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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브리 Aug 03. 2023

꼬인 실타래를 풀어주는 남편

평범한 사랑의 모습

나는 도전 정신이 강한 편인데, 못해본 일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즐겨한다. 때문에 삶의 반경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결정도 남들보다 쉽게 하지만, 항상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냥 가볍게 새로운 취미 활동을 시작하는 것도 좋아한다. 기분전환을 하기 위함도 있고, 한번 사는 인생, 작은 일이더라도 생산적인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그러한 이유로 얼마 전에 코바느질을 시작했다. 꽤 전부터 시작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생겨 10만 원어치의 재료를 바리바리 사들고 냉큼 시작했다. 재료값이 생각보다 비싸더라. 그래도 훗날 할머니가 되면 흔들의자에 앉아 멋진 뜨개질을 휙휙 해나가는 것이 나의 오랜 로망이었기 때문에 일단 코바느질부터 배워보기로 했다.


해야 할 일을 하기보다는 노는 것이 항상 더 흥미롭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 가지에 꽂히면 무작정 파고드는 성격 탓인지, 버벅거리는 손을 원망하며 실을 꼬았다가 풀었다가를 며칠을 반복해 나갔다. 그렇게 지금까지도 혼자 코바느질을 터득해 나가고 있다. 이번 취미는 오래 하고 싶은 마음에 나름 끈질기게 붙들고 있는 중이다. 크게 손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없는 것도 아니기에 조금 삐뚤빼뚤해도 이제 제법 모양새는 갖춘 상태이다. (그런데 손에 익지 않아서인지 실을 아직도 10분 이상 똑바로 당기지는 못하고 있다…)


코바느질을 시작하고 보니 나의 부족한 인내심 기르기에 도움도 되고 나름 재미도 있어 금방 맛 들렸다. 남편이 고른 남색 계열의 실로 이틀 안에 남편 목도리를 완성했다. 그리고 곧바로 핑크 베이지 계열의 굵은 실로 담요도 새로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욕심이 너무 과했는지, 당시 나의 수준에는 너무 어려운 패턴을 시도해 수차례의 실패를 맛봤다. 반나절을 들인 작업을 순식간에 풀어내기를 몇 번 반복하니 속상하기 그지없었다. 짜증이 나 며칠을 던져두고 마음에 찝찝함을 지우려 애쓰기도 했다. 결국 나는 나의 수준을 인정하고 좀 더 쉬운 패턴에 정착하게 되었다. 문제는, 실을 자꾸 꼬았다, 풀었다 하다 보니 실이 엉키기 시작했다. 이미 말했다시피, 인내심과는 거리가 먼 나는 몇 분 꼼지락 거리다 바로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남편은 그 뒤로 나의 실타래를 풀어주기를 담당했는데, 심하게 엉킬 때에는 두 시간도 넘게 붙들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수차례 나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별 것도 아닌 나의 취미 생활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내 실타래를 풀어주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엉킨 실타래는 우리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아주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 비해 여유가 부족한데, 그런 나를 차근차근 따라와 주며 나의 마음을 풀어나가 주는 사람.


담요는 만들다가 굵은 실이 부족해서 잠시 멈춘 상태이지만, 새로 만들고 있는 탱크톱은 실타래가 엉키지 않도록 조심히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가 나에게 보여주는 애정도 고맙지만, 그걸 당연시하지 않고 처음부터 고생 시킬 일을 만들지 않도록 신경쓰는 것도 중요하니까! 이처럼 나도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우리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열중하여 실타래를 푸는 남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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