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빵집에서 모셔 온 엄마는 주무시는 아버지의 모습만으로도 겁이 나는지 다시 나가려고 하신다. 난 괜찮다고 엄마를 위로하고 방으로 들어가시게 했다. 자다가 일어나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는 아버지와 방에서 겁에 질려 떨고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같이 있으면서 두 분을 지켜드려야 했지만, 나도 너무 힘들었다.
두 분이 주무시는 것을 확인하고 살짝 집을 나오려는데 엄마가 언제 일어나셨는지 빼꼼히 안방 문을 연다. 엄마의 표정은 가지 말라는 간절함을 담고 있었지만, 입은 어서 가서 쉬라고 하신다.
무서웠을 텐데 ...
나를 붙잡고 싶었을 텐데 ...
항상 그래왔다.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면, 무슨 할 일이 있다고 하면, 부모님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먼저, 성큼 열 걸음 정도는 뒤로 물러나신다. 혹시라도 당신들이 자식들 하는 일에 방해가 될까봐 알아서 물러나신다. 아빠의 증상을 우리가 그렇게 늦게 알았던 것도 우리가 걱정할까봐 엄마가 말을 안했던 것도 있었다. 두 분 다 항상 “괜찮다”, “걱정마라” 그렇게만 말씀하셨다.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내일 출근을 생각하면 나도 가봐야 한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에 젊은 연인이 스마트 폰을 함께 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있다. 내게는 회색빛의 버스 정류장이 그들에게는 핑크빛인 것 같다. 엄마를 집으로 모셔가야 할까, 그럼 아빠가 혼자 계셔야 할 텐데 그래도 괜찮을까, 자고 갈까 하다가 내일 출근해야하는데 하는 생각 등등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한 가득이다.
버스가 도착하자 난 일단 버스에 올라탔다. 카드를 찍고 빈 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는데, 횡단보도를 건너 달려오는 엄마 모습이 보인다. 난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아빠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집에 들어가기 주저하는 엄마를 문 앞에 세워두고, 내가 일단 집에 들어가 보았다. 엄마는 눈치를 보다가 살짝 내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오셨다. 아빠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시며,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반갑게 맞이하신다.
“왔니?”
낮에 너무 피곤해서 샤워도 못하고 주무셨다며,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신다. 먹었다고 하자 “자고 가라”고 하신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버지의 모습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다. 집에 놀러 가면 아빠는 항상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일단 들어가면 “왔니?”, 그 다음은 “밥은 먹었니?” 그리고 항상 맨 마지막은 “자고 가라”로 끝내신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눈치였다. 칼 이야기를 하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웃으신다. 그리고는 오늘 이상하게 피곤하다고 하시며 다시 자리에 누우신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자고 가라”고 하신다.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나도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엄마도 어이가 없는지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멀쩡할 땐 또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하다”
"자고 갈까?"
"피곤하지 않겠니?"
"혼자 있을 수 있겠어?"
"한바탕 난리치고 나면 많이 자더라. 걱정 말고 가라."
" .....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아마 엄마는 잠을 못 주무실 거다.
칼 들고 설치는 사람 옆에서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는가.
엄마, 아빠는 당신들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자식들을 키웠지만, 자식들은 단 하룻밤 내어드리는 것에도 인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