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 감옥

요양원

by 민진


요양원은 최대한 아버지가 편하게 계실 수 있는 곳으로 알아봤다.


사람들이 추천하고 상위 랭킹의 요양원들은 시나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시립, 구립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런 곳들은 대기를 걸어놔도 짧게는 1년에서 3년, 심할 경우에는 5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곳도 있었다. 코로나로 입소 자체를 금지 시킨 곳들도 적지 않아 상황은 더 나빴다.


또한 아버지의 상태를 듣고 예약 자체를 거부한 곳도 적지 않았다. 요양원들이 선호하는 환자는 얌전하게 말 잘 듣는 환자였다. 아버지처럼 환각에 시달리며 폭력적인 성향까지 보이는 환자는 시설 내에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아 입소 자체를 꺼려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갈 수 있는 요양원은 등급도 낮고, 상대적으로 시설도 열악한 곳 밖에 없었다. 아니면 서울을 벗어난 외곽지역이나 저 멀리 지방에 있는 무조건 모시고 가겠다는 요양원들뿐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곳에 아버지를 보낼 순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곳은
아버지를 돌봐줄 곳이지,
아버지를 가둬둘 곳이 아니다.


일단 예약 가능한 등급 좋은 요양원들 모두 예약을 해두었다. 그리고 입소 가능하다는 곳들 중에서 시설을 보여주는 곳이라면 다 찾아가보았다. 잠시 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내 부모가 살 곳인데 미리 확인해야했다. 그래서 입소 가능해도 시설을 볼 수 없는 곳은 제외시켰다. 코로나 방역 대책에도 시설 방문을 허락한 곳들은 빈자리를 빨리 채우려는 곳들도 있었지만, 몇몇 곳은 자리가 없는데도 보호자들의 마음의 헤아려 배려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내 인생 처음으로 요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 요양원은 감옥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 곳에 아버지를 모시게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졌다. 그러나 방문해본 요양원들은 감옥이라기보다는 배낭여행 다니며 다녔던 숙박시설 게스트하우스와 비슷해 보였다. 한 방에 4명에서 6명 정도가 함께 거주하는 공간. 2명인 곳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좋은 곳은 방마다 화장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층에 하나 정도 있는 화장실을 함께 이용하는 것 같았다. 아니 대부분 기저귀를 채워버리는 것 같았다.


여행 다니다 보면 집에 돌아가고 싶을 때, 가장 그리운 것이 내 침대이다. 남다른 쿠션감과 쾌적함을 자랑하는 고급 침대가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침대이지만, 내 침대가 가장 그립다. 사실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고즈넉한 내 잠자리가 그리운 것이다. 길어야 한 달 정도인 여행에서도 이런데, 이런 곳에서 다른 사람과 남은 생을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은... 상상도 안된다.


요양원에는 백발에 주름 가득한,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잘 구분이 안 되는 그렇게 비슷비슷하게 생긴 노인들로 가득했다. 고령화, 고령화해도 사실 길거리에서 백발에 거동도 불편한 노인들을 그렇게 많이 보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분들 대부분 이런 시설에 들어와 계시는 것 같았다.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노인들이 방마다 가득했다.


색이 많이 바란 초점 없는 눈동자들이 방을 둘러보는 나를 바라본다. 이 인실에 누워있던 할아버지 한 분은 방안을 들어서는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는다. 직원 말이 나를 자기 딸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한다.


대낮인데도 적막이 흐르는 요양원.

죽음이 가득 드리워진 요양원에 갇혀있는 노인네들.

아마 그들은 죽은 후에야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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