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타빌리 역의 할머니
이번에는 버스킹 이야기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난 버스킹을 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캐리어 두 개와 무거운 디지털피아노를 이고지고 여행을 떠나온 사람이다. 물론 시장조사와 그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 리스트 이런걸 준비하지는 않았다. 그저 가서 어떻게든 해결하리라 하는 무계획한 계획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는 것은 1-4편을 보신 분은 기억하실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떠올리실 수도 있다. 그래! 내 주변에도 비슷한 애가 있어! 그런 사람이 있다면 꼭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분명 나와 통하는 점이!
2017년에 MBC에서 오지의 마법사라는 프로그램을 조지아에서 진행한 적이 있다. 거기서 김태원이 버스킹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에 관해 두 가지를 정리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째는 나는 그때 이미 조지아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방송이 나보다 먼저 방영을 하긴 했지만 이 나라에 눈독을 들이고 버스킹하러 온 것은 방송보다 내가 먼저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냐! 라면 할 말은 없긴 하지만, 적어도 남 보고 따라한 게 아니라는 걸 꼭 주장하고 싶었다.
둘째는 김태원 옹과 나의 버스킹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오지의 마법사 모든 회차를 보지는 못했지만 김태원씨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여흥으로 버스킹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장면을 찍기 전에 사람들과 이야기도 충분히 했을 것이고 어느 정도의 관계 형성을 한 다음에 우호적인 시선이 가득한 곳에서 버스킹을 한 것으로 추측됀다.
나의 버스킹과는 전혀 다르다. 이는 마치 빈부격차, 호랑이와 토끼, 롤스로이스와 자전거와 같은 차이다. 나는 길거리에서 전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노래를 한다. 우호적인 시선과 관심, 관용은 훨씬 적다. 세계 어느 거리가 그렇듯, 길거리는 도를 아십니까와 대출상담권유와 오늘 오픈한 헬스장 전단지가 난무하는지라 번화가를 걷는 사람들은 버스킹을 즐길 여유도 갖지 못한다. ‘저기 먹이가 온다’라고 눈을 부라리는 하이에나들을 피하는 가련한 양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이번에는 잡히지 않는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파워워킹을 하지 않는가.
중심가는 어디나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다만 조지아 번화가의 경우 스타일과 사이즈가 좀 다른데, ‘우리 식당에 놀러오세요’와 ‘나는 가난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일도 할 수 없으니 돈을 달라’는 거지들과 '환전을 해줄 테니 나를 따라오라'는 무서운 아저씨들이 가득하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만나면 무척이나 관용적이고 포용적이며 나에게 많은 음식을 내려주실 혹은 내려주신 조지안들도 파워워킹을 한다. 더군다나 유럽은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건 또 실례라서 버스킹하려고 자리를 펴고 앉아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버스킹을 하면서 투명인간이라도 된 듯한(내 목소리가 작나..? 파워가 나갔나..? 혹시 귀들이 먹었나?) 기묘한 경험까지 할 수 있다.
물론 어느 쪽이 낫냐고 묻는다면 빤히 쳐다보다 못해 ‘그 자리 내 자리인데 넌 왜 거기 있니 어서 비키렴!’이라는 눈빛인가 헷갈릴 정도의 무써운 시선을 받게 되는 것보다야 투명인간이 낫다.
