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점 반, 반박할 점 반.
[비상식적인 동유럽권 버스킹 여행]
파푸너의 버스킹 철학은 나와는 좀 많이 달랐다. 그는 앞서 언급했듯 축구에서 좌절한 이후 음악을 시작했는데, 집에서 몇 번 노래를 불러본 그는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무려 일주일 만에!(...) 나는 그 사실이 신기하고 대단했지만, 내 관점에서는 조금은 어이없어 보여 자세히 물어보았다.
“흠....사실 나도 내 실력이 그다지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부족한 점이 많아."
그는 자못 심각해지면서 턱을 괴었다. 파푸너는 기본적으로 가벼움이 특징인 인간이라 진지한 표정을 보는 일이 많지 않아 놀라웠다. 게다가 무려 자기반성까지 한단 말이냐! 갑자기 그가 믿음직해 보인다.
"그렇다면 더 연습을 한 다음에 나오고 싶지는 않았어? 실력이 부족하면 좀 창피하기도 하잖아?"
"물론 그렇긴 하지. 하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하기 어렵군. 예를 들면 어떤 거?"
"완벽할 때를 기다려서 버스킹을 하려고 하면 할아버지가 되고 말 거란 생각 안 해봤어? 물론 나도 버스킹 실력이 출중한 채로 거리에 나왔으면 좋겠지만, 나는 천재도 아니고, 그때를 기다리다간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잖아. 그러면 거리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놓치게 돼.
거리에서는 진짜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어. 하나는 친구들을 만나고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거야. 거리를 지나는 불특정 다수 중에서 내가 연주하는 음악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은 곧 내 친구가 되지. 다른 버스커들이 와서 조언도 해줘. 이런 식으로 노래하면 좋다던가.
둘째는 자신감과 베짱, 무대 감각(?)을 기를 수 있다는 거야. 너도 알다시피 버스킹은 베짱이 중요해. 집에서 아무리 잘 쳐봤자 소용없어. 본 무대, 즉 거리에서 틀리면 사람들은 그것만 기억하겠지.
셋째는 사람들의 반응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거야. 내가 잘하는지 못 하는지, 이 음악이 거리에 맞는 것인지 아닌지 느낄 수가 있지. 청중이 내 스승이 되어 주는 거야. 난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을 선곡하는 것도 버스커의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해. 그리고 내 판단이 옳았는지 알려주는 건 팁이 얼마나 모였느냐야. 그날 많은 팁이 모였다면, 내가 장소 선정을 잘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했고 운도 따라줬다는 뜻이니까.”
“흠... 네가 팁을 그렇게 중시하는지는 몰랐는데? 렌트비 내야 돼서 그래? 일리야가 너희 집 잘 산다던데.”
“우리 집이 잘 사는 거지 내가 잘 사는 것은 아니야. 그리고 내 힘으로 뭔가를 해냈다는 걸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증명하고 싶어. 팁을 너무 적게 받으면 성취가 적다, 오늘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아닐까 생각하게 돼. 운도 있지만, 사람들이 내 음악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거잖아. 아닌 사람도 있지만(팁을 주지 않았어도 네 음악을 즐긴) 기본적으로는 그렇잖아?”
낙천적이고 엉뚱한 편인 파푸너가 이렇게 정리를 잘해서 말할 리 없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두서없이 늘어놓으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정리해 봤다. 그의 철학은 이렇다. (제 철학 아닙니다. -_-;;)
하나, 잘하든 못하든 일단 거리로 나가서 철판 깔고 음악을 해라. 지나가는 거리의 사람들이 너의 스승이 되어줄 것이고, 너의 연주 리스트를 고치는 데 도움이 된다. 버스킹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선곡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아무리 멋진 곡도, 귀에 익거나 유명한 곡이 아니면 사람들은 무심하게 지나친다.
둘, 팁에 목숨을 걸어라(?) 적은 팁은 뭔가 잘못된 버스킹이라는 신호다. 단지 금전적인 이익 때문에 팁에 목숨 걸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팁은 너의 버스킹 질과 레벨의 반영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팁은 너의 성취감에 도움이 된다. 많은 팁이 있으면 좋은 레스토랑에도 갈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적은 팁을 받고 스스로 만족한다는 것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그리고 팁을 많이 받을수록 너는 프로 뮤지션에 가까워진다.
그의 말은 내 평소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나는 어느 정도의 레벨이 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으며, 일정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싫어했기에 홍대 MR 버스킹도 싫어했었다. 또한 팁에 전혀 목숨을 걸지 않았으며 팁박스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이는 조지아에서도 똑같았고 팁박스가 없는 나에게 사람들이 억지로 팁을 줬다;;;; 그러나 나는 예술은 돈에는 초연해야 한다는 기묘한 감상으로, 오늘 받은 팁을 제대로 세어보려고 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과연 좋은 것일까? 그건 내 성장에 좋은 방식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버스킹을 할 때도, 사람들이 듣기 좋은 레벨까지 올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곡을 완성해서 연주하면, 의외로 사람들이 모르는 곡일 때도 있었고 지겨워하는(?) 곡인 경우도 있었다(하도 다른 사람들이 연주해서) 또한 팁을 받지 않으면 이 곡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느낌이었는지 측정할 도구란 전혀 없다. 물론 연주하면서 사람들 얼굴을 볼 순 있지만 그것에도 사실 한계가 있다.
(물론 이견은 있을 수 있다. 그의 버스킹 철학은 조지아니까 가능한 것. 홍대에서 오랫동안 공연을 하고 유명한 팀도 갤러리는 바글바글하지만 팁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좋은 음악을 들으면 반드시 팁을 줘야 한다는 룰이 없기 때문이다. 떼창은 해도 팁은 안 주고 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불만을 품은 적이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행동은 매너가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의 말에 긍정하면서도 그대로 따를 수 없는 나는 뼛속부터 한국인이었다. '잘 하건 못 하건, 음악 하는 사람은 그래도 돈 보기를 돌같이 하고 돈을 위해 연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떨어지지 않다니, 엄청난 예술인도 아니고 무슨 최영 장군도 아니고 왜 이런 생각을 품게 되었을까. 어딜 가나 화장실이 공짜인 우리나라에서 자랐기에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이곳에 적응하기 어려운 것처럼, 팁에 목숨 걸기에는 좀 거부감이 들었다. 게다가 이곳 화폐 가치를 생각하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한없이 모자라지 않은가. (당시 수박 가격이 우리나라 돈으로 1500원 정도였다.)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 이 점이 갭으로 남게 되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는 좋은 '쇼'를 만들어서 팁을 많이 받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 했고, 나는 팁은 많이 받지 않아도 되니 '안 유명해도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잠깐이나마 흔들어 보고 싶어 했으니. 그래도 앞날 생각하지 않는 낙천적이고 즉흥적인 그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강한 주장도 없고 계획도 싫어하는 나의 조합은 약간은 성공적이라, 우리 팀(?)은 어떻게든 굴러가고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