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리셋 되어버린 아버지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by 민진


약에 내성이 생긴 건지 아니면 치매가 심해지면서 약효가 떨어진 건지...


섬망증 약이 치매에 안 좋으니 반 알만 드시게 하라는 의사의 말대로 하루 적정량 이상을 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약을 드시는데도 증상이 다시 나타났고, 간혹 전처럼 폭력적이 되시는 경우도 많아, 우리는 의사와 상담 후 한 알씩, 복용량을 늘려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전처럼 증상이 완화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곧 다시 증상이 나타났고 예전 상태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한 달도 안돼 약효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빨리 사라졌고, 아버지는 분노의 열차처럼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이혼하겠다는 아빠의 전화가 다시 알람처럼 울렸고, 엄마는 아버지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녀야했다.


기운차게 돌아다니시는 분을 요양원에 넣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일단 집으로 와서 아버지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돌봐주시기도 할 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데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모시는 건 안될 것 같아. 이러다가는 어머니, 아버지 줄초상을 치를 것 같다. 요양원으로 모시자."

"....."


아버지는 매일 샤워를 하신다. 춥지만 않으면 아침, 저녁 그렇게 매일.

아버지는 방이 답답하다고 꼭 거실에서 주무신다.

그리고 아침에 청소기를 돌려 청소를 하신다.

청소 후에는 식사 전 1시간 정도 산책을 하신다.

산책 후 아침을 드시고, 어머니가 계셔도 빨래, 설거지 등 집안 일을 하신다.


그렇게 잠시도 가만히 계시지 못하시는 분이다.


이런 분이 좁은 방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잠이나 잘 주무실 수 있을까...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건물 안에 갇혀 하루도 아니고, 계속, 언제까지가 될 지도...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런 생활을 하실 수 있을까...


얼마나 힘드실까...

얼마나 괴로우실까...


제 정신이시면 아마 미쳐버리실 거다.


그러나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더는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이러나 아버지가 정말 큰 사고라도 친다면...

엄마를 사기꾼으로 착각하는 아버지가 엄마에게 칼부림이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뉴스에 보면 조현병 환자가 환청에 시달리다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간혹 보도된다.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조현병 환자들은 ‘저 사람을 해치지 않으면 네가 다친다’는 환청을 듣거나, ‘저 사람이 나를 해치려 한다’는 피해망상을 겪는다고 한다. 아버지랑 너무 비슷하다. 칼까지 든 아빠가 엄마를 찌르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아빤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식구들과 의논 끝에 우리는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아버지를 더는 집에 모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이대로 두다간 아버지가 요양원이 아니라 정신병원 아니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다.


인간의 시간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흘러갔으면 좋겠다. 인생 끝자락에 병들고 초라하게 늙어가는 모습이 아니라, 영화처럼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이라면... 인생의 종착역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잔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빠. 정말 미안해....아빠를 요양원으로 보내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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