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적인 동유럽권 버스킹 여행]
어디에서 어떻게 연주해야 할까?
1. 앰프도 없고 마이크도 없으며 오직 악기 하나입니까?
->지하 통로로 가세요. 장비 없이 공연하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나는 주로 지하 통로에서 연주를 즐겼다. 아무래도 닫힌 공간이라 소리가 울려 퍼지기에 앰프 및 기타 등등이 없어도 마치 앰프를 사용한 듯한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거리에서 연주를 하면 여름에는 더워 죽을 것 같고 겨울에는 추워서 한 시간 이상 연주를 할 수 없다. 트빌리시가 따뜻한 동네긴 하지만(트빌리시라는 이름 자체가 따뜻한 동네라는 뜻이다) 겨울바람까지 따뜻하진 않다. 가끔 비도 온다. 지하는 날씨 변수를 막기에 최적의 장소. 어떤 다른 버스커들 중 비가 오건 춥건 덥건 간에 밖에서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들은 기타를 사용하는 이들. 내 장비는 비 맞으면 고장 나기 쉬운 전자장비(디지털 피아노)라서.ㅠㅠ
이렇게 생긴 장소는 모두 울림이 있습니다
2. 그래도 장비가 필요해요. 어디에서 빌려야 하나요?
-> 장비를 빌려주는 업체가 있어요.
물론 장비를 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현재 여러 업체 및 개인이 빌려주는 대략적인 금액은 다음과 같다.
전자 드럼(144라리 : 약 6만 원)
믹서(DJ MIXER TECHNICS SH-MZ1200) :약 8만 원
스피커 (소형 30~40라리부터 시작한다) :약 1만 2천 원
슈어 마이크(콘덴서 마이크도 빌려주긴 하더라...)
이외에 기타도 빌려주니 확인해보자.
물론, 한국처럼 장비 렌탈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지역 특성 및 경제규모 상 장비의 종류는 제한되어 있는 편이다.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일제가 그다지 비싸지 않은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 일제는 고가에 거래되고 있어 렌탈가도 높은 편이다. (흥! 일제를 사랑하는 조지안)
많은 버스커들이 돈이 없는 가난뱅이인 관계로(...) 렌탈업이 발달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스피커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다른 직업이 있어서 아예 앰프를 보유한 케이스로, 젊은 버스커들의 경우 이들에게 잠시 빌리는 대가로 10~20라리(10라리: 4천 원 정도)를 내고 있다. 업체보다 개인에게 빌리는 것이 싸기 때문이다.
3. 이런 건 따라 하지 마세요 : 빗속에서 앰프 켜고 연주하기
서울이나 런던만큼은 아니지만 트빌리시도 종종 비가 내린다. 그런데 동남아처럼 시원하게 오는 게 아니라 찔끔 오고 그러다 보면 또 그쳐 있다. 몇몇 조지아 버스커는 비 오는 상황에서 발전기를 켜고, 거기에 앰프를 연결하고, 거기에 기타를 연결해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심히 위험한 행동이다.
그뿐 아니라 길거리니까 아무래도 소리가 작아서 마이크도 사용하는데 마이크를 집어먹을 듯이 입에 가까이 대고 사용을 한다.(!) 감전될까 봐 보면서 조마조마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는 조지아 국민성과도 좀 관련이 있는데 이 사람들 겁이 좀 없는 편인 것 같다. 수많은 포옹 때문에 길러진 지나친 자존감과 자신감이라고 보인다.(... 포옹도 부작용이 있군) 노트북이나 전자 관련 장비를 사러 다니면서 조지아 국민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핸드폰이 고장 났어? 내가 고치지 뭐!”, “노트북이 고장인가? 내가 고쳐보겠어!”라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것이었다. 기술자가 아닌 이들이 손을 대면 으레 그렇듯 회복 불가의 상태로 A/S센터에 오는 바람에, 엔지니어들은 난처할 때가 많다면서 불평이었다.
마자니시빌리(Marjanishvili, 조지아 트빌리시 내 지역 이름. 우리나라의 용산같은 지역이랄까 전자장비도 많고 첨단 기기도 많이 팔지만 사기꾼도 많아보임) 지역에서 노트북 수리로 5년을 일한 기오르기(35, 기타 치는 기오르기 아닙니다. 과연 전 국민의 50%는 기오르기;)는 “메인보드를 태워서 가져와 놓고 고쳐달라고 하면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되물으니, “한 번도 컴퓨터를 고쳐 본 적도 없고 컴퓨터 수리에 대해서 공부해 본 적도 없는데 힘과 열정만 가지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꽤 많아.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 것도 고치려고 드는 경우까지 있지.
최근에 한 남자가 메인보드를 초기화하기 위해서는 핀을 뺏다가 끼면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모르고, ‘초기화를 해보겠다’며 메인보드에 직접 전기를 흘려보낸 거야. 그렇게 하면 마치 오래된 기계를 한두 번 치면 다시 움직이는 것처럼 초기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대. 그리고는 회복이 안 되니까 나한테 들고 왔어. 이제 그 컴퓨터는 쓰레기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 남자한테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어. 그런데 그 남자의 컴퓨터도 아니고 친구 컴퓨터인데, 자기가 기계에 대해서는 잘 안다면서 고치려 들었다고 하네...-_-
이런 경우가 가끔 있는 게 아냐. 매일매일 있어.”라면서 혀를 찼다.
한 번은 기오르기와 함께 시내를 쏘다니다가 입술에 밴드를 붙인 버스커를 만났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역시나 빗속에서 노래하다가 입술에 감전이 됐다고. 그래서 아직까지도 저리다면서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며칠 전이냐니까 3일 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나는 병원에 꼭 가보라고 했지만 그는 내 말을 귀담아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너희 동양인들은 몸이 약해서 일일이 병원에 가야 하지만 서양인은 튼튼하니까 걱정하지 마."
"......"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른다지만 트빌리시에서 그들의 위험한 행동까지 따라 하지 말자. 빗속에서 전자 장비를 사용하는 건 장비에도 버스커에게도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