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복수에 관한 소설
저랑 같이 일 안하셔서 모르시나 본데 저는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감각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시간이죠.
시간이요?
그는 찻잎을 우리기 위해 다기를 한 번 더 만졌다. 물을 옮겨담는 상쾌한 소리가 나고, 진한 초록이 미색 도자기 잔 안에 번졌다.
찻잎 우리기랑 똑같은 거죠. 괜히 띄워주지 않아도 돼요. 시간이 지나가는 대로 따르면 돼요. 침묵하면, 그냥 원래 색으로 돌아가요. 굳이 칭찬하면서 기를 세워주지 않아도요.
그의 사진이 투명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지예는 사진에 깊은 조예는 없었지만, 그의 사진에 지나친 기술은 절제되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절제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면, 단순명료한 사진이 여러 점 지나면 그 다음에는 일부러 숨겨뒀었다는 듯 화려한 기술이 적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담백한 성격이 좋았고, 그런 성격이 솔직하게 드러난 일의 결과물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계절이 바뀌고 나서는 함께 사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둘 다 결혼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지예가 먼저 말을 꺼낸 것도 아니었다. 광민은 결혼하고 나면 갑자기 남자 쪽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하는 세태가 싫다면서, 공동명의를 활용하면 굳이 결혼까지 하면서 많은 것에 얽매일 필요가 있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나서 둘의 결론이 일치했다. 톰 요크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웠고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는 결혼하고 나서 불행해지고 이혼하지 않았는가. 사람은 일단 소유했다고 결론 내리면 그때부터 소홀해진다. 그러지 말자고 해도 그렇게 되고 우리는 계곡을 흘러가는 통나무일 뿐이다, 문화와 사회의 영향을 받는 개인은 개인일 수 없다, 사회의 일부인 만큼 그 세태에서의 정상을 반복하게 되고 만다, 그것이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기엔 우리는 아직 너무 젊다, 법적으로 얽히고 나서 마음이 변하고 서로를 비난하는 건 싫다, 그리고 나서 둘은 집을 공동명의로 마련했다.
그렇게 된 데에는 그의 불우한 가족사도 한 몫했다. 들어보니 그는 화목한 집안에서 크지 않았고, 요구와 룰은 많지만 보듬어주거나 위로하는 데는 서툰 부모를 만난 듯했다. 그가 지나온 길의 돌부리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전부 들추어 볼 수는 없었지만, 몇 가지 에피소드들 만으로도 그의 가족들이 그에게 꽤나 부당하게 대해왔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원래 남자아이들은 맞으면서 크는 거지 뭐.
그가 선뜻 그렇게 말했을 때, 그래서 지예는 그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치면서 확실하게 말해줬다.
아니야. 엄마가 그렇게, 쓰러진 애를, 맞아서 바닥에 널부러진 애를 축구공 차듯이 발로 쾅쾅 차는 건 체벌이 아니야.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게 있어서 정상은 어머니가 자신의 배를 있는 힘껏 차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집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줄로만 알고 있는 듯했다. 설득하고 싶었지만 지예에게는 오빠가 없었다. 지예는 주변 지인 중에서 5명 정도를 확보해서, 그런 일은 없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부모가 체벌을 잘 하지 않고, 하더라도 그런 무자비한 방식으로 하진 않았다고.
이상하네, 내 주변에는 그런 애들이 종종 있었던 것 같은데.
누가 있었는데?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승철이라고 있어. 걔는 근데 지금은 연락이 안 돼지. 좀 나쁜 길로 빠졌거든. 건축 쪽에서 일한다고 하긴 했는데, 점점 눈이 이상해지더라구. 술 먹어서 그런 게 아니고, 사람이 변질된달까. 영혼이 망가져간달까.
그런 사람들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