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인출기
저는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많이 배운 것도, 돈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서울에서 살고 싶어서 무작정 올라왔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건설 공사판에서 막 노동을 했고, 공사 현장에서 쪽잠 자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공사 현장에서 눈치로 배운 기술로 목수 일을 하면서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승부 근성이 있어서 뭐든 빨리 배웁니다. 남한테 지기 싫어서,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연습 또 연습 했었습니다. 손에는 항상 크고 작은 상처들을 달고 살았지요. 그래도 목수 일 덕분에 조그맣게 살 집도 마련하고, 고향에서 중매로 만난 여자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는 사람 소개로 전자제품 납품 일을 하면서 돈을 아주 많이 벌게 되었습니다. 그땐 정말 세상 살만했습니다. 아니 낯간지럽지만 행복했습니다. 돈도 많이 벌고, 집에 가면 마누라가 해주는 따뜻한 밥상에 토끼 같은 새끼들과 옹기종기 앉아 식사를 할 때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제 인생의 황금기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좀 절약하고, 성실하게 살 걸 그랬다 하는 후회가 남습니다.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와 고생만 하다가 적지 않은 돈을 손에 쥐다 보니, 전 정말 큰 부자라도 된 것처럼 여기저기에 돈을 뿌려대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 중에 저한테 밥 한번, 술 한번 못 얻어먹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지나가는 거지조차도 붙잡고 밥을 사줬을 정도였습니다. 그뿐인가요. 여기 저기 돈도 엄청 빌려줬습니다. 그 돈 중 제대로 돌려받은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열린 돈 통 취급하며 돈을 마구 가져가고 아무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주위에는 저한테 밥 얻어먹고, 돈 뜯어가려는 사람들로 넘쳤습니다. 뭐 그래도 그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땐 세상 돈이
모두 내 돈인 것 같았고,
평생 그렇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땐 나중에 돈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가전제품 중간 판매에서 재미를 본 저는 점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침 아는 사람이 전기장판을 직접 만들어 팔아보면 어떻겠냐고 권해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업 확장을 생각했던 저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제가 자본을 대고, 그 사람이 부품을 조달하는 식의 동업으로 우리는 전기장판 제품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출발은 아주 좋았습니다.
저희가 만든 제품은 TV에 나올 정도로 대히트였고,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들었습니다. 공장을 풀가동해서 제품을 만들어내고, 전국으로 배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장판에서 불이 난다며 반품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판매 전 확인할 때는 멀쩡하던 제품들이었는데 이상했습니다.
전 조절기 수입을 맡았던 동업자에게 제품 확인과 반품을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업자와 연락이 안 되는 겁니다. 다급해진 저는 조절기 본사에 연락을 취하고 내용을 확인해보니, 동업자가 내 투자금을 빼돌리고, 아주 저가의 불량 조절기로 납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너무 믿은 제 잘못이었습니다.
대박은 하루아침에 쪽박이 되었고, 전국적으로 쏟아 들어오는 반품은 창고를 차고 넘쳐, 집 안에 쌓아두기 시작했고, 결국엔 집 밖까지 쌓아두어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계속 들어왔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어릴 때부터 데려다 먹이고, 재우고, 공부시킨 동생이 취업하자마자 사기를 치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넘치게 들어오는 전기장판 반품과 수시로 찾아오는 빚쟁이들로 집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긴 시간 피땀 흘려 번 돈은 그렇게 순식간에 날라 가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남은 건 우리 식구 살기에도 비좁은 작은 집 한 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