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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우 May 08. 2019

花札(화투)와 麻雀(마작)에 관하여

화투와 마작에 관해 알아보는 간단한 알쓸신잡 

일본의 화투는 대략적으로 전국시대에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일본에 전래된 트럼프카드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 역사가 시작된다.

만요슈의 시를 읊으며 짝을 맞추는 카루타도 사실 트럼프가 일본에 전래되면서 시작된 놀이이고, 이 카루타가 도박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하면서 에도시대에 금지령이 몇 차례 내려지고 이를 피해가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한 것이 화투이다.

단, 일본에서 화투는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산업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기 시작한 메이지-타이쇼 시대를 거쳐 빠른 속도로 퇴보의 길을 걷는다. 도박성이 강한 게임이라곤 하지만 그 자체가 원래부터 조정대신들이나 고위 무사계급 등, 지배계층의 놀이였기에 민간으로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면도 있었지만, 중국에서 유입된 마작, 조선에서 유입된 투전과 골패, 그리고 근대화를 거치면서 트럼프 카드를 이용한 게임이 더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투를 만드는 방식이 대중적이지 못한 것도 일본에서 화투가 퇴보하게 된 원인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플라스틱제와 달리 일본의 화투는 뽕나무 껍질에 점토를 바른 후 한지를 여러 장 겹쳐서 굳히는 형태로 제작된다. 여기에 우키요에와 비슷하게 목판화를 입히는 형식으로 완성되는데, 이는 오늘날의 몇 안되는 화투 메이커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생산방식이고, 화투 메이커로 시작하여 오늘날에도 화투를 제작하고 있는 일본 굴지의 게임 메이커, 닌텐도 역시 이렇게 생산하고 있다.


화투가 조선왕조 후기에 한반도로 전래되어, 기존의 투전이나 골패 등의 놀이를 빠른 속도로 대체해나가고 또 대한제국 몰락 및 일제에 의한 식민지 시대를 통해 빠른 속도로 서민층에 흡수되었던 것과는 반대로, 일본에서는 서민층에 전래되기 이전에 쇠퇴의 길을 걷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일제가 조선의 서민들을 이간질시키기 위해서 화투를 장려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작 식민지시대 내내 조선총독부는 모든 종류의 도박을 금지하고 형사처벌도 종종 이루어졌으며, 그 형벌의 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화투가 "비싸고 고급스러운 물건"이라는 인식 덕분에 일본에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반대로 한반도에서는 투전과 골패를 대체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카드 게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데는 한국의 인쇄기술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도 초창기에는 일본과 동일한 방식으로 생산이 되었지만, 타산이 맞지 않는 전통생산방식을 버리고 플라스틱 카드에 인쇄물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대체된다. 또한, 일본의 화투에는 없는 광이나 쌍피 등의 룰이 적용되고, 띠(청단, 홍단, 초단)의 분류도 일본의 화투에 비해 간략해지는 등, 독자적인 게임으로 발전하게 된다.


반대로 일본의 경우, 만연집을 읊어가면서 짝을 맞추는 카루타는 하나의 예술행위로 발전했다. 


물론 도박성을 묘하게 스포츠로 발전시킨 경기 카루타가 존재하지만 여전히 마이너 스포츠에 불과하고, 하나후타는 정월 초하루에 짝을 맞추며 노는 정도의 전통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정작 일본에서 근대화 이후 국민 도박으로 자리를 잡은 건, 중국에서 건너온 "마작(麻雀)"이었다.


마작은 1910년에 나츠메 소세키가 아사히신문사를 통해서 출간한, 만한여기저기(満韓ところどころ)에서 처음 언급되는데, 1909년 9월에서 10월에 걸쳐 한국과 만주를 여행한 나츠메가 목격한 일담을 주제로 삼은 이 수필이 대히트를 치면서 마작 붐이 일어난다.


메이지, 타이쇼 시대에는 마작을 치는 것 = 젊고 잘나가는 지식인들의 소양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인기를 누렸는데, 지금은 상당히 보수적인 글과 소설을 출간하는 일본의 "문예춘추"사가 사실 일본에서의 마작 붐을 일으킨 원흉 중에 하나다. 타이쇼 시대에 문예춘추는 마작에 얽힌 설화나 마작 공략집 등을 출간하면서 마작 붐을 형성하는데, 종국에는 마작 패를 제작해서 판매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에는 교토대학을 중심으로 한 칸사이 지방의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 주변의 상점가에서 겉멋만 잔뜩 들어간 대학생들이 마작을 치는 게 유행하기도 했다. 


마작 역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시기에 이르러 "도박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한때는 쇠퇴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 일본이 고도성장기에 진입하면서 한국 및 중국과의 왕래가 잦아지기 시작할 무렵, 당시 잘 나가던 일본의 소설가, 이로카와 타케히로(色川武大)가 자신의 다른 필명, 아사다 테츠야(阿佐田 哲也) 명의로 마작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 중국을 오가며서 마작을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한, 1965년부터 75년까지 10년에 걸쳐 연재한 "마작유랑기"라는 소설이 대히트를 치면서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 인기를 바탕으로 마작을 "도박"에서 하나의 "문화"로 바라보는 풍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로카와 타케히로는 "마작은 단순한 도박이 아닌, 중국 5천년 역사를 담은 지적인 게임"이라는 식으로 마작을 찬미해댔고, 그래서 얻은 별명이 바로 마작계의 성인, 즉 작성(雀聖)이다. ㅋㅋㅋㅋ 


에이잇 아이폰 케이블이 또 망가졌다. 다이소 갔다가 오래간만에 "초절정 미소녀가 험난한 카루타계에 몸을 담아 전국 강호들을 물리치고 정점에 도달한다는 내용의 본격 미소녀 변신 마법 액션 전대물 치하야후루"(믿으면 골룸)나 다시 읽어야겠다.(믿으면 당신은 골룸)

뭐, 그렇다구. 후후후후 


p.s. 참고로 일본의 화투에는 "광"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광이 있기는 한데, 광자가 박혀있지 않다는 이야기. 홍단 3장도 그냥 "홍단"으로 되어 있지 않고 각기 다른 표기로 되어있으며, 청단의 경우 초단과 마찬가지로 그냥 푸른 띠에 불과하다. 청단이 모두 모였을 때 초단보다 강력한 점수를 갖고 홍단에 필적하는 패가 된 건 한국에서 발전한 독자적인 룰이다. 물론, 쌍피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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