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죽어버렸어야했다
망했다고 주저 앉아있을 여유 따위가 제게는 없었습니다.
어린 자식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보고 있자면 돈을 벌어야했습니다. 날린 돈까지 생각하면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벌어야 했습니다. 전 다시 공사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공사 일감을 맡아 직접 해나가며 다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이 조금씩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제 분수에 맞게 일을 해나갔어야 했나 봅니다. 전 일이 좀 되어가자 또 욕심이 생겼습니다.
날린 돈의 전부는 아니어도 족히 절반 이상은 회수할 수 있는 제법 큰 일감을 동업자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그렇게 호되게 당했으면서도, 사람 좋아하는 천성은 어디 안가나 봅니다. 혼자서 하기 벅찬 일이었으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전 또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왜 전 항상 때늦은 후회만 하게 되는 걸까요...
나중에 동업자는 공사 대금을 혼자 챙겨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 도망간 놈을 붙잡아 돈을 찾으려 했지만, 놈은 이미 아들 명의로 모든 재산을 빼돌린 뒤였습니다. 소송까지 해보았지만, 결과는 패소였습니다. 증거 불충분이라나 뭐라나... 저같이 못 배운 사람에게 법은 너무 멀고,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식들만은 저처럼 못 배우게 하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을 쳤는데 또다시 제가 다 망쳐버렸습니다.
지금도 기억납니다. 패소 판결을 받고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어, 아내에게 같이 죽자고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단호하게 죽으려면 혼자 죽으라고, 자기는 생떼 같은 자식들을 놔두고 죽을 수 없다고... 그러더니 떨고 있는 내 손에 밥숟가락을 꼭 쥐어주고는 말없이 밥을 먹더군요. 그렇게 저희는 조용히 밥을 먹었습니다.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은 엄청났습니다. 집을 팔아도 부족한 액수였지만, 저희는 집을 팔지 않고 돌려막기로 이자만 갚아가며 버텼습니다. 사실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집을 판다고 해서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살 곳을 구하기 위해 빚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빚은 이자를 불렀고,
빚과 이자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고 돌아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에 술타령만 하게 되었고, 아내는 생활비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로 돈을 꾸러 다녔습니다. 아이들은 대학에 가자마자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어야했습니다.
전 제가 마시는 술이 어떻게 나온 건지, 제가 먹는 밥이 어떻게 밥상에 올라온 건지, 아이들은 어떻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건지 다 모른척했습니다. 안다고 어찌할 것도 아니고, 괴롭기만 할 것 같아 그냥 눈 감고, 귀 막고 그렇게 모른 척 술만 마셨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야했지만, 다 싫었습니다.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때 죽어버렸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