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적인 동유럽권 버스킹 여행]
조지아의 버스킹 난이도는?
조지아의 트빌리시는 버스킹 하기 꽤 편한 곳에 속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진상을 만날 수는 있다.
1. 민원 당할 가능성이 낮다
앞서 조지아 사람들이 참 천사 같은 면모가 있다고 전했다. 물론 이들도 사람이고,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이중성이 있고, 이렇다고 한 가지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복합적인 면모가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모든 상황에서 마냥 착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버스킹 중 언어폭력 및 신체적 폭력이나 이유 없는 심술을 당할 확률은 사실상 낮다는 점에서는 버스킹 난이도가 낮다.
일단 이 나라에 갔을 때는 한국에서의 버스킹 경험만 있으니 이와 비교해 보자. 나는 한국에서 3년 정도 버스킹을 했었는데, 가장 골치 아팠던 게 민원이었다. 당시 신림동에서 버스커로 뽑혀 시청에서 지정해준 장소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는데, 한 시간도 안 돼 경찰이 들이닥쳤다.
"민원이 들어왔으니까 당장 접으세요."
"이거 시청에서 진행하는 건데요."
"(안 들리는 듯) 당장 접지 않으면 연행할 수도 있습니다. 접으세요."
(혹시 태클 거는 사람이 있을까봐 알려드리자만 시간은 오후 3시, 위치는 상가나 주택가에 떨어져 공원같은 장소였다.)
조지아도 미래에는 이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조지아는 음악을 사랑하는 나라. 와서 "A도 연주하고 B도 연주해 줘. 넌 음악가니까 할 수 있지?" 라면서 나를 고뇌하게 하는 사람은 많지만 시끄러우니까 꺼지라는 사람은 많지 않다.
2. 음악을 사랑하는 국민성
또한 음악을 좋아하는 국민성도 버스킹을 하는 데 최적의 조건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음악에 반응하지, 전혀 모르는 음악에 장단을 맞추는 건 드물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조지안은 자신들이 잘 모르는 음악이라도 호응해주는 빈도가 높으며,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이해도와 사랑이 넘친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연주를 하던 도중 ‘그 악기 내가 쳐봐도 되겠냐’라고 해서 그러라고 하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_-;;
트빌리시 메인 거리에서 연주하던 때였다. 금빛 장발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남자가 내가 연주하는 걸 보고 멈춰서더니 거의 춤(?)을 추는 게 아닌가? 연주가 끝나자 그는 말을 붙였고 우리는 '넌 어디서 왔고 음악을 하냐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라는 단골 멘트들로 대화를 했다. 그리고 그는 '혹시 내가 네 피아노를 쳐 볼수 없겠냐 난 전공은 베이스지만'이라고 해서 그러라고 했는데 웬걸.
그의 연주가 끝나고 나는 "피아노는 어떻게 배운거야? 베이스 전공이라면서 어떻게 피아노를 이렇게 잘 치는 거지?"라고 물었다. 그는 어디에서 수업 받은 적은 없고 그냥 혼자 집에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하하하하.
3. 버스킹을 할 때 서류가 필요 없다.
먼저 복잡한 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으며(가까운 터키는 제출을 해야 한다), 남성/여성 버스커에 대한 차별이 없다(터키 등 무슬림 국가에서는 여성 버스커를 보기가 힘들다. 버스킹을 해도 혼자가 아닌 남자와 함께 함. 얼마나 괴롭혔으면..나도 터키에서 버스킹 할 때 비슷한 일을 겪었다. 괴롭히기도 하고 와서 잠자리를 제의하거나 여자친구가 될 것을 강요한다. )
나의 경우 피아노를 쳐야 하기 때문에 의자를 빌려야 하는데, 한두 번 거절당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흔쾌히 의자도 빌려주고 음악에 호응도 해줬다. 물론 트빌리시에서 동양인 버스커는 온 도시를 통틀어 오직 나 혼자여서 좀 뻘쭘하긴 했다.
4. 버스커의 기본은 '생목'(?)
우리나라에서 버스킹을 하려면 홍대든 번화가든 앰프 없이 공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원 등 주변이 조용한 곳에서 공연을 한다고 해도 앰프 없이 기타나 피아노를 치고 생목(?)으로 노래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연습을 하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간다. 그러나 트빌리시에는 앰프 없이 연주하는 사람들이 많아,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버스커라고 쉽게 인식을 해 준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서 오래 있다보니 조지아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버스킹을 시작할 때는 앰프없이 하는 버스커가 많았다. 그러나 서유럽 등지에서 큐브스트리트를 짠 하고 들고 나타나 Coldplay의 Fix you를 멋드러지게 연주하고 그 지역의 팁을 털어가는 국적불명의 버스커들을 보더니, 이들 역시 앰프를 들고 거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MR버스커도 생겼다.
5. 높은 버스커 수준이 가장 큰 장애물
우리나라 홍대, 이태원은 미안하지만 비교 불가다. 정말 수준이 높다. 음악의 나라다. 정규교육을 안 받았는데도 연주를 잘하는 사람들이 쎄고 쎘다. 버스커다, 스트릿 뮤지션이다라고 나를 소개했다가 쪽팔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재즈도 기막히게 치며, 청음력도 좋고 편집력도 좋고, 앰프 없고 장비가 구식이고 버스커들이 돈이 없고 가난해서 폼이 안 날 뿐이지 실력 자체는 기가막힌 사람이 많아서, 애매모호한 레벨의 나 같은 사람은 어쩐지 자괴감이 든다. 즉, 자괴감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