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버지의 상태를 생각하면 미리 요양원에 대해 알아둬야 했다.
요양원을 알아보며 요양원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등급이 좋은 요양원들은 대부분 자리가 없다는 것도. 나는 여기저기 요양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하면서 아버지의 상태가 단순 치매가 아니라 섬망증을 동반한 치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섬망증이란 생생한 환각 증상을 동반하며 폭력적인 행동을 유발시키는 뇌 기능 장애라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환각을 보며 폭력적인 되는 정신병, 즉 미친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누군가 진짜로 자기를 죽이려하고, 돈을 훔쳐 간다고 생각하며, 엄마가 진짜로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착각이 아니라 아빠에게는 리얼이라는 것이다!
아빠의 세상은 온갖 사기꾼과 살인자, 마누라조차 사기 치는 그런 세상이라는 것인데...
끔찍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잠도 잘 못자고, 사람들이 자기 돈을 훔쳐 갈까 봐 불안해하고, 사기꾼이 자기를 공격할까봐 칼을 들고 다녔던 것이다. 그날이 그날인 지루한 일상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와는 달리, 아버지의 세상은 범죄가 난무하는 그런 세상이었던 것이다. 나이 들어 노쇠한 몸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밤에는 잠을 못자고 두려움에 떨어야하는 그런 삶 속에 갇혀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불쌍하다...
너무 불쌍하다...
지난날 여러 번 사기를 당해 힘들게 살아오신 것도 억울한데,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린 것으로도 부족해 이렇게 가혹한 세상에 갇혀버린 아버지가 너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파, 지옥 같은 그곳에서 당장 꺼내드리고 싶지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아버지를 위해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딱히 없었다.
섬망증은 치료를 안 하면 잠을 못 자고, 증상도 심해져 아주 폭력적이 된다는 소리에 일단 병원으로 모셔 치료를 받게 하기로 했다. 엄마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려고 했으나, 아버지는 의사가 사기꾼이라며 병원 가기를 거절하셨다. 어쩔 수 없이 오빠가 나서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나마 가족 중에 아버지가 유일하게 말을 듣는 가장 어려워하는 사람이 바로 아들이다.
그러나 오빠 때문에 억지로 병원에 간 아버지는 의사가 자기를 죽이려한다며 진료도 받기 전에 병실을 나와 버리셨다. 어쩔 수 없이 오빠 혼자 의사와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 받아, 거의 협박하다시피 아버지가 약을 드시게 했다. 약을 드신 아버지는 일찍 잠자리에 드셨고, 오빠는 그 모습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출근하면서 혹시나 싶어 전화를 해보니, 아빠가 아침을 드시고 계신단다. 평소 6시면 아침을 드시는 분들인데 아침이 많이 늦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하도 안 일어나, 혹시 이러다 죽는 건가 싶어 겁이 덜컥 나, 억지로 깨워 아침을 드시게 했다고 한다.
다행이 모처럼 푹 주무신 아버지는 화도 안내고, 평소처럼 TV를 보시며 집에 계신다고 하셨다.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쉽게 나아질 수 있는 것을, 이렇게 쉽게 아버지를 지옥에서 꺼내드릴 수 있었는데... 우리가 너무 어리석었다. 엄마는 밤에 잠만 자도 살 것 같다며, 이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전에는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이 모처럼 다시 찾아왔다. 더 이상 출근길에 아빠로부터 이혼하겠다는 전화도 없었고, 엄마가 아빠를 피해 집을 도망 나오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꿈만 같았던 그 평화로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