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모델로 한 거야.”
나는 마리아가 타 준 음료를 홀짝이면서 그림을 쳐다보았다. 마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 그녀는 여러 사람이 믹스되어 있다고 했다. 그 안에는 니노도 포함되어 있을까?
그 호스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니노였다. 녹색 눈동자에 금발 머리카락, 170센티 정도의 키인 그는 멀쩡한 척 하면서 낮에는 손님들을 받았지만, 때때로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하루 이틀 일주일 있는 손님들이야 그의 본모습을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정장에 검은 색 조끼에 페도라까지 쓰고 저녁 8시부터 칵테일을 만들거나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했다. 그러다가 뭔가가 계기가 되어서 무너지거나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했다. 바보 같은 니노. 인간적으로는 불쌍한 니노. 하지만 근처에 있고 싶진 않은 니노.
이 호스텔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사람 중 하나로는 캐나다인 작가 조쉬가 있었다. 어느 날 밤 나와 조쉬와 부차가 맥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다가, 조쉬가 나와 마찬가지로 니노를 거의 실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트라우마나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것이 자기 삶의 과제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는 이 호스텔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을 관리해야 할 책임자의 정신이 그다지 온전하지 못하다면서 그것이 자신의 글의 원동력이자 소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 호스텔에 그토록(그는 몇 달째 머무르고 있었다) 오래 머무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생계를 잇기 어렵다는 것은 만국 공통으로 조쉬 역시 그러했는데, 캐나다 물가를 견딜 만큼의 수입이 없다 보니 러시아, 중앙아시아, 동유럽 등지를 오가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모스크바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물가가 러시아 내부에서는 높을 지 모르지만 캐나다와 비교하면 있을 만했고, 그의 수입은 간신히 백만 원을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캐나다에만 머물러서는 제 생활을 제대로 부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열등감이나 낮은 자존감과는 거리가 멀었고, 돈이 없는 덕분에 자신의 나라 바깥을 다니면서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떠나 있는 동안 조쉬는 여전히 이 호스텔에 머물면서 니노를 관찰해왔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내가 기대하는 것과는 좀 달랐다. 설령 니노가 난리를 치고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자리에 없었다고 해도, 그간 니노를 ‘관찰’하며서 그의 비정상성을 조금은 인식했다면 내 편을 당연히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내게 호의적으로 굴진 않았다. 나와 마리아가 이야기하는 도중, 바깥에서 밥 먹고 온 모양인 조쉬가 돌아왔다. 그는 오랫만에 본 나에게 별로 반갑다는 의사 표시도 하지 않고 마리아와 나와 떨어져 멀찍한 곳의 나무 의자 위에 앉아서 뭔가를 적고 있었다. 그는 때때로 신경질적으로 구는 남자였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아닐까 나는 생각하면서, 날 반겨준 마리아를 놔두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니노와 마주치기 싫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오기 전에 모든 짐을 챙겨서 나갈 자신은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짐을 바리바리 챙겨서 모리스의 집으로 간다는 것도 어쩐지 상쾌한 기분은 아니다.
완전히 누군가에게 엮이거나 속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호스텔이 좋은 건데. 호스텔도 처음과 달리 맘편하지 않았다. 점점 진짜가 보이기 시작하니까. 처음 묵기 시작한 일주일이야 누구든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노력한다. 니노도 나에게 최선을 다했고, 친절하게 굴었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조쉬는… 조쉬는 예외였다. 그는 처음부터 나에게 무례하게 굴었다. 마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니까 내가 그 호스텔과 완벽하게 작별하기까지 끝없이 친절하고 다정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녀는 나에게 한 번도 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어딘가가 구멍이 나 있다.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육체는 그대로일 지언정, 사람과 만남에 찔리거나 파인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부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습지 않은가. 어떤 상처가 있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일관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무너지기도 하고,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되고, 소중한 것을 잃게 되고 말이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혹시 내가 봐 왔던 것은 나만의 상처뿐만이었던 것은 아닐까.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상처와 역사가 있는데, 난 내 것만 바라보느라 한 번도 그들의 것을 조용히 쳐다보려고 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지금 돌아보면 니노는 민폐 중의 민폐인 인간이었지만, 그만큼 또 알기 쉽기도 했다. 과거에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 그는 정확히 뭐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그의 정면 앞니가 약간 부러진 것과,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 것, 멋진 척을 하려고 하는 것, 감정이 널을 뛰는 것, 때때로 사소한 계기로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그가 과거에 어떤 큰 상처를 견뎌 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그의 문제는 알 수 없지만, 증상은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고 침묵이 필요했다. 그러나 스스로는 그걸 몰랐고, 그래서 이곳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의 상처를 후벼팠다. 그 행위가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니노를 뺀 전부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니노에게 충고하려고 하지 않았다. 말해 봤자 통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두 번째는 그에게도 스스로를 ‘낭비’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조쉬는 알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또한 알기 쉽기도 했다. 그가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글을 적는 이유는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상처에 대한 다정한 연민 따위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욕심 때문이었다. 그는 저녁이면 사람들을 모아서 토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그 중에서 흥미로운 사람을 선별하면 그때부터 며칠간 그를 ‘취재’했다. 상대는 아마 그게 취재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상대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여행에 동행하고, 자기 이야기도 하면서 글감을 모으고, 그걸 썼다. 나는 그걸 보면서 그가 사실은 인간에 대해서 어떤 연민이나 동정이나 공감 같은 것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터뷰이는 처절하게 그의 세계 바깥에 있었으며, 그는 초대하기만 할 뿐 개입하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대상 중에는 경제적으로 비참한 상태인 사람도 있었다. 이곳의 물가는 그리 비싸지 않다. 아마 캐나다의 절반의 절반 정도일 것이다. 그가 도우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거리에 돌아다니는 식물을 현미경 앞에 배치하고 사진을 찍은 다음 원래 그 자리로 되돌려놓는 과학자처럼, 피사체에 이끌려 들어가지 않았다.
반면 피사체들은 그에게 이끌렸다. 열과 성의를 다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 행위는 피사체들로 하여금, 저 사람이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에게 많이 집착했던 남자는 ‘민디아’라고 했다. 그는 몇 번 나와 만나 이야기도 했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해리성 정신분열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조쉬가 자신을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고, 다만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조쉬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할 순간을 기다리고 헤아리며 그의 곁을 오래도록 머물렀다. 하지만 이곳은 수도의 중심 중의 중심. 물가가 엄청나게 비싼 터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고, 그는 그저 조쉬만으르 보기 위해 근처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조쉬는 어떻게 반응했냐 하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다른 피사체를 찾아 헤멜 뿐, 무슨 공포를 느끼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멘탈이 강하다고도 할 수 있었고, 동시에 남에게 지나칠 정도로 개입을 하지 않도록 조절을 할 수 있는 강인함인지, 혹은 공감을 하지 못하는 어떤 병을 앓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증명이 되었다. 그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기묘하게도, 남에게 공감을 못하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말이다. 우습지 않은가? 남에게 공명해야 진정 보석같은 자료를 캐낼 수 있는 직업인 사람이, 사실은 공감하는 능력이 거의 없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