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수천 번의 포옹

지겨울 정도로 포옹 받아보셨나요?

by 위키별출신

[비상식적인 동유럽권 버스킹 여행]


조지아 사람들은 심성이 무척 곱다. ‘착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다. 분노를 표현하고 진상을 부려도 함께 화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를 달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내가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일지도 모르지만(실제로 트빌리시 근처에서 주먹다짐이 일어나는 경우도 가끔 봤으니. 택시운전사들끼리 언성 높이면서 싸우는 광경도)내가 직접 만난 조지아사람들은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조지아의 아름다운 풍경, 저렴한 물가, 유연한 비자 정책, 슬프면서도 이야깃거리로 가득 찬 역사, 물론 여행하기에 흥미로운 조건이다. 하지만 그들의 고운 마음 씀씀이는 조지아를 특히 더 그리워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다.

한국에는 사실상 포옹이 없다. 가족 간에도 신체 접촉이 많지 않다. 친지간의 이별이나 서러운 일, 커다란 성취가 아니고서야 포옹을 권하는 문화가 아니다. 하지만 조지아는 포옹이 흔하다. 만나면 포옹을 하고, 헤어질 때도 포옹을 하고, 미안하고 고맙고 기분이 나쁘고 좋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옹은 빠지지 않는다. 내가 평생 한국에 지내면서 받았던 포옹 숫자보다 몇 백배는 많은 횟수의 포옹을, 아마도 수천 번은 넘을 포옹을, 조지아에서 받았다.

한국에서 만났던 한 포르투갈 작가는 ‘포옹이 없는 나라는 증오가 자란다’고 했었다. 그리고 조지아 사람들이 사랑으로 넘치는 이유는, 그들이 쉽게 포옹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조지아 청년들에게 포옹에 대해 물었을 때 그들은 “우리는 너무 의미 없이 포옹을 하는 일이 많아서 포옹하는 게 좀 귀찮아.”라고 답하긴 했지만, 평생 포옹과 전혀 관련 없이 살아온 나로서는 (10년 지기 친구와 단 한 번 포옹을 했다. 그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조지아 사람들과 나눴던 수많은 포옹이 내 안에 앓고 있었던 어떤 부분을 치유했다는 생각이 든다.

*포옹의 효과?*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포옹은 정신건강은 물론 육체적인 면에서도 큰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 쉘든 코헨 교수 연구팀은 성인 404명을 만나 조사했는데, 포옹을 자주 하는 사람은 하지 않는 사람보다 감기에 걸릴 확률이 무려 32%나 적었다. 즉 감기에 걸리는 것을 막을 만큼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것.
또한 포옹은 심장 건강에도 좋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캠퍼스 연구에 따르면 포옹은 심장박동수를 안정화시킨다. 공포증을 완화하고 불안감을 감소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연구에 따르면 “심리적 실존성을 극대화해 개인의 심리적 위축감을 완화 한다”고. 또한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연구에 따르면 잦은 포옹은 우울증도 예방한다.

조지아 사람들은 언제 포옹을 하는가?
서로 잘 모르는 사이라도 예외가 없다. 오늘 처음 만났어도 일단 포옹을 한다. 만나면 포옹을 하고, 헤어질 때 포옹을 한다. 이때 포옹은 2~3초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좀 더 친해지면 포옹과 동시에 볼에 ‘쪽’키스를 하는데, 소리만 내고 실제로 입술을 볼에 붙이는 다른 유럽지역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진짜로 볼에 직접 입술을 갖다댄다 -_-;


이 때문에 조지아 사람들이 유럽에 가면 재미있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두 명의 조지아 남자가 독일에 놀러갔다가 현지 바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만나자 마자 포옹을 하고 볼에 정말로 키스를 하는 이들을 보고 독일 남자들이 '쟤들은 게이다! 왜 게이들이 일반 바에 오는 거야!'로 오해를 해서 시비가 붙었단다. 조지아 문화가 그렇다고 설명을 해도 믿지 않았다고. “남자끼리 직접 볼 키스를 하는 게 문화인 나라가 어디 있어?”라면서 독일남들은 끝끝내 믿지 않았단다. 그런데 조지아가 그렇다. 길거리에서 5분만 이들을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다.

친해져서 한동안 함께 다녔던 조지아 청년 기오르기. 그 날 오후도 그와 함께 적당한 버스킹 장소를 물색 중이었는데, 누군가 그를 불렀다.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남자와 포옹과 볼 키스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무심코 “누구야? 네 친구야?”하니까 그는 무려 “아,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대답했다. (뭐시라고???) 이후 10분도 지나지 않아 그는 거리에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나 포옹과 볼 키스를 했는데,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얼굴은 아는데 이름은 몰라.”란다. (-_-;;;;)

조지아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갔을 때 실망을 크게 느낀다
사랑으로 넘치는 (그들은 스스로의 문화를 의미 없는 포옹이라 말할지라도)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다보니, 그렇지 않은 다른 EU국가들을 방문했을 때 ‘차갑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 모양이다. 트빌리시에서 만났던 청년 라샤는 “불가리아로 여행 갔을 때 사람들이 차가워서 너무 깜짝 놀랐어. 독일에 갔을 때 역시 사람들이 포옹도 안하고 너무 거리를 둬서 마치 미움 받는 듯한 느낌이었어!”라고 말했고, 또 다른 트빌리시 청년 조지도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에서 요리사로 일했는데 몇달 못 가 우울증에 걸려서 조지아로 돌아왔어. 사람들이 나에게 포옹을 안 해줘서 너무 기분이 우울했어, 혹시 외국인이라 나를 따돌리나 싶었지, 그런데 알고 보니 자기들끼리도 포옹을 잘 안하더라고. 그 사람들은 포옹도 없이 어떻게 살아가지?”


그리고 조지아에 지내는 동안 당연한 듯이 수많은 사람들과 포옹을 하고 지내던 나 역시, 다른 나라(EU국가)에 가자마자 포옹결핍증(?)으로 한동안 마음도 몸도 아팠다. 조지아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조지아가 얼마나 포옹이 흔하고 사람들이 서로를 돕는 문화인지에 대해서 영업하며 지낼 때가 많았다. 한국에서도 포옹이 좀 더 일반적이 된다면 각박한 나머지 높아진 자살률과 서로를 믿지 못하는 풍조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오지랖을 키워주다 나도 엄밀히 말하자면 좀 차갑고 딱딱한 편인 듯한데, 조지아에서 일 년 가까이 살면서 사람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예전 같으면 화부터 내고 소리부터 쳤을 일이,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라면서 둥글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특성은 한국에서 살아가기에 좋은 특성은 아니다. 한국에 돌아와 밝아진 얼굴로 친구들을 만날 때까지는 좋았다. 다들 '회춘했다','분위기가 밝아졌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갈등상황이 되거나 했을 때 이전보다 견디기가 힘들었다. 전투적인 환경에서 태어났기에 내가 전투 에너지가 넘치고 공격적인 상황에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냥 익숙해져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없던 오지랖이 생겼다. 외국인, 불쌍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약간이라도 하고 간다. 조지아 사람의 오지랖이 이제 내 특성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물론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참견만 하고 훈수 두고 남의 인생 방해하고 사라지는 그런 오지랖을 뜻하는 건 아니다.) 선순환 효과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을 사심없이 도와주는 건 개인에게 성취감, 기쁨 같은 걸 주기도 하지만, 그건 그리 크진 않다. 그것보다는 사회 전체에 기여한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도와주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거리에서 만난 익명의 사람들도 어쨌건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힘들 때 누군가가 반드시 도와준다는 믿음을 확인받으면 없던 기운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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