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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뗄라 May 20. 2024

모르는 이를 향한 질투

내가 느끼는 감정의 정확한 이름

나도 쓸 수 있을 듯 쉽게 쓰인 에세이가 베스트셀러가 될 때, 나도 할 줄 아는 몇 가지 외국어로 유행가 가사를 바꿔 부르는 가수가 인기를 얻을 때, 괜히 마음이 불편해 그것을 보고 듣지 않으려 했다. 나도 기호가 있으니까 그냥 그 사람들을 안 좋아할 수 있지 않나 하고 합리화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열등감 같은 것이리라 짐작했다.


그러다 상담에서 지나가듯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상담사가 물었다. 왜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질투하느냐고. 보통은 주변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느냐고. 나는 부와 유명세,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능력은 부럽지 않았다. 약속 장소에 나온 친구 손에 들린 명품 가방이나 손흥민의 월클 축구 실력이 질투 나지 않는다. 대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걸 누군가 이미 성취했을 때 마음이 불편했다.  


겨우 저런 글을 써서 책을 내나, 하는 나의 평가는 겉보기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지만서도) 그들을 끌어내리려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너는 왜 저런 글 못 써?'라며 나를 닦달하고 있는 것이었다. 너는 뭐 하고 있었어? 너도 빨리 뭐라도 해야지. 너는 왜 글 안 써? 너는 왜 악기 연주 안 해? 너는 왜 자기 계발 안 해? 모르는 이를 향한 질투는 그들에게 닿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내 등을 떠밀어 패배감의 늪에 빠뜨린다.


상담사는 그것은 자기혐오라고 말했다. 자기 돌봄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고 계시네요.


부러움은 부러움으로 끝나야 한다.  좋겠다, 나도 갖고 싶다. 건강한 사람은 이런 부러움을 투명하게 말한다. 나는 이제껏 이런 감정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간편하게 자기혐오감 데워 먹었다. 읽으면서 무시했던  에세이 작가의 북토크에 가서는 팬이라고 말하면서 책에 사인을 받는다. 세상 음침한 인간. ,  자기혐오했다.


만족 없이 늘 헛헛하고 뭔가 더 해야만 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 나는  마음이 어디에서   안다. 사실 상담사가 말해주기 전부터도 알고 있었다. 성격 문제의 대부분은 원가족과 보낸 유년 시절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어릴  정서적 학대 타령을 하며  것인가. 그러기엔 이제 나이가 적지 않다. 과거는 이미 끝난 일이고, 나는  시절 충분치 못했던 돌봄을 스스로에게 해주어야 한다. 이제 남에게 인정과 지지를 바라는 것을 끝내고 스스로  역할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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