려있다. 수상하다. 나는 항상 모든 창문을 닫고 외출한다. 그 놈인가... 마누라가 먼저 들어와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열어 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살짝 집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거실이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어질러져있다. 내가 그 놈을 잡으러 간 사이에, 그 놈은 나를 잡으러 온 것 같다. 교활한 놈. 난 가방에서 칼을 꺼내들고 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이 아무도 없다.


물을 마시며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누군가 현관 비번을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번호가 틀렸는지 다시 누른다.


‘그 놈이다!’


난 칼을 움켜쥐고 몸을 숨겼다. 그런데 어떻게 그 놈이 우리 집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는 거지?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건, 나와 마누라뿐인데... 이 여자가 그 놈에게 비밀번호까지 알려줬음에 틀림없다.


차라리 잘됐다. 놈을 찾아 헤맸는데 놈이 제 발로 집까지 찾아와주니 잘된 일이다. 이내 문이 열리고 그 놈이 들어온다. 난 칼을 들이대며 “이 놈! 내 돈 내놔!” 하면서 달려들었다. 놈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간다. 나도 그 뒤를 쫒아 달려갔지만, 빠르다. 서둘러 뒤쫓아 갔지만, 이내 놈을 놓치고 말았다.


그 놈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누라가 아파트 입구 쪽에 맨발로 길바닥에 주저앉아있다. 저 여자는 왜 저기에 저러고 있나. “당신 여기서 뭐하는 거야” 하고 다가가는데 마누라가 기겁을 하며 몸을 웅크린다. “강기량 그 새끼 못 봤어? 분명 여기로 지나갔는데” 마누라가 팔로 얼굴을 가리며, “그 칼 좀 치워요” 한다.


그러고 보니 지나가던 아이가 내 칼을 보고 겁먹어 울음을 터트린다. 난 서둘러 칼을 옷 속으로 숨겼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려던 아니었다. 그냥 그 놈이 나를 덮칠 때를 대비해서, 호신용으로 들었던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과자라도 사주려 하는데, 아이는 겁을 집어먹고 엄마에게 달려가 버린다. 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놈을 놓칠까 싶어 난 서둘러 그 놈이 사라진 곳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찾아도 놈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나는 놈인데 엄청 빠르다. 나도 그때 다치지만 않았다면 그 놈 정도는 얼마든지 따라 잡을 수 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잠시 벤치에 앉아 쉬는데 놀이터 쪽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승훈인가? 승훈이가 왔나?'


지난 생일에 승훈이를 보고 한 번도 못 봤다. 서둘러 일어나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 놀이터로 가봤다. 승훈이 만한 또래의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놀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겨우 승훈이를 발견했다. “승훈아”하고 부르지만, 승훈이는 노느라 정신이 없다. 승훈이한테 가려다 일단 근처 슈퍼부터 가서, 승훈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먼저 사서 놀고 있는 승훈이에게 다가가 과자를 내밀었다. 과자를 한번 보고, 나를 한번 본 아이는

“엄마가 아무나 주는 거 먹으면 안 된다 그랬는데”

"할아버지가 주는 건 괜찮아"


같이 시소를 타던 여자아이가 다가와 말을 건다.


"너희 할아버지야?"

"아니, 모르는 할아버지야."

"할아버지 누구세요?"

"나? 내가 누구냐면..."


내가 누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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