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분노와 도피

by 위키별출신

마리아는 아주 인상적인 여자아이였다. 새카만 머리카락, 갈색 눈동자, 스무 살. 앳된 얼굴, 미인이지만 스스로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 사람, 화장 한 번 하지 않던 여자 아이, 대신 항상 붓을 쥐고 있었다.

머리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흔한 투블럭이었는데, 그녀가 하니 그 투블럭은 무척 잘 어울렸다. 그 애는 아주 따뜻하고 친절하고 다정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애의 내면에는 조금도 들어가지 못했던 건 아닐까, 지금은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다정하게 굴었으니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리아는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어느 나라나 그 폭력의 양상은 비슷해서, 아버지는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 10살이 되기도 전에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을 휘둘러 신장을 찌르는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 일 자체는 마리아에게 큰 충격을 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줬던 일은, 자신이 휘두른 칼에 장기를 다쳐 수술까지 받고 집에 누워있는 아이를 상대로 아버지가 다시 폭력을 휘두른 일이었다.


“워낙 맞는 일에는 익숙했으니까, 칼에 찔렸을 때도 별 생각은 들지 않았어. 그런데 병원에 누워 있으니까 아버지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러 왔었거든. 그래서 앞으로는 때리지 않겠구나, 앞으로는 다정한 아버지로 돌아가겠구나 하는 기대를 품었어. 그런데 그 다음에 그가 한 행동은, 왜 사과를 했는지도 이해를 못 하게 만들었어.”


“집에 오자마자 때린 거야?”


“아마 첫 날은 아니고, 다음 날이었던 것 같아. 맞는 바람에 상처가 벌어져서 다시 병원 신세를 졌지. 이번에는 그는 오지 않았고, 그걸 마지막으로 난 집에 돌아가지 않았어. 병원에서 마무리를 한 다음에는 아는 친구 집에 갔지.”


마리아는 호스텔 건너편에서 악세서리 가게를 하는 여자애의 이름을 알려줬다. 마리아가 가끔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어디 가?’라면서 나를 불러세우곤 했었다.


“아 그 다음에 이곳에 온 거야?”


“응. 내 친구도 날 계속 재워 줄 만큼 상황이 녹록하지 않아서. 다행히 이곳 니노가 날 도와준 거야.”


니노…, 니노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 그토록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다니고, 나에게도 민폐와 악영향을, 로빈에게도 당치 않은 비난을 했던 저 남자가 아예 좋은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던, 존재 이유가 없는 악당이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점이 삶의 복잡한 점이었다.


“니노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아, 그게 말이지. 나도 친구에게 밥값은 하고 싶어서 알바를 알아봤는데, 마땅한 게 없더라고. 그래서 저쪽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이 길게 늘어선 곳 있잖아, 거기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 호객하는 거 보이지? 그걸 했었어.”


“….”


나는 그녀의 밝은 말투가 조금 못마땅했지만 잠자코 다음을 들었다.


“니노를 만났는데, 내가 그에게 매달렸어. 니노 얼굴이 맘에 들었거든. 그래서 우리 식당에서 식사하라고 거의 떼를 써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그 다음에도 몇 번이나 그렇게 했어. 근데 순순히 내 말 대로 해주길래 개인적으로 만나달라고 연락했지. 그리고 내 상황을 알게 되더니 자기가 호스텔 운영하고 있으니까 여기 있으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오게 된 거야.”


여기서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어야 했지만, 나는 눈치가 거의 바닥을 기는 사람이다. 그렇구나, 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노랑 같이 있는 게 불편하지 않아? 어딘가 불합리하게 남을 공격하는 면이 있잖아. 너한테도 그러거나 하지는 않아?”


“음, 전혀 그렇진 않아. 니노는 나에게는 엄청 다정한 걸. 물론 이번처럼 맞지도 않은 이유로 남을 비난하는 건 내가 보기에도 문제가 있어. 하지만 내 설득이 잘 먹히지는 않네. 이게 니노 본인에게 마이너스인 걸 스스로도 알아야 할 텐데.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


마이너스이고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는 인간관계를 파괴한다. 비난도 그렇다. 더군다나 그 비난이 근거가 없거나 비합리적이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바탕으로 한다면,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나만 해도 니노를 싫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호감을 갖고 있는 편이었는데, 그가 가당찮은 이유로 비난하고 소리를 지르고 공격을 하니 그가 꼴도 보기 싫어져버렸다. 그가 나에게 잘 해준 게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비난 하나가 전부 다 태워버렸다. 그만큼 파괴력이 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얼굴을 조금 잡아당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의 경우 표현형이 ‘분노’였다. 나의 경우는 ‘도피’다. 더 이상 상처를 받기 싫기 때문에 사람을 밀어낸다. 맥락적으로는 같은 결과를 향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니노는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분노를 터뜨리고, 나 역시 같은 이유로 회피를 시전한다. 회피도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건 아닌가. 나는 니노가 싫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내가 그를 참고해서 나를 돌아봐야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smiley-2979107_1920.jpg 우리가 그렇게 다른 걸까, 아니면 다르다고 생각할 뿐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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