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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우 Feb 23. 2019

제발 '발렌타인 데이'에 쓸데 없는 주장을 하지 말아라

초콜릿을 받고 싶으면 그냥 솔직하게 받고 싶다고 징징거리는게 낫다. 

최근 몇년 간, 해마다 ‘발렌타인 데이’가 되면 '2월 14일은 故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인데 일제가 이를 잊게 하려고 교묘한 상술을 펼치는 바람에 순국열사에 대한 기억을 잊게끔 했다'는 식의 글이 연례행사처럼 올라오고 있는데..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발렌타인 데이’에 연인들이나 부부들이 서로에게 선물을 건네주거나 초콜릿을 선물하는 풍습은 일본이 만든 상술이 아니다. 


‘성 발렌티누스 축일’에 초콜릿, 과자, 사탕 등을 선물하는 풍습은 유럽에서 18-19세기 초반부터 굳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술은 일본에서 비롯된 것만도 아니고 미국이나 유럽도 마찬가지이다. 상술로 써먹기 시작한 건 솔직히 서양이 먼저이다.


‘발렌타인 데이’의 정확한 기원은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학계에서는 그 기원을 제정 로마 시대의 여신 ‘유노(Juno)’의 축일이었던 ‘Juno Februata’에서 온 것이라고 추정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유노’는 그리스 신화의 ‘헤라’에 해당하는 로마의 여신이자, 가정과 결혼의 신이기도 하다. 혹자는 같은 시기에 열리던 ‘루페르쿠스(Lupercus, 그리스 신화에서 판에 해당하는 목축의 신)’ 축일이었던 ‘Lupercalia’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두 축제 모두 결혼을 앞둔 연인들이나 이미 결혼을 한 부부들이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풍습이 있었고, 또 2월 13일에서 15일까지 3일간 이어진 ‘Lupercalia’의 경우에는 미혼의 남녀가 서로 제비를 뽑아 데이트를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긴 하다. 


2월 14일은 ‘성 발렌티누스’ 축일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발렌티누스’라는 신부가 사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법을 어기고 몰래 결혼을 성사시켜주다가 발각되어 사형을 당했고, 이를 기리기 위해 생겼다는 이야기다. 제49대 교황이었던 ‘젤라시오 1세(Gelasius PP. I)’가 'Lupercalia'를 폐지하고 성모 마리아 축일을 신설하면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경향도 있고, 혹은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 2세(Caludius II, Marcus Aurelius Valerius Claudius Augustus)’가 제국의 속령과 식민지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의 연인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축제를 만들었고 이게 나중에 ‘발렌티누스’ 신부의 축일과 겹쳐지게 되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다만 ‘성 발렌티누스 축일’은 한 명의 카톨릭 성인을 기리는 날이 아니라, 비슷한 일을 행한 여러 사제들의 에피소드를 모아 만들어졌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발렌티누스’라는 이름은 당시에는 상당히 흔해빠진 이름이었기 때문.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도 최소한 3명 이상의 사제들의 이야기가 합쳐진 것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문헌으로써 최초로 발렌타인 축일이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고 확인하는 날이라는 것이 기록된 것은 중세 영국의 시인이자 외교관이었던 ‘제프리 쵸서(Geoffrey Chaucer)’가 1382년에 발간한 시집, ‘Parlement of Foules(The Parliament of Fowls)’에 등장하는 이 구절이 최초로 알려져 있다. 


"For this was on seynt Volantynys day Whan euery bryd comyth there to chese his make(성 발렌티누스 축일인 2월 14일에는 모든 새들이 교미를 위해 짝을 이루는 특별한 날이다).” 


또한 15세기 초반의 프랑스의 왕족이자 발루아-오를레앙 가문의 당주이자 루이 12세의 아버지기도 했던 ‘샤를 1세 도를레앙 공작(Charles d'Orléans)’은 평생에 걸쳐 사랑과 이별에 관한 시를 많이 쓴 것으로도 유명한데, 


"Je suis desja d'amour tanné, Ma tres doulce Valentinée...(이 사랑스러운 발렌티누스의 축일에, 나는 고통스러운 사랑에 빠져 있답니다)."
 

라는 구절을 남기기도 했다. 참고로 이 시는 ‘아쟁쿠르 전투’에서 패배한 후 런던으로 호송되어 포로 신분으로 런던 타워에 유배되어 있던 시절에 읊은 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기 1600년에서 1601년 사이에 집필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4막 5장에도 ‘발렌타인 데이’에 관한 기술이 나온다. 
 
