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취재기 -4-
저번 브런치에서 왜 한국은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요약하자면 역사적, 환경적으로 그러하며 동시에 사적자아보다는 공적자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으면서 집단주의가 강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해서 타국 사람들보다 더 강한 심리적 타격을 받으며, 동시에 사회에서도 실패자들의 재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것도 현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실패를 ‘지나칠 정도로’, ‘병적으로’ 두려워한다고 서술했다.
현재에 대해서는 일단 잘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질문이다. 실패는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다면, 왜인가? 이점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실패가 없으면 성공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번 사람을 관찰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천재도 아니고, 한 번 만들어 본 음악이 갑자기 유명해져 돈방석에 올라 앉는 슈퍼스타도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왕왕 있지만, 그 말이 진실일까, 정말? 아니면 관심을 끌기 위한 거짓말인 건?)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연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실패다. 이왕이면 혹독할 수록 좋다.
관련 연구가 있다. 존스 홉킨스대학교 허츠펠드 교수 연구팀의 실험이다. 이름은 방향 감각 향상 실험. 실험 참가자에게 시야를 왜곡하는 안경을 끼게 한 뒤 눈앞의 잔을 잡으라는 실험이었다. 이때 참가자들은 헛손질을 계속하면서 궤도를 수정, 마침내 잔을 잡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을 통해 연구팀은 ‘우리의 뇌는 이번 실패를 과거 실패 경험과 대조하여 인식하는 과정에서 학습하고 발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 뇌의 가소성을 자극하는 실패를 두려워해서 시도조차 못한다면 당연히 성공도 해볼 수 없다. 물론 이해는 한다. 실패하면 비난이 쇄도하는 사회에서는 웅크리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발전도 없다.
윌리엄 베넷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공의 대부분은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동요하는 가운데 놓치고 만다’라고 말했다. 실패에 잔혹한 사회의 영향으로 구성원인 우리는 안타깝고 슬프게도 실패를 하지 않는 바람직한,그러나 그렇기에 획일화되고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알려진 위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실패의 효용성 하면 꼭 등장하는 사람이 에이브러험 링컨이다. 그의 실패사는 지독하다. 이렇게 많은 실패를 한 사람이 할 수 있겠냐 싶을 정도다. 일리노이 주 의회의원 낙선, 이후 방향을 틀어 회사를 차렸는데 그것도 1년도 안 되어 도산, 26살에는 애인을 병으로 잃고 신경쇠약에 정신분열증에 시달려 27살에는 정신병원에 입원, 주의회 대변인으로 목표를 낮춰 도전했지만 또 실패.
여기까지만 들어도 앞날이 깜깜해 보인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실패가 계속된다. 너무 기니까 이만 생략하기로 하고 어쨌건 그는 계속 내리 실패하다가 당시로서는 인생의 황혼, 51살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과연, 링컨이 51살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편히 쉬기만 하다가 대통령 선거에 나갔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의 성공은 엄청난 횟수의 실패가 그의 뇌에 가져다준 수많은 정보와 경험, 이로 인한 발전의 결과다. 실패가 없었다면 그는 그 자리에 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지금은 세상을 떠난 현대그룹 정주영 역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실패담을 나열하는데, 신기할 정도로 정말 까도까도 계속 나온다. 일본 경제계에서 신으로 일컬어졌던 혼다 소이치로도 “내가 한 일 중 성공한 것은 전체의 불과 1%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세 번이나 파산했던 전력이 있다.
우주로켓기업 스페이스엑스의 창업자이며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 모터스의 일론 머스크는 또 어떤가. 스페이스 엑스의 3번 연속 시험 실패, 테슬라 모터스의 ‘출시’ 실패 등 굵직한 실패는 혼자 다 이룩했다. 먼지봉투가 필요 없는 백리스(bagless) 타입 진공 청소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제임스 다이슨에 의하면 그는 개발까지 5,126번의 실패라는 가격을 치렀다고 했다.
즉 실패는 성공으로 가기 위한 다리의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실패를 거치지 않으면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도 없다. 실패를 했다면 실망할 게 아니라 성공으로 가기 위해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고 즐거워해야(!)하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 실패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구성원들이 마음껏 실패하며 이를 발판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도 제약이 따르고 있다. 즉 사회가 구성원들이 꿈을 이루는 데 방해를 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금문교 공사의 예가 이를 뒷받침한다.
금문교는 1937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는데, 공사 도중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수면 뒤 70m에서 작업하다가 아래로 떨어져 죽은 것이다. 이에 관리자는 안전 그물을 설치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후로는 당연히 떨어져 죽은 사람이 나오지 않았음은 물론, 다리에서 떨어져 그물에 걸린 사람도 없어졌다. 무려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다.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안정감 때문에 작업자들은 쓸데 없이 불안과 공포에 떠는 일이 없었고, 그 때문에 다리도 헛디디지 않았던 것이다.
같은 논리를 우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잔혹하게 대하는 사회에서 사는 한국인들은,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사회 및 국가에 사는 사람들 보다 삶의 질이 떨어진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실패도 더 잘하게 된다. 쓸데없는 걱정으로 뻘짓하다가 실수하게 되는 거다.
이는 스타트업의 왕국인 이스라엘, 그리고 IT와 영화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을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스타트업의 왕국으로도 불린다. 인구는 서울시만도 못한 845만명에 면적도 대한민국의 5분의 1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자율주행, 인공지능, 로봇 분야에 특히 독보적인 스타트업 군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결과에는 실패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스라엘엔 ‘다브카’라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히브리어인데 실패와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정신이 담겨 있다.
이 같은 정신의 반영으로 이스라엘에는 실패한 창업자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정비되어 있는 것은 물론, 창업 성과를 이를 관리하는 공무원의 인사평가에 반영하지 않는다. 본인이 담당한 기업들 중 단 한 개의 성공사례가 없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니, 어디 우리나라에서는 꿈이라도 꿀 일인가.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IT와 영화에서 독보적인 힘을 자랑하는 미국. 그 배경은 실패를 성공으로 가기 위한 관문으로 여기는 관대한 평가가 숨어있다. 실리콘밸리에는 실패 공유 콘퍼런스가 있다. 이름은 ‘페일콘(Failcon)’. 유명 창업자들이 나와서 자신의 실패담을 가감없이 자신있게(!)공유한다. 심지어 소비자에게 외면당한 상품 7만여 점을 전시하는 실패 박물관이라는 곳이 있는데, 관람료가 약 12만 원인데도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실패하면 숨어야 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실패를 적극적으로 하려 드는- 그리하여 성공을 위한 발판을 쌓으려는 사람들의 비율은 극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상황은 이에 비해서…할말하않.
그런 고로, 실패에 대해서 더 까발리고, 더 공유해야 하며, 더 파고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언택트 인터뷰에서 실패한 상황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가감없이 고민한 과정과 그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한 번 해 봤는데 잘됐다’는 성공담보다 훨씬 값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 브런치부터 실패와 그에 따른 개선 및 시행착오에 대해서 설명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