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현지 버스커 파푸너를 만나다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지겹도록 그와 만나게 된다

by 위키별출신

[비상식적인 동유럽권 버스킹 여행]



파푸너와 맨 처음 만난 것은 지하도로에서였다. 그는 기타 반주에 맞춰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의 I'm yours를 부르고 있었다. 곱실거리는 새카만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길렀는데 중간쯤에서 고무줄로 반쯤만 묶었고, 한 손에는 모자를 들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동시에 팁 요구도 하는 자유로운 포지션인 모양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기타리스트는 밝은 금발이었고 둘 다 스물 다섯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버리는 쓰레기로 지하도로는 더러웠지만 그 안에서 넉살 좋게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멀리서 한참 그들의 연주를 지켜봤고 음악이 끝나갈 때쯤 팁을 주려고 다가갔다. 파푸너는 마술사가 마지막 마술을 끝내고 한쪽 손을 든 채 허리를 굽히는 우아한 인사를 그대로 재현했다. 모자를 내 앞에 내밀고 한쪽 발을 뒤로 돌리면서 허리를 굽히는 데, 팁의 액수가 적어서 미안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루스타빌리역에서 기오르기를 만난 다음 날이었다. 때마침 똑같은 자리에서 연주를 하려 하는 기오르기와 다시 한번 협주를 하고, 장소를 옮기려는 데 파푸너와 마주쳤다.

"나 너 누군지 알아."

"???? 난 네가 기억이 안 나는 데..."

“저번에 지하도로에서 봤잖아? 동양인은 이 거리에 그다지 많지 않거든.”
나는 팁까지 주고 몰래 쳐다까지 본 버스커의 얼굴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인으로 가득한 거리에서 나 홀로 동양인을 하고 있자면,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에게 다가온다. 하루에 100명도 넘게 만난 적도 있다. 게다가 버스킹을 하고 있으니 더더욱 사람들과 이야기할 일이 많다. 파푸너에게 팁을 준 것은 정말 5분 정도밖에 안되었으니 기억이 안 날 수밖에.


기오르기와 파푸너는 서로 아는 척은 해도 거리감이 있는지 한두 마디를 조지아어로 나눈 뒤 침묵했다. (나라는 매개체 덕분인지, 이후 몇 개월이 지나서 이들은 연주를 같이 하는 사이가 된다. 파푸너는 메인 협주가인 일리야와 헤어지고(?) 기오르기는 여자 친구와 헤어져서.. )아무튼 소개받은 김에 우리는 장소를 옮겨서 함께 버스킹을 하기로 했는데, 기오르기는 도중에 배가 고프다면서 어딘가로 가버렸고, 파푸너와 나만 루스타빌리 역 근처 지하보도에서 연주를 했다. 연주를 하면서 알게 됐는데 파푸너는 악기도 잘 다루지 못하고 보컬도 그리 뛰어나지 않은, 조지아에서는 보기 드문 버스커였다.(....) 천재에 가까운 이들과 협연하면서 자괴감의 펀치를 맞아 왔던 나는 파푸너와 협주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늦은 저녁부터 새벽 1시까지 버스킹을 했고, 파푸너는 나 대신 무거운 피아노 가방을 들어주는 너그러움을 보였다.


그리고 다음 날.

또 파푸너를 만났다. 물론 트빌리시는 작은 도시라서 똑같은 사람을 또 만나고 또 만날 기회가 많기는 하지만 이렇게 세 번씩이나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어제 만난 것과 전혀 먼 장소에서. 그곳은 버스정류장이었으며 나는 여행자의 의무도 다할 겸 전철 타고 버스 타고 멀리멀리 나가서 동네 탐구를 하다가 중심가로 돌아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파푸너는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당연히 만날 사람을 만난 것처럼 일단 포옹을 했다. 이 근처에서 보컬 레슨을 받은 지 일 년이 넘었다는 그는 나의 오늘 버스킹 일정을 물었고 '있다 같이 버스킹 하자'로 결론을 냈다.


이후 파푸너와 친해졌다. 그는 자기 연주 파트너인 일리야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을 때마다 나를 찾았다. 그건 처음에는 주에 한두 번이었지만, 나중에는 내가 그의 연주 파트너가 된 것처럼 매일 같이로 바뀌었다. 그건 일리야의 특징 때문이었다. 일리야는 짧은 금발에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기타리스트였는데, 전형적인 조지안이었다. 그의 약속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약속을 하고 펑크를 내며 펑크 냈을 때 문자도 보내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파푸너는 일리야가 시간 개념이 없다면서 투덜거렸다. 그가 일리야와 팀을 짜서 버스킹을 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그의 실력이 최절정급이었기 때문이다.

(조지아 인들은 약속을 잘 안 지키고 그에 대해서 사과도 안 하기로 유명하다. 이해심이 너무 넓고 깊은 그들. 게다가 휴대폰도 사용 안 하는 사람이 많아서 약속 장소에 안 나타나면 나타날 때까지 주구장창 기다렸다가 한 시간 정도 지난 뒤에 ‘안 오나 보다(....)’하면서 딴 데로 가는 게 일상이다....)




“축구를 못 하게 됐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 성적도 좋았고 장래가 촉망받는 편이었고 축구를 정말 좋아했는데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우울해서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었어.

정말 몇 개월간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주변 사람에게 화도 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됐어. 내가 가장 화가 나 있는 대상은 '나'라는 걸. 그리고 뭔가 새로운 것을 하자고 찾다가, 음악을 시작하게 됐어.”


파푸너가 처음부터 속내를 털어놓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명랑하고 밝고 구김살이 없어 뵈는 청년이었고, 사귀기 쉬운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 뭔가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해도 크게 불평하는 기색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자기주장이 약하거나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않았다. 자신을 보호하고 남과 교류하는 밸런스가 잘 잡혀 있었다. 나와 약간 친하게 된 다음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상대방을 윽박지르거나 실수로라도 기분을 상할 말을 던지거나 한 적도 없으며, 내 피부색을 가지고 놀리거나 실력이 없다고 불평하거나 하지도 않아, 친분을 이어나가기 까다롭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날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일찍 버스킹 판을 접었다. 파푸너가 "일리야네에 갈 건데 너도 갈래?"라고 해서 일정이 별로 없는 백수 이방인은 냉큼 따라나섰다. 일리야네 집에서 놀다가 배가 고파져서 근처의 마트에 들렀다가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어둑한 거리를 함께 걷게 됐다. 파푸너는 발차기를 한두 번 해 보더니 문득 생각난 듯 이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땠을까? 온전히 그것을 포기하고 다른 것을 시작할 힘이 있었을까? 그래도 몇 년은 잃어버린 것을 아파하고 곱씹고 괴로워하며 살지 않았을까? 파푸너를 보면서, 뭔가를 잃어버리고 손해를 봤더라도 그에 집착하지 않는 게 대단한 강점이라는 걸 떠올렸다. 잃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오랫동안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잘못인 건 아니다. 그게 당연하다. 첫 번째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슬퍼하지 않고 곧바로 다음 도전으로 옮겨가는 것. 말하는 건 쉽지만 실천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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