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 찬 아버지의 진격

아빠가 칼을 들었다

by 민진


이제야 깨닫는다.
이 생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를

-무사카르나,
인도의 대서사시<마하바라타>에서





아버지가 칼을 들었다고 엄마에게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우리가 무심한 사이 아빠의 상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사실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물건을 잘 못 찾고, 우울증 증세도 보이셨지만, 나이 드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간혹 가서 밥만 먹고 오는 정도로는, 그나마도 코로나라고 전화 통화 잠깐씩만 하는 걸로는 아버지 상태의 심각성을 눈치 채지 못했다.


사실 조금 관심 있게 봤다면, 치매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아버지의 상태가 단순 노인성 우울증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챌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특히 지난해 이사 갈 때, 그때 아빠는 정말 이상했었다. 제작년 내가 이사 갈 때,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같은 단지 바로 앞 동으로 이사 가는 거라, 난 엄마, 아빠 두 분 다 오시지 말라고 했었다. 언제부턴가 이사할 때 도와주시겠다고 오시는 엄마, 아빠가 도움이 되기는커녕, 이사로 정신없는 와중에 두 분을 따로 챙겨야하는 사태가 벌어지곤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거절해도 두 분은 기어코 이사 당일 일찌감치 오셨다.


그리고 이사 짐을 옮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물건 기스나게 제대로 포장을 안했다는 것이다. 난 포장이사가 아니라, 용달이사 중이었다. 분명 말씀을 드렸는데 잊어버리셨는지 계속 이삿짐센터 직원에게 따지셨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인테리어 업자와도 싸우기 시작하셨다. 집주인은 내가 이사 가면 집을 고칠 계획이라 인테리어 업자가 공사를 위해 온 것이다. 아버지는 인테리어 업자들이 공사를 위해 준비해 온 연장들을 복도에서 치우라고 호통을 치셨다. 이삿짐 빼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큰 짐은 다 나간 상태라 큰 지장이 없는데도 아빠는 이상할 정도로 화가 나서는 지팡이마저 집어 던져버리고 호통을 치면서 복도를 질주했다. 지나고 보니 아마 아빠는 그때 본인이 현장 인부들을 진두지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았다.


짜증이 난 인테리어 업자와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나에게 불만을 쏟아냈고, 난 아버지를 좀 모시고 나가라고 엄마를 찾아보니, 엄마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수다떠느라 정신이 없으신 상태였다. 난 엄마에게 아빠를 모시고 가라고 했지만, 아빠의 질주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둘러 이삿짐을 옮기고 겨우 한숨을 돌리는데 이전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보일러 선을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무슨 소린가해서 아빠에게 물어보니, 내가 빠뜨린 걸 당신이 알뜰히 챙겨왔다며 전선을 한 무더기를 자랑스럽게 내놓으신다. 이전 집에 여기저기 꽂혀있던 전선들을 싹 다 가져오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전선들의 상태가 콘센트에 꽂을 부분들도 다 잘라버려서 쓸 수도 없게 만들어 놓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난 관리사무소에 수리를 부탁하고, 웃돈을 요구하는 이삿짐센터 직원에게 돈을 줘서 보내버렸다. 짐도 별로 없고, 집도 가까워 돈 좀 아끼려고 한 용달이사는 그렇게 배보다 배꼽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건설 일을 하시던 분이셨다. 그런데 앞뒤를 다 잘라버려 쓸 수도 없게 만든 전선을 보물단지나 되는 것처럼 건네는 아버지를 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땐 그냥 너무 피곤하고 짜증만 났었다.


집에 찾아가 간혹 뵙는 아빠는 너무 멀쩡해보였고, 치매 얘기가 나오면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고, 치매는 아니지만 나이가 있으니 미리 약을 먹는다고 하셨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었다. 그렇게 우리는 신경 쓰면 치매 진행을 많이 늦출 수 있었던 금쪽같았던 그 시간들을 그렇게 놓쳐버렸다.


그리고 아버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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