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은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가?

언택트 취재기 -3-

by 위키별출신

여기서 잠깐 멈추고, 내가 왜 실패한 이야기부터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보통 성공담이 박수받고 주목받는데 왜 실패한 이야기부터 꺼내는 걸까?


일단 한국 사회가 실패에 관대하지 못하다는 대전제에 대해 설명부터 하겠다.


한국은 실패를 병(甁)취급한다. 옮으면 안 되는 전염병이나 된 것 같은 시각이 있다. 성공한 사람, 미담은 기꺼워한다. 반긴다.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반면 실패한 사람, 실패담은 멀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발목 잡히고 있다.


일단 한국인이 실패에 관대하지 못한 배경에 대해서 짚어보겠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역사적 배경이다. 환경적으로 가혹하다. 지금도 좋지만은 않지만 과거에는 더욱 먹고살기 힘든 환경이었다. 봄에는 보릿고개로 겨울에는 녹록지 않은 건축양식으로, 여름에는 홍수 가뭄 장마로. 자원도 많지 않고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다. 그뿐인가, 위로는 중국 아래로는 일본이 매번 쳐들어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그런 환경에서 실패란 목숨을 잃는 것과 동급의 명제였을 터다.


둘째는 지나친 경쟁이다. 일단 인구부터 많다. OECD국가 중 인구밀도 1위. 여기에 사회적으로 상위 계급이 되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지가 않다. 사람은 많은데 괜찮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그나마 거기 올라가는 사다리마저 몇 개 없다면? 당연히 경쟁이 박터진다. 실패=재도전 불능의 공식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충분히 현실성 있는 이야기다.


마지막 이유는 집단주의다. 국가별 개인주의 지수(https://www.hofstede-insights.com/product/compare-countries/)에 의하면 대륙의 동쪽, 즉 한/중/일의 집단주의가 유럽과 영미권에 비해 높았다. 미국의 개인주의 지수는 91, 영국 89, 프랑스 71 등이었는데 중국은 20, 일본은 46, 한국은 그 둘에도 못 미치는 18이었다.


3-2.jpg 물론 집단주의에는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이러한 낮은 개인주의 지수 및 높은 집단성은 여러가지로 악영향을 끼친다. 상대방의 인생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참견과 비난이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TMI를 주고받아야 예의고, 상대의 인생에 묻지도 않은 참견을 폭력적으로 행한다. 그래서 실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고, 조그마한 실수에도 질책이 쏟아진다.


그래, 비난도 할 수 있다. 포인트는 ‘쏟아진다’는 것에 있다. 대표적인 현상이 집단 악플이다. 우리나라는 뭐 하나 잘못되었다 싶으면 너도나도 와서 악플을 단다. 정말 정의감에 분노에 차서 악플을 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남들 의견을 Ctrl+C해서 Ctrl+V하는 사람이 많다. 다른 사람이 악성 댓글을 달면 덩달아 다는 행위 역시 집단주의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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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적자아, 다른 하나는 공적자아다. 우리 사회는 공적자아의 비중이 비대하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공적자아는 남이 보는 나의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성취의 기준이 ‘남이 나를 인정해 줬느냐’에 가 있다.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쏙 빠져 있는 경우도 흔하다.

공적 자아의 비중이 높다는 건 다시 말해 남이 보는 내가 중요하다는 것. 때문에 실패를 했을 때 실패 당사자의 심리적 충격 역시 크다. 내가 보는 나의 실패와 남이 보는 나의 실패 중에서는 후자가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다.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평가가 기준이니 상처도 더 혹독할 수밖에. 이를 우리는 집단주의 지수 결과에 의해 쉽게 추론해낼 수 있다. 즉, 유럽 및 영미권에서 실패한 개인이 받는 심리적 충격에 비해서 집단주의 지수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실패에 대해 받는 심리적 충격은 상대적으로 더 클 수밖에.


우리나라보다는 집단주의 지수가 상대적으로 낮긴 하지만, 일본 역시 이로 인해 마찬가지의 일이 발생하고 있다. 레나 모제는 <인간증발>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증발해 버린 일본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일본은 매년 10만 명 정도의 실종 신고가 들어오는데, 이중 8만 5천 명은 파산, 실직, 낙방, 이혼 등 실패를 겪고 사회에서 없어져 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물론 살아 있지만, 그들을 연결했던 기존의 네트워크에서는 증발했다. 즉 사회적으로는 죽은 상태다. 앞서 언급했던 높은 집단주의, 낮은 개인주의, 공적자아 비중의 크다는 점 등이 원인으로 생각된다. 물론 일본보다도 이 분야에서 더욱 낮은 점수를 기록한 우리나라의 경우 당연히 비슷한 식의 사회적 죽음을 맞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슈틸리케의 발언을 소환해 보자. 그는 자신의 재임 기간에 대해 “승률이 70%였으니 (10점 만점에) 7점 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즉 스스로의 평가는 무난한 편이었다. 반면 한국 내에서의 자신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즉, 사실상 한국에서 자신의 평가는 낮다고 말한 것이다. 그가 뭐라고 했냐면, “한국에서 7점은 부족하다. 10점을 받아야 만족한다. 한국은 실패에 관대하지 못하다.”라고 했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BGC의 뷔르크너 회장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그는 한국인의 삶은 ‘직선’이라면서 그 라인을 벗어나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시선, 루저의 낙인을 갖게 된다고 평했다.


관련해서 설문조사도 있다. 2019년에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6세~64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창업 관련 설문 조사를 했는데, 이중 응답자 10명 중 6명인 절반 이상이 ‘실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으며, 절반 이상인 71.8%는 한국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다고도 답했다. 이같은 사회 분위기의 반영으로, 평균적으로 가장 도전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것으로 알려진 20대의 70.7% 역시 도전할 생각 없다는 답을 내놨다. 뭐, 실패에 전혀 관대하지 않은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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