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 망해 호스텔로 도망쳤어요
[비상식적인 동유럽권 버스킹 여행]
그전에 머물렀던 호스텔은 좋은 점이 많았지만, 비교적 좁고 피아노 연습하기에도 불편했다. 게다가 여행 중 눈이 맞아 연애질을 시작하는 무리 때문에 밤중까지 시끄러울 때가 많아 짜증이 났다. 연애하는 것까진 좋은데 새벽까지 자꾸 자는 사람들 다 들리게 술 마시고 크게 떠든다. 이곳에서도 노매너임이 틀림없었으나 주인장은 마음씨가 너그럽기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조라. 그는 검은색 턱수염을 기르고 키가 190cm는 되어 보였으며 틈만 나면 등산하는 산사나이라서 인간사의 분쟁에 대해서는 특히 더 포용적이었다. 그래서 호스텔을 옮기기로 했다..
이번에도 가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이 나에게 쏟아졌다. 내 키보다 커 보이는 디지털피아노 가방을 메고 낑낑대며 등장을 했으니 '여행 중 저렇게 큰 피아노를 들고 다니다니 대단한 음악가가 틀림없다'는 부담스러운 기대가 생길만하다. 물론 나는 재빨리 15분 정도 피아노 치며 공연해서 그들의 열기를 잠재웠다. 물론 앞에서야 휴대폰으로 찍고 대단하다고 찬사를 보내줬지만, 조지아 음악가들의 수준과 비교해 나의 피아노는 어린애 퉁탕퉁탕 정도이기에 아마 예의상 그랬던 것이라 짐작한다. 그래도 그들과 얼굴 보자마자 친해지는 데는 큰 도움이 됐다.
호스텔을 운영하는 여주인은 스웨다, 함께 일하는 여성은 마라였다. 둘 다 이혼녀였다. 극보수(?) 가톨릭인 이 나라에서 이혼이라니!
“조지아는 성에 보수적인 국가야.” 스웨다는 대가 쎄 보이는 밝은 금발의 미인이었는데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나만 보면 자기 나라의 단점에 대해서 늘어놓았는데 '전반적으로 괜찮은데 남자들의 무책임과 여성차별이 문제다'라는 내용이었다. 조지아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성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20년 전까지도 순결을 중시했으며, 지금은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성적인 이슈는 공식석상이나 가족모임 등에서 선뜻 꺼내기 어려운 소재라고.
또한 스웨다는 조지아의 여성인권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고, 심지어는 “한국은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일 거야.”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한국 남자 등 아시아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조지아 여자들이 많다고도 하는 게 아닌가!
“조지아 여자들은 참 괜찮은데 남자들이 별로야. 요리나 청소 등 집안일을 자기 일이 아니라면서 전혀 하지 않아. (내가 한국도 그런 편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니 깜짝 놀라면서 여기 알려진 바와는 다르다고 했다. 아시아 남자들은 집안일에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알았다면서.. 중국이나 그런 거 아니었나....? 그런데 중국녀들 말론 중국남들도 한국이랑 똑같다던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서클인가? 빙글빙글) 또한 그녀는 조지아 남자는 결혼해도 빈둥거리고 일 안 하고 집안일 안 하고 술만 마시고 딴 여자랑 바람만 피우며, 특히 결혼 후 딴 여자를 찾아 떠나거나 바람을 피우는 게 거의 ‘정석’처럼 되어 있어서 유부녀들의 맘고생이 심하다고도 말했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한국 남자들은 그래도 결혼한 이후에 일을 안 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고 열심히 일한다고 말해 주니, 무릎을 치면서 그 점이 조지아 남자에게 부족하다며 한국 남자 한 명만 소개해 달라고 했다. -_-;;;
데이비드(41)는 사업이 망한 뒤 호스텔에서 묵게 된 케이스다. 나에게 근처의 괜찮은 마트라던가 식당을 가르쳐주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는 나쁜 남자(?) 스타일. 그와 스웨다는 꽤 죽이 맞아서 둘은 주방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거실에서 얘기하며 킥킥대는 등 절친 같은 분위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데이비드가 스웨다에게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가 별로 좋지 않다 보니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고 있는 상태였다. 이 호스텔에는 데이비드를 비롯해서 5명 정도의 남자가 장기 숙박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 데이비드의 마음을 알면서 티 날까 봐 숨겨주기 바빴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웨다는 아랍남과 데이트를 하거나, 호스텔 손님 받거나, 아들 챙기느라 워낙 분주해 전혀 눈치챈 것 같지 않았다.;;;
며칠간 숙박하다 보니 데이비드와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그는 자기 인생에서 삼촌이 죽던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면서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5년 전 데이비드는 운전하던 도중 삼촌이 운명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없는 데이비드가 가장 따랐던 삼촌이 세상이 떠났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삼촌이 죽는 순간에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점은 무거운 죄책감이 되어 자신을 짓눌렀다. 이후 그는 무기력해져 사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잘못된 계약을 줄줄이 맺으면서 도산하고 말았단다.
레옹(44)은 데이비드와 성격이 전혀 달랐다. 그는 배려심이 돋보이는 남자였다. 내가 온 첫날부터 우유와 설탕을 넣은 터키식 디저트를 프라이팬 한 가득 만들더니, 호스텔에 묵고 있는 모든 여자들(!!!)에게 나눠주었다. 다음날은 매운 소스로 만든 콩 요리를, 다음날은 양배추와 당근으로 만든 샐러드를....자꾸 뭘 만들어주니 저녁에 들어올 때가 기대됐다. 오늘은 대체 무슨 음식을 만들어 주려나!
레옹은 데이비드와 정반대로 같이 있으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말을 했다. 그 역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욕심부려 두 개의 회사를 함께 운영하다가 1년 전 그만 폭삭 망했단다.
이렇듯 자신만의 가슴 아픈 스토리를 하나씩 안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은 현재 서로 도와가면서 하나의 작은 커뮤니티를 이룬 상태였다. 며칠 뒤 레옹의 생일이라서 사람들이 케이크와 음식을 준비했고 나도 여기에 꼈었다. 레옹은 식사 후 술 마시면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사람들을 껴안았고 끝내 울었다.
그들은 태어난 가족과 달리 자신들이 선택한 가족을 만든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들과 잠시나마 가족이 될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나의 삶과 비교되었다. 인천에서, 서울에서 여러 번 집을 옮겨 다녔지만 옆집 사람과 친해진다는 것은 꿈꾸기도 어려웠고 동네 친구를 만든 것도 손에 꼽았다. 소음 민원이 아니면 얼굴 볼 일도 없는 사회 분위기, 나이가 들고 결혼하면서 만나기도 어려워진 친구들. 이곳에 있으니 오히려 웃고 떠들 사람이 가득했다. 비록 이들은 사업이 망해 집을 얻을 수는 없어 호스텔에서 장기 숙박을 하는 중이었지만, 그들과 있었던 순간이 서울의 작은 내 방에 혼자 있다가 가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보다 더 행복했다. 참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