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인생사
[비상식적인 동유럽권 버스킹 여행]
그를 만난 것은 호스텔에서였다.
그리고 그를 다시 한 번 만난 것은 버스킹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난 그가 스쳐지나갔는 줄도 몰랐는데 호스텔에 돌아와 보니 그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서너 명이 나에게 인사를 해왔으며, 밥은 나랑 아주 잘 아는 사이라도 된 것처럼 어깨를 두드렸다. 지하 보도에서 버스킹하고 있는 날 봤단다. 어디까지가 사실인 지는 알 수 없었으나, "네 음악을 멀리에서 안 들키게 감상하는 조지아 사람들이 있었어."라는 말로 그는 나를 기쁘게 해줬다. 진짜일까?!
그의 이름은 밥이고 독일 출신이며 벌써 2년 가까이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의 인생역정은 무척 흥미로운 것이었다.
밥,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어?
난 금융계에서 일을 했어. 무척 잘나가는 직업이었어. 벌이가 아주 좋았지. 내 친구들이 다 날 부러워했어. 금융계에서 일하기 위해서 공부도 무척 많이 했지. 한국이 경쟁사회라고? 독일 금융계도 마찬가지야! 일하고 난 뒤에 매일 매일이 전쟁이었어. 출근하기 전에는 금융 관련 뉴스를 정독하고, 읽는 것뿐만 아니라 일일이 기억하고 소화했어.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적용할 수 있으니까 이해하지 못하면 업무 자체가 진행이 안 돼.
난 내 직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 생계의 수단이자, 나란 인간이 얼마나 잘났는지 알려주는 지표에 불과했지. 그러다가 여행의 세계에 오게 됐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를 열 받게 하는 보스가 나를 여행으로 이끌었지! 이제 와서 돌아보면 고마울 정도야. 내 보스는 지금 생각하면 소시오패스야. 그냥 일만 열심히 하면 될걸, 어떻게든 자신의 권위와 일거리를 이용해서 남을 고문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어. 사람이니까 실수를 하는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지옥이었지. 덕분에 일을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던 시기에 시원하게(?) 결정을 내리는 데 무척 도움이 되었어. 사실 일을 그만두고 나서 다시 다른 곳에서 일을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더 이상 이 분야에 발도 들이기 싫더라고. 다 관두고 호주로 떠났지.
(나 : 흠...한국에서만 비일비재한 줄 알았는데.. 어디나 똑같구만!!!)
호주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어?
아름다운 자연과 액티비티?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호주의 물가가 장난이 아니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갖고 있던 돈이 다 떨어졌어. 위기였지. 누구한테 돈을 빌릴 상황도 못 되고.(가족에 대해서 물어보니 자기 가족은 그런 면에 있어서는 매우 냉정하고 돈을 빌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단다. 아들이 이역만리에서 급사하게 생겼는데도 안 챙기냐니까 고개를 끄덕거린다. 도대체 어떻게 된 집안인 게냐!) 급하게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괜찮더라고. 하루에 50만원을 벌었으니까 꽤 괜찮지? (그러나 캐물어 본 바, 불법적인 일이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면허증이 없다는 밥이 트렉터를 몰았다니. 법에 걸리는 일 아냐? 떨리지 않았어? 라니까 돈이 바로 앞에 보이니까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보였단다. -_-)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 내가 금융계에서 그 고생을 하며 번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스트레스도 안 받고 쉽게 벌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지.
그런데 어느 정도 돈이 모이니까 농부 노릇도 그만하고 싶더라고. 하루 종일 거의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는데다가 같은 일의 반복이라 지루했어. 그래서 통장을 체크해 보고 괜찮다 싶어서 다시 여행으로 되돌아왔지.
(트렉터 몰기에 혹하는 경험담이로세. 나도 함 가봐?)
여행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해?
나는 독일에 있을 때 ‘잘 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실패하면 끝장이다’는 압박감이 심했어. 무엇보다 우리 가족은 나 빼고는 독일 사회에서 다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거든. 전문직인 우리 형을 포함해서. 사실 나는 그들에 비하면 그렇게 좋은 직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
그것 때문에 항상 쫓기는 듯한 심정이었어. 실제로도 좀 딱딱하게 살았고. 그런데 여행을 장기적으로 하다보니까 내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 너도 알다시피(나는 1층 침대, 그는 2층 침대였는데 그는 지저분한 수준을 넘어 '저 사람, 물건을 버린 건가?'싶을 정도로 난장판을 만드는 습관이 있었다)내가 좀 지저분하잖아? 그전에는 항상 물건을 각 잡고 정리하는 스타일이었어. 믿기지 않지?
그리고 내 친구들은 거의 결혼하고 애가 있는데, 나는 결혼이나 육아에 거의 흥미가 없거든. 친구들이 육아와 결혼생활로 바쁘니까 나도 물론 그들의 생활을 이해는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많았어. 여전히 그들과 나는 서로의 삶을 걱정하고 챙겨는 주지만 거리가 있고 그 거리를 메우기가 어렵다는 느낌?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비슷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한 친근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지.
넌 주로 어떤 스타일의 여행을 해?
나는 하이킹에 큰 관심이 있어. 산에 올라서 캠핑을 하는 게 가장 즐거워. 야생동식물을 사냥해서 요리하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어. (사냥용 나이프 세트를 보여줌)
사실 그 전에는 나와 함께 하이킹을 다니던 친구가 있었어. 우린 무척 친했는데, 의견이 안 맞아서 싸우다가 그만 소식이 끊어진 상태야. 지금이라도 연락을 다시 해서 틀어진 사이를 바로잡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여태 서로 묵묵부답인 상태지. 지금이라도 연락을 하면 그가 나를 받아줄지 어떨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어. 이미 우리 사이는 끝난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밥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어쨌건 조지아 하이킹을 끝낸 다음에는 미얀마로 넘어갈까 하는 생각이 있어.
최근에 조지아에서 한 일은 뭐야?
페이스페인팅을 하는 마리라는 친구와 함께 공원에 가서 이벤트를 열었는데 그렇게 좋은 결과가 나진 않았어. (그는 버스킹은 페이스페인팅보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열려 있는 편이라며 부러워함) 사실 완전히 실패였어. 무료로 해준다고 했는데도 사람들이 익숙해하지 않아서, 결국 마리는 내 얼굴에 페이스페인팅을 했고, 내가 열심히 달랬는데도 마리는 거의 울먹였지.
버스킹 역시 결과가 좋지 않은 날도 있을 텐데, 그런 거에 너무 신경 쓰지 마. 중요한 것은 단 한 사람이라도 네 음악을 듣고 좋다고 생각을 했다면 그게 성공이라고 믿는 너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