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선 남자의 눈길

칼을 빼내는 것은 포기다

by 민진


코로나 발발로 어수선했던 그 겨울, 사람들은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공포로 집에서 나오지 도 않았다. 인적 드문 거리에는 봄으로 가는 시기였음에도 겨울의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부모님도 계속 집에만 계셨었다. 코로나 사태가 2년 넘도록 지속되고, 한때 이천 명 넘는 확진자 폭발 시대를 생각하면 그땐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코로나 초창기였던 그 당시로서는 몇십 명의 확진자에도 벌벌 떨던 그런 때였다.


집에만 갇혀 지내던 그 겨울 동안 아버지는 혼자 치매와의 외로운 사투를 벌이셨고, 점점 무너져 가셨다. 치약 대신 염색약을 짜서 양치질을 하시고, 리모컨을 귀에 대고 전화가 안 된다고 난리고, 비번을 잊어버려 집에도 못 들어가고... 증상은 하루가 다르게 심해졌고, 급기야 본인은 치매가 아니라고 약도 안 드시고, 병원에 가는 것조차 거부하시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약도 드시지 않으면서 상태는 더욱 나빠졌고, 어머니를 예전의 사기꾼으로 착각하는 일종의 정신병적 환각 증세까지 동반, 어머니를 많이 괴롭히셨다. 엄마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아버지의 폭언과 욕설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우리가 걱정할까봐 말도 못하고 모든 것을 견뎌내고 있었다. 특히 밤에는 증상이 더 심해져, 엄마는 잠도 못자고 밤마다 아빠에게 시달렸던 것 같았다. 더는 버티기 힘들어진 엄마는 이러다가는 자기도 미쳐버릴 것 같다며 오빠에게 연락을 했고, 그제서야 오빠가 아버지를 설득해 겨우 병원으로 모시고 가게 되었다.


병원을 안 들어가려고 하는 아버지와 실랑이를 하다가 아빠의 가방 속의 칼을 발견한 오빠는 어떻게든 뺏어보려고 했지만, 완강하게 버티는 아버지에게 칼을 뺏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 상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오빠는 이대로 집에 두면 안 되겠다고 모실 곳을 알아보자고 연락해왔다.


사실 치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는 그제서야 장기요양보험에 대해 그리고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 방문 요양 등 지인들을 통해 또는 치매 관련 기관을 통해 아버지를 어떻게 돌봐드려야 할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일단 거동은 불편하지 않으시니 일단은 주간보호센터를 보내기로 했다.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사람들 만나고 저녁에는 약 드시고 주무시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본인은 아픈데도 없는데 왜 그런 곳을 가냐며 강하게 거부하셨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수명이 다 된 전구처럼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를 반복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취업에 대한 열망만은 강하셔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취직 시켜드린다는 거짓말로 아버지를 주간보호센터에 보냈다. 그런데 단 몇 시간도 안 되어서 사기꾼들이라며 뛰쳐나와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자기를 지키려 가방 속에 꽁꽁 숨겨 두기만 했던 칼을 꺼내서 손에 쥐게 되셨고, 자기를 공격하는 사기꾼으로 착각한 엄마에게 칼을 들이대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혹시라도 아빠가 폭력을 행사하면 무조건 집 밖으로 도망 나오시라고 했었다. 다행이 엄마는 아빠가 칼을 들자마자 도망 나와 우리에게 연락하셨다. 빵집에 숨어 있던 엄마는 나를 보자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하소연을 한다.


“나더러 도둑년이란다. 내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누구한테 천 원 한 장 훔친 적이 없다. 그런 나한테 도둑년이라며 죽이려고 한다. 이대로는 못산다.”

"아빠가 아파서 그런 거잖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겨우내 저랬다. 이제는 칼까지 들고 설치는데 더는 못 참는다. 요양원 보내자."

"주간보호센터도 뛰쳐나와 버리는데, 요양원이라고 가만있겠어? 아빠 같은 사람은 들어가도 나오겠다고 난리 칠거야. 그러면 정말 갈 데 없어. ”

"그럼 정신병원으로 보내면 되지! 너희가 싫다면 그냥 내가 알아서 하련다.”

"정신병원은 안돼. 엄마."

"난 이대로는 못산다."

"알았어. 요양원이든 요양병원이든 내가 알아볼께. 조금만 참아."



맨발의 엄마가 바들바들 떨고 계신다. 분노에 치를 떨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떨고 계신 것이다. TV에 나오는 무서운 것도 못 보시는 분이, 눈앞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남편이 갑자기 칼을 들고 달려드는 것을 봤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나라도 기겁을 하고 도망쳤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버지를 요양원이나 정신병원으로 모실 순 없다.


난 진정하시라고 엄마가 평소에 좋아하시던 아이스크림을 드려보지만,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하신다. 난 엄마에게 잠시 빵집에서 계시라고 하고는, 엄마 신발도 챙기고 아빠도 어떻게 계시나 보려고 집으로 가보았다.


아빠는 거실 바닥에서 잔뜩 웅크리며 주무시고 계셨다. 추워 보여 이불을 덮어드리려 하니, 신주단지라도 되는 듯 품안에 꼭 안고 있는 가방이 보인다. 살짝 열려진 가방 속으로 등산용 칼이 보인다. 아마 엄마가 얘기했던 그 칼인 것 같다. 난 아빠 몰래 살짝 칼을 꺼내려하는데, 주무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나를 노려보신다. 그 눈은 평소 나를 바라보던 아빠의 다정한 눈빛이 아니라,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맹수의 눈빛,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순간 움찔했다. 등골이 쭈볐해지는 매서운 눈초리에 나도 모르게 동작 그만. 나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났다. 살짝 누그러진 아버지의 눈빛을 보고, 난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빠, 추워” 하면서 이불을 덮어드렸다. 아빠는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잠시 보더니 지친다는 듯 돌아누워 눈을 감으신다. 그러면서도 품안에 가방만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엇이나 되는 듯 품에 꽉 껴안으신다.


칼을 빼내는 것은 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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