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그때, 그대
시간이 지나며 입맛도 바뀌어 간다.
한참 동안 좋아하던 매운 라면이 맛이 없어지고, 싫어하던 브로콜리를 먹기 시작한다. 아직도 좋아하지만 옛날만큼은 못 먹는 삼겹살도 그러하다.
어렸을 적부터 삼겹살을 무지 좋아해서 생일날이나 특별한 날이면 삼겹살부터 찾았다. 타지 생활 중에도 어떻게든 삼겹살을 구해다 먹었다. 한국을 방문할 때면 삼겹살집은 나에게 필수코스였다.
부족하다고 느낀 적 없지만, 우리 집은 따지고 보면 가난했다. 해외를 오가던 중, 한국에서 잠시 초등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저소득층 학생들을 부를 때면 불린 두어 명 사이에는 나의 이름이 꼭 들어갔었다. 하지만 난 그것을 한 번도 부끄러워한 적은 없었다. 나는 부모님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고, 저소득층이라는 것이 잘못도 아니기에 숨길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물어봐도 거리낌 없이 답해주었다.
그러나 결핍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는데, 한국에 머물 당시에는 유난히 심했어서 정말 얼굴 뵙기도 힘들었다. 어렸을 적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돌아보면 조각만 간간히 남아있을 뿐이다. 부모님은 최선을 다 하셨지만 어린 나로서는 그만큼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고 느꼈다. 아마 그래서 조금은 일찍 철들 수밖에 없었나 보다. 어떤 일을 겪어도 울지 않기 시작한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두 자릿수 되는 나이에 막 익숙해져 가며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참고 견뎌냈다.
좋아하는 삼겹살도 큰맘 먹고 사 먹어야 했던 때, 언젠가 엄마와 함께 삼겹살 집에 간 적이 있다. 엄마와 나, 둘만 이서.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갈급했는지 모른다. 내가 엄마 몰래 짊어진 짐을 다 털어놓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엄마와 오롯이 함께하는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볼품없는 작은 식당에 삼겹살은 값도 쌌다. 그마저도 충분하게 시키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때 먹은 삼겹살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삼겹살집을 나오며 그렇게 아쉬웠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 집 사정은 알파벳 떼기도 전부터 알았기에 속으로 나중에 꼭 다시 와서 그때는 내가 엄마를 양껏 사드리리라 다짐할 뿐이었다. 엄마는 거의 드시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쓰라렸다.
최근에 한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 그 골목길을 다시 가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 그런지 가게는 사라지고 부동산이 들어와 있었다. 씁쓸했다.
당장 아무리 맛집을 찾아간다 한들 그때 그 맛을 다시 경험하지 못할 것을 안다. 약간은 쾨쾨한 냄새의 골목, 선선한 가을 날씨에 소박한 가게 방바닥에서 마주 보고 앉아 먹었던 삼겹살 조금에 죄책감을 무릅쓰고 주문한 된장찌개 하나. 그날의 기억은 나의 마음을 따듯하게 적신다.
가끔은 가장 부족했던 시간이 가장 풍요로운 추억이 된다는 게, 참 이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