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샤워 후 욕실 커튼을 젖히고 세면대의 거울을 보니 중앙 네모진 곳만 선명하고, 나머지는 수증기로 흐릿했다. 수증기가 끼지 말라고 중앙을 뭔가로 미리 발라둔 것이라 생각했다.
이전에도 여러 번 호텔에서 이런 현상을 목격하곤 궁금증을 갖고 있던 터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비누거품이나 치약을 헝겊에 묻혀 거울을 문지르고 물로 씻어내면 그 부위에는 수증기가 끼지 않는다고 했다.
요즈음엔 수증기 방지용 기능성 필름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고급 호텔에서는 이런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쓰고 있다는 것을 '짱구아빠의 블로그'란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욕실에서 나오는 온수를 거울 뒷면의 온수히터 파이프로 통과시킴으로써 거울의 일정 부분의 온도를 높여 수증기의 응결이 일어나지 않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유레카!
아침이 배달되었다.
Poached Eggs Grilled Honey Ham Roasted Potato Mini Slice Pancake Croissant, Danish, Toast Whole Fruit : Banana, Apple
계란 2개만 먹어도 포만감이 들었다. 커피포트에 물을 담았다. Earl Grey 차를 마시기로 했다. 100도로 물을 끓여 220ml를 부어 3~5분 우리라는 설명이 있었다. 타이머로 평균 잡아 4분을 재고 티백을 뺐다. 진한 색깔이 아메리카노를 쏙 빼닮았다. 잔을 코에 가까이 대보니, 벽에 한약재 걸어 둔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한 모금 마셔보니 목으로 넘어갈 때 박하향에 가까운 홍차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음미하며 마시니 평소 양이 많아 남기곤 했던 차 한잔도 다 비워졌다. 티백 뒷면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Dilmah 창업자, Merrill J. Fernando는 60년 이상 그의 인생을 차에 헌신해 왔습니다. 그는 차를 만드는 기술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그의 가업을 관심과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이끌어갑니다. 당신은 그것을 살 수 없습니다." Fernando의 장인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왜 차의 이름이 Earl Grey일까? 영어사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bergamot oil향이 나는 black tea를 일컫는다고 했다. 색깔을 보고 black tea라는 것은 자동 이해가 됐으나, bergamot은 뭘까 궁금했다. 이태리 남부에서 자라는 식물로, 아로마 오일을 추출할 수 있다고 했다. Second Earl Grey라고 알려진 Charles Grey는 1830년부터 1834년까지 영국의 수상을 지냈는데, 그가 중국 고위관리로부터 선물로 받은 티에 그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했다. 티백 뒷면에 성분은 '베르가못 향을 지닌 순수 실론 블랙티'라고 적혀있었다. 실론은 스리랑카의 옛 이름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과거 음료 선전 때문에 실론티를 홍차로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라 일반적인 스리랑카 차란 걸 이제 알았다. 차나무의 잎을 발효시킬 때 중국에서는 빨간색으로 된 것을 보고 홍차라 불렀고, 서양에서는 검은색으로 된 것을 보고 블랙티라 부른 것이었다. 결국 홍차의 영어 이름은 블랙티였다. 부슬부슬 비도 오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요가를 해보기로 했다. 리셉션에서 이메일로 보내온 유튜브 영상을 노트북으로 틀었다. 소파에 노트북을 놓고 그 앞에 매트를 깔고 강사를 따라 했다. 느리게 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굳어있던 근육들을 자극했다. 강사에 비하면 난 통나무였다. 왜 그리도 안 구부러지고 안 펴지는지. 등줄기에 땀이 나고, 안 되는 동작이었지만 인내했다. 요가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마지막 천정을 보고 누워 숨 쉬는 포즈가 너무도 좋았다. 반시간 동안의 요가로 기진맥진됐고, 일어서니 사지가 떨렸다고 하면 과할까.
리셉션에서 이메일을 통해 테스트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고, 내일 몇 시에 퇴실할지를 문의했다. 11시 30분이라고 답했고, 9시 30분에 호텔 시설을 돌아볼 수 있도록 안내를 요청했다. 여기까지 와서 방안에만 있다가 나가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시 샤워를 하고 점심을 마주했다.
Yang Chow Fried Rice Crispy Chicken Kung Pao Garlic Broccoli White Chocolate Cake
Kung Pao의 사전적 의미는 '튀겨서 땅콩을 곁들인 매운 소스에 담아낸'이란 것이었다. Kung Pao chicken은 중국 스쫜성(Sichuan) 지방의 음식으로 땅콩, 야채, 매운 후추가 들어간 매운 닭볶음이었다. 빨간 고추가 들어가 매콤했고, 순한 볶음밥과 매콤한 쿵 빠오 치킨은 절묘한 조합이었다. 외국 나가서 깐풍기가 생각나면 이 음식을 시키면 될 듯싶었다.
Garlic Broccoli는 배달이 안됐다.
내게 2시간의 달콤한 낮잠을 선사했다.
ZOOM을 통해 한국에 있는 교회분들과 영상으로 모임을 가졌다. 감사를 주제로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어 참 좋았다. 팬데믹이 역설적으로 가져다준 혜택이다.
퇴실이 다가오는지 셰프도 한 가지씩 빼먹는 듯했다. 이번엔 Mix Vegetables이 빠졌다. 페네이 아라비아타는 여전히 외우기 어려웠다. 나는 김치를 매우 좋아하지만, 김치 못 먹어 안달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번에도 김치 없이 일주일을 잘 견뎌냈다. 물론 컵라면 속에 든 볶은 김치를 먹긴 했다. 바둑에서 패했다. 내 약한 돌을 돌보지 못해 졌다. 상대방을 어떻게 잡을지만 생각하다 보니 정작 내 약점은 못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