"To-morrow is Saint Valentine's day, All in the morning betime, And I a maid at your window, To be your Valentine. Then up he rose, and donn'd his clothes, And dupp'd the chamber-door; Let in the maid, that out a maid. (내일은 성 발렌타인 축제날, 동녘 하늘이 밝아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이 처녀가 사랑하는 님의 창 밑에 서서 그대를 기다릴 거에요. 내 님은 일어나 새 옷으로 갈아입고 방문을 열어주네요. 들어갈 때는 처녀였으나 나올 땐 처녀의 꽃잎이 떨어졌으리)."


1797년에는, 사랑의 신인 큐피트의 그림이 담긴 발렌타인 데이 카드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1835년에는 약 6만개의 ‘발렌타인 데이 카드’가 발송되었다는 기록이 영국 문헌에 등장하며, 1861년에는 영국의 리처드 캐드버리(Richard Cadbury)란 인물이 밸런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광고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처럼, ‘발렌타인 데이’가 ‘故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인데 일제가 이를 잊게 하려고 교묘한 상술을 펼쳐 순국열사에 대한 기억을 잊게끔 하려는 음모’라는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그럼 일본에서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교환하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일본의 경우 1936년에 코베 시에 위치한 과자메이커, 모로조프(神戸モロゾフ製菓러시아인 드미트리에비치 모로조프가 일본에 망명하면서 세운 업체)가 1936년 2월 12일에 일본주재의 외국인들을 상대로 ‘발렌타인 데이용 케잌과 초콜릿’을 상품화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1958년 2월에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일본의 백화점, 이세탄(伊勢丹新宿本店)에 출점 중이었던 고급 초콜릿 제조 업체, ‘메리 초콜릿 컴패니(メリーチョコレートカムパニー)’가 ‘발렌타인 세일’을 기획한 것이 최초 사례라는 설도 존재한다. 


또한 1960년대에 이르러 일본의 모리나가 제과(森永製菓)가 ‘사랑하는 이에게 초콜릿을 선물합시다(愛する人にチョコレートを贈りましょう)’라는 신문광고를 낸 것이 최초라는 설도 있고 SONY의 설립자인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가 1968년에 SONY PLAZA를 오픈하면서 벌인 캠페인이 최초였다는 설도 존재하는 등, 일본에서도 그 기원은 확실치 않다. 


일각에서는 1960년대 말기에 일본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우리도 남자들에게 당당히 사랑을 고백하자!’는 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일본에서조차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나눠주는 풍습은 태평양전쟁이 종결된 지 20여년이 흘러서야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모로조프 제과가 처음 기획했다는 설이 진실이라고 해도, 故 안중근 의사의 사형언도일보다 무려 26년이나 지난 시점이니, '일제의 악랄한 상술'이라는 썰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에 연인들이 선물을 주고받고 데이트도 하고 그러는 풍습은 서양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풍습이다. 
 
서양에서는 주로 남자가 아내에게 혹은 애인에게 꽃이나 선물이나 혹은 란제리나 초콜릿이나 사탕이나 카드를 선물한다.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이를 노린 발렌타인 데이 세일이라던가, 발렌타인 데이 스페셜이라던가.

Victoria’s Secret이나 Shirley of Hollywood같은 유명 란제리 브랜드에서 발렌타인 데이 한정 상품 내놓는 일도 흔하다. 그저 차이가 있다면, 서양에서는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축일이고, 일본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고백하거나 선물을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인 거다. 


이처럼 ‘발렌타인 데이’는 그 역사도 오래 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기리는 세계적인 축제다. 카톨릭에서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식 축일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수 많은 나라들이 기리는 축제다.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도 '발렌타인 데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남미의 경우에는 꽤나 크레이지한 이벤트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故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서거한 날은 1910년 3월 26일이다. 추모를 해야 한다면 3월 26일을 기념일로 정하던가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안중근 의사의 탄신일인 9월 2일을 기리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혹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0월 26일을 기리는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탄신일이나 서거일, 혹은 안중근 의사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하얼빈 의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사형 언도일만을 기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그냥 ‘남들은 다 받았는데 나만 못 받았어 초콜릿’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아니,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70년 전에 망해버린 모 제국이 내린 선고언도일을 기념해야 하는 이유를 필자는 도통 모르겠다.


p.s. 표지의 사진, 일본의 초콜릿 메이커가 만든 광고사진도 아니고, 무려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시에 위치한 'Catholic Health Services'라는 카톨릭 계열의 의료지원단체가 '발렌타인 데이' 기획으로 '건강한 레시피'로 만든 '발렌타인 초콜릿 기획'으로 판매하던 초콜릿 사진이다. 뭐, 그렇다구. 후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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