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길거리의 동물들을 보면 그 나라가 보인다.

조지아의 동물들

by 위키별출신

[비상식적인 동유럽권 버스킹 여행]



길거리의 동물들을 보면 그 나라가 보인다.

그리 변변치 않은 여행 중, 희미하게 확신하게 된 것 중 하나다. 길거리의 동물들은 인간사회 안에서 가장 낮은 계층에 위치한다. 인간과는 다르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경찰서에 갈 수 없고, 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잃었다고 해도 급박한 순간에 치료해 줄 의료기관이 없다. 그들에게 설령 불편한 일이 지속되어 이를 바로잡고 싶어도 목소리를 낼 방도가 없다.

그러나 감정은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인간들이 거듭 ‘동물에게는 감정이 없다’는 누명을 씌워도, 그들이 인간과 다를 바 없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과학전문 저널리스트 버지니아 모렐은 ‘동물을 깨닫는다(추수밭 펴냄)’에서 6년 동안 11개국을 돌며 만난 동물들의 강렬한 감정 표현의 순간을 묘사했다. 1965년 신경생리학자 존 릴리는 실험 중 수컷 돌고래가 실험에 동참한 여성에게 강렬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우리에게는 ‘짖는다’로밖에는 들리지 않는 개에게는 1천 개가 넘는 어휘가 있고,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는 텃새인 어치는 ‘깡패’라는 별명답게 자기 음식이 없어졌을 때 다른 어치들에게 도둑이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고래와 소는 지역 사투리를 쓰며, 침팬지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까우면서 인간과 쉽게 교감할 수 있다. 동물에게는 감정은 물론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역색’도 있고, 나름대로 복잡한 언어체계와 이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으며, 나쁜 경험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다.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는 “동물들과 의미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삶을 공유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들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동물학자 제인 구달 역시 “우리 인간만이 고통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유일한 동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감정뿐 아니라 행동 역시 인간과 닮아 있거나 혹은 다르지만 맥락을 같이 한다. 2009년 하와이 신문은 힘들어하는 고래를 도우려고 했던 난쟁이 범고래 떼의 상황을 담았다. 죽어가는 수컷 고래를 둘러싼 고래들은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주려 했고 무려 3주간이나 보살피는 모습을 보였다. 바다코끼리나 향유고래는 서로 협동하며 살아간다. 바다코끼리는 애써 잡은 먹이를 동등하게 나누고, 위험에 처했을 때 함께 공격하고 방어하며, 다른 어미의 새끼를 돌봐주기도 한다. 향유고래는 범고래의 공격에서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동육아’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동물이 감정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2012년에는 한국 수도 한복판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40분 동안 때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구출된 강아지는 두개골이 함몰되고 우측 안구가 돌출되어 있었다니 끔찍하기만 하다. 이외에도 수없이 발생하는 동물학대 사건은 물론, 동물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을 욕하기까지 한다. '캣맘 VS 캣맘 혐오자'로 한국 언론은 대놓고 이를 부채질까지 했다. 이제 그들은 비난받을까 두려워 밥을 몰래 준다. 총체적으로 어이가 없어진다.... 적어도 한국은 동물들이 환영받는 나라는 아니다.

조지아의 유기동물들은 전혀 달랐다.

1. 붙임성이 좋다
이렇게 붙임성이 좋은 고양이들은 처음 보았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곁에 와서 얼쩡거린다. 눈이 마주치면 와서 애교 아닌 애교(지시)를 부린다. , 대뜸 무릎 위에 올라와 ‘여기서 자겠소’고 주장하거나, ‘이곳이 가려우니 긁거라’면서 신체의 일부분을 내밀기도... 약간 경계심이 있는 녀석도 있는데 대부분 5분 안에 친해질 수 있었다.

2.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는 전혀 달리 이들은 사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지아라고 동물학대가 전혀 없겠냐만은, 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나쁜 기억이 많지 않은 모양인지 오히려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경우도 많고 다가오는 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하는 우리나라 유기동물들과는 달리, 오히려 사람을 깔보는(?)듯한 시선이 더 많았다.

3. 동물 팔자 편하도다
더위를 많이 타는 개가 축 늘어져 있으니까 걱정이 되는지 자기 집 안으로 들여보내 주기도 하고, 물그릇을 주기도 한다. 물론 먹이가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기 일쑤인 유기동물들을 보다 못해 자기 돈으로 사료를 사서 나눠주는 사람은 여기서도 여성이 많은 편이었다. 허나 사료를 사서 곳곳에 놔둬주는 맘씨 착한 조지아 남성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조지아에는 커다란 개가 많은데 정부에서 혹시나 물릴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방 주사를 맞히고는 귀에 동그란 녹색 플라스틱을 달아놓았다. 이 개들 역시 ‘소심쟁이’다. 뭔가를 호소하는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쫓아오기도 하고 얼굴 쓰다듬어달라고 킁킁대기도 한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거울 같은 존재가 유기묘/견이 아닐까 싶다. 조지아의 유기동물들은 조지아 사람들을 닮았다. 포옹을 좋아하고 사람을 쉽게 믿는다. 사람만 보면 도망치거나 숨기 바쁜 우리나라의 유기견/묘를 떠올리면서 짠해지는 순간이 많았다. 각박한 사회의 반영일까, 같은 종의 동물인데 왜 이렇게 행동이 다른 걸까? 그것은 그 지역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대우했느냐에 따라 그들의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에 돌아왔을 때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가 길거리의 동물들이었다. 나는 조지아와 유럽에서 하듯 스스럼없이 손을 건네거나 다가갔는데 그들은 컹컹 짖었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으며 내 손을 물듯이 굴었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도망가고, 아무리 음식을 줘도 의심하면서 먹지 않는다. 얼마나 사람들에게 당한 게 많으면 그럴까 싶어 더 맘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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