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오래 되었다.
대한민국의 의료법에 의하면 의료인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助産師)·간호사(看護師)등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 중 의사는 서양의학의 전문가를 의미하고,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한때는 한의사와 비교하여 양의사(洋醫師)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의료인’의 한 분야로, 사람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료행위를 행하는 이로써 적법한 국가 면허를 취득한 사람을 의미한다. 특히, 전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의료이원화 체계를 취하고 있는 만큼, 의료법 상 대한민국의 의사는 치과 의사나 한의사와는 별개의 직업으로 분류된다.
의료법 제2조 제2항 제1호를 보면 대한민국의 의사는 현대 의료와 그 현대 의료에 기반을 둔 보건 지도 및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치과의사는 치과 의료와 구강 보건지도 및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동법 제2조 제2항 제2호)이며, 한의사의 경우에는 한방 의료에 의거한 보건 지도를 임무로 맡고 있는 사람(동법 제2조 제2항 제2호)을 뜻한다. 모두 사람을 치료하고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은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다 같은 ‘의사’가 아닌 셈이다.
의사는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학을 전공, 졸업 후 의학사학위 혹은 의무 석사 학위를 받은 이에 한하여 의사면허 취득을 의한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급하는 면허를 취득한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단순히 의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필자보다 독자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실 테니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고,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의사를 두고 ‘Doctor’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 ‘Doctor’라는 명칭, 도대체 언제부터 의사를 뜻하는 단어가 되었을까? ‘Doctor’의 사전적 의미를 들여다보면 ‘의사’가 아닌 ‘박사(博士)’를 뜻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Doctor’의 어원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고대 프랑스어의 '성직자'를 의미하는 ‘Doctour’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설. 다른 하나는 ‘가르치다’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동사, ‘Doceō’와, 중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면허를 의미하던 ‘Licentia Docendi’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설이다. 오늘날의 경우 후자를 정설로 받아드리고 있는 편이다.
‘Licentia Docendi’는 중세 유럽의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부여된 면허를 의미하는데, 원래는 성경을 가르치는 성직자들에게만 부여되는 면허였다. 이 면허는 원래 신청자가 시험에 합격한 후 교회에 충성을 맹세하고 해당 지역의 교회와 카톨릭 당국에 수수료를 지불하면 취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서기 1178년의 라테란(Lateran)에서 개최된 협의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 이외의 분야에서 유능한 실력과 재능을 갖춘 모든 지원자들에게 시험을 치룬 후 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면서 의사들도 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으나 최종적인 면허 발부의 권한이 여전히 고위급 성직자들에게만 있었기 때문에 논란이 끊이질 않다가, 1213년에 이르러 당시의 교황이었던 인노첸시오 3세(1161년 2월 22일 ~ 1216년 7월 16일)가 파리 대학과 볼로냐 대학에 ‘보다 보편적인 이들의 심사를 거쳐 자격증을 부여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면서 유능한 의사들이 자신의 지식을 후학들에게 사사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사람의 신체는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는 이른바 형이상학((形而上學, 영문: Metaphysics)의 범주로 인식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에 의학 또한 형이상학을 다루는 분야와 그 분야에서 종사하는 이들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시체를 직접 해부하거나 환자의 신체에 메스를 들이대는 일은 따라서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는 고귀한 일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외과를 담당하는 업무는 이발사들이 주로 담당하였고 이는 오늘날의 이발관 심볼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중세의 의사들은 대부분 내과를 담당했으며, 정신과 등의 분야는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종교의 영역으로 간주되거나 미신의 영역으로 이해하였으며, 특히 정신과 분야의 경우 19세기 말과 20세기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기까지 의학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따라서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많은 과학적 성과가 이루어져 사람을 보는 시각이 ‘존재의 근본’을 따지는 것에서 ‘인체를 해부하고 분석하는’ 시도로 변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의사’로서의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전문지식을 갖추었지만 ‘가르치는 면허’를 가지지 않은 의료 종사가를 ‘Doctor’로 부르게 된 것은 18세기 말에 이르러 시작된 것인데, 우두법을 발견하여 천연두 예방 접종의 개척자가 된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년 5월 17일 ~ 1823년 1월 26일)가 최초 사례에 해당한다.
우두법을 발견하여 유럽을 천연두의 공포로부터 지켜낸 제너는 외과의사였던 ‘존 헌터(John Hunter, 1728 ~ 93)’로부터 외과학을 배운 후 개업의가 되었지만,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1773년부터 1798년까지 총 23번의 실험을 거쳐 우두법이 천연두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으나 당시 영국의 왕립 학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실험이 입증되어 프랑스와 미국, 스웨덴, 독일 등에 전파되며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Doctor’로 불리게 되었으며, 결국에 영국 왕립 학회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않았음에도 탁월한 의료 행위를 행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의사들을 세간에서 ‘Doctor’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그 이전까지 ‘의학을 가르칠 수 있는 학위나 면허’를 소지하지 않은 의사들은 영국과 미국에서는 ‘Mister’로, 프랑스에서는 ‘Monsieur’로 불렸으며, 영국에 한해서는 아직도 외과의사들을 ‘Mister’로 다소 폄하하여 부르는 풍조가 남아있다.
뭐, 그렇다구. 후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