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취재기 -2-

근거있는 자신감과 애매한 패배

by 위키별출신

언택트 취재기 2



근자감은 아니었다. 엄연히 근거있는 자신감이었다. 명사 인터뷰는 100건이 넘고, 경력은 8년이 넘는다. 이 정도면 소재가 어찌됐건, 선천적 재능이 좀 부족하건 말건, 짬밥도 있으니 스킬도 있다. 경청도 잘하는 편이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칭찬도 들었다. “제가 인터뷰를 많이 해 봤지만 이렇게 말이 술술 나오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 기자님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거 말이다. (물론 립서비스일수도 있지만.) 아니면 십년 지기 친구를 대하듯 편하게 상대가 나를 맞이해 준다던가, 정말 인터뷰가 끝난 다음에도 연락이 와서 한 번 보자고 한다던가(물론 사교성이 부족한 나는 가지 않았다. -_- 죄송합니다. 용기가 안 났어요.)


고마운 기억도 많고 과분한 대접을 받은 일도 많다. 물론 그에 비례하듯 문전박대나 기분 나쁜 경험도 생겼지만, 고마운 경험이 압도적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전화로 하든 캠으로 하든, 인터뷰는 인터뷰다. 매일 헬스 센터에 다녔다면 체지방이 줄고 근육량이 늘지 않는가. 능력이란 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수치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맨 처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의 내가 게임에서의 초보자 레벨 1이라면 나 정도면 그래도 중급자레벨, 점수를 많이 주자면 한없이 최상급자 레벨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 아니겠는가?


물론 복선은 있었다. 공포 영화에 간간히 등장하는 느리고 잔혹한 분위기의 음악처럼, 그 전에 전화로 인터뷰했을 때의 상황이 현장만 못했던 지난 날이 떠오르긴 했다. 현장에서 상대의 이야기를 100점을 뽑아낼 수 있었다면 전화의 경우 점수를 많이 줘도 50점 정도. 박하게 주면 10점 정도. 즉 턱없이 다르고 한없이 부족했다. 말만이 정보가 아니다. 얼굴도 표정도 손가락 움직임도 눈을 굴리는 방향도 정보다. 정보량이 적으니 내가 상대에게 정확하지 않거나 적절하지 않은 반응을 할 가능성도 높다.


상대와 라포를 형성할 시간도 부족하다. 상대가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믿어도 되는지, 어떤 얼굴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정보를 줄 수 없다면 어떻게 신뢰를 얻겠는가?


나는 일단 내 패를 먼저 까기로 했다. 사전질의서를 보내는 경우도 있고 안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질의서를 보냈다. 질문의 취지에 대해서도 불필요할 정도로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두었다. 이 정도면 내가 당신의 답을 멋대로 재가공하는 블랙컨슈머같은 인간은 아니라고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드디어 코로나가 터지고 첫 비대면 인터뷰의 시간.

약속한 시간 정각에 전화를 걸었다.

인사를 하고 이번 인터뷰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하고 나니 침묵이 흘렀다.

‘긴장한 게 역력한데…도대체 어떻게 풀지?’

이럴 땐 바로 본론으로 가 봤자 건져낼 게 없다. 나는 신변잡기 위주의 대화를 시도했다. 친근하고 친절하고 친구같은 어조로. 그러나 여전히 상대는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왜 쓸데없이 나에게 이런 신변 잡기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지, 왜 그 전에 준 질문지 대로 질문을 하지 않고???’


이런 물음이 묻어나오는 것 같은, 굳어있고 딱딱하면서도 어찌보면 적의까지 느껴지는 침묵이었다.


당신이 굳어있으니까 풀어주려고 딴 소리를 하는 거야. 라고는 말은 못하고 나는 잠시 그를 안도시키기 위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불신의 벽은 깨지지 않은 듯, 그는 점점 단답형으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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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대놓고 말했다. 지금 전화라서 아마 긴장한 모양인데 그렇게 단답형으로 대답을 해주면 인터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편하게 말을 해달라. 내가 이상하게 기사를 쓰는 사람이 아니고 내 기사는 어디 가면 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시간을 줄 테니까 확인을 해봐도 된다.


그렇게까지 돌직구로 말했더니 상대방이 조금은 방어력을 낮추는 게 느껴졌다. 돌직구에 기분나빠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점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인터뷰가 30분을 넘어가면서 상대도 조금 긴장이 풀려서 답을 조금씩은 해 주기 시작했다.


어찌저찌 준비한 질문대로, 그리고 그의 속내도 조금씩 털 수 있었지만 현장만큼 부드럽게 굴러가진 않았다. 물론 현장이라고 항상 모든 것이 스무스하게 풀리는 건 아니다. 까칠한 인터뷰이, 동문서답 하는 사람, 말을 끊을 수도 없게 딴 소리만 계속 하는 사람, 한 말 또 하는 사람, 나에게 이유도 없이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 내 말꼬리 잡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다루는 것은 녹록하지 않았다. 현장에 간다고 다 쉬워지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이건.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알고 있는 지형이니까 좀 안 보여도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밑에 있는 게 돌부리인줄 알았는데 그냥 모래가 좀 뭉쳐 있는 거고, 개울인 줄 알았더니 내가 잘못 본 거고.


끊임없이 헛다리를 짚고 있는 듯한 감각은 나에게만 느껴지는 것으로, 상대방 인터뷰이는 점차 덜 긴장하게 되고 편하게 말을 하더니, 나중에는 전화상으로도 인터뷰가 끝났다는 데 홀가분해하면서 감사 인사를 건넸다.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못할 건 아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시간 십 분. 하지만 절대 한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적으로는 두 시간 정도 걸린 느낌. 그만큼 상대방을 이끌어 가기 버거웠던 통화였다.


“………..”


분했다. 나는 머리를 감싸고 전화기를 침대 위로 던졌다. 이게 뭐지? 도무지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 실패다. 불쾌하고 찝찝하다.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이대로 계속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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