내가 첫 버스킹에 성공한 것은 호스텔을 두 번이나 옮기고 나서였다. 아무래도 연습은 하고 버스킹을 나가야 될 듯했는데, 대부분의 호스텔은 연습하기에 너무 좁은 공간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적당한 호스텔을 찾기 쉽지 않았다. 세 번째로 옮긴 호스텔은 연습에 우호적이었다. 주인장 조라는 자기도 예전에 베이스를 쳤다면서 내가 연습하는 것을 황홀하게 쳐다봐줬으며, 심지어는 호스텔 내에서 작은 음악회도 열어줬다. 호스텔이니 조지아인은 없었고 프랑스, 독일, 우크라이나 남자애 셋이 내 음악에 귀를 기울였고 끝나고 나니 손이 떨어져라 박수를 쳐줬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의 호의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같은 호스텔에 머무는 의리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현장의, 날 것 그대로의 반응이다. 나와 이 나라 사람들은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르다. 과연 음악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어쩌면 단 한명도 반응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좀 두려웠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고 차갑게 스쳐지나가는 것은 연주자에게 더할 나위없는 상처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번 그러다 보면 '무시'에 익숙해지고, 음악으로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 역시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된다. 그런 경험 이후로는 머물러서 함께 떼창해주거나 비디오를 찍어가는 것이 굉장히 감사하게 느껴진다. 한 순간이지만 그들과 나는 연결된 것이니까.
어떤 곡을 선택하고 어디서 버스킹을 해야 할까, 생각에 생각을 거쳐 ‘에라 모르겠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일단 번화가로 나서기로 했다. 한번 해 보면 불안보다는 즐거움이 더 많을 터다. 일단 피아노를 둘러메고 루스타벨리 역 앞으로 향했다. 루스타벨리역은 많은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인데, 현재도 세련된 상점들이 즐비하고 호객 행위로 어지러운 곳이다.
내가 찾아간 시간은 9시 30분 쯤. 호객행위도 드물어지고 전철역에서 나온 사람들은 집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몇 번 소리 체크를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내가 칠 곡은 한국에서조차 유명하지 않은 팝송과 한국 노래다. 이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곡임이 당연하다. 그 어떤 곡을 불러도... 알아들어 줄지 의문이다. Lucy shwartz의 black rose를 시작으로 몇 곡을 불렀다. 듣다가 가는 사람, 잠깐 흘낏 보는 사람. 작정하고 내 옆에 걸터앉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연주하는 내내 볼 수 있었다.
몇 곡이 돌리고 숨을 돌리는 데, 왼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아까부터 나를 유심히 보고 있던 칠순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전철역에 도착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던 듯 직접 만든 것이 분명한 시장바구니를 한 손에 끼고, 첫 번째 곡을 부를 때부터 내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조지아 할머니들은 이전 USSR 출신들이라 그런지 약간 러시아계 할머니들 같다. 다른 말로 대가 쎄고 강단 있고 좀 멋지다. 이 할머니도 나름 풍채가 좋았다. 나보다 키는 좀 작았지만 차돌처럼 단단한 몸매로, 머리가 하얗게 센 채로 염색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가왔고 나는 좀 겁이 났다. 여기서 연주하지 말라고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그저 미소를 지으면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데 혼자 박수를 열렬하게 치는 할머니. 그런데 웃음기가 없다. 혹시 비꼬는 의미의 박수는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팁박스를 찾았으나 그게 없자 내 손을 억지로 펴고 무언가를 쥐어줬다. 그리고 방금 곡이 너무 맘에 들었다고 연신 칭찬을 하면서 떠나갔다.
그것은 50테트리였다.
1라리면 싸구려 빵을 몇 개 살 수 있으니까 조지아 물가로 봐서는 아마 1000원~2000원 정도일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이렇게 나에게 다가와서 직접 돈을 쥐어주는 사람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이 팁은 의미가 있었다. 마치 대판 싸운 친구에게 연락을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마침내 버튼을 누르고, 통화 연결음을 들으면서 '어쩌면 차단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는데, 전화를 받은 친구가 반가운 목소리로 ’이제야 전화하냐, 보고 싶었다!‘라며 이미 용서한 목소리로 응대할 때처럼.
왜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냐고? 이곳은 한국이 아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연주하다 보면 민원이 들어올 수도 있긴 하다. 해외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시아인에 대한 대우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아아주 이미지가 안 좋다. 한국인은 중국인이랑 똑닮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중국인인줄 안다. 게다가 한국인이라는 게 발각되도 뭐가 많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조지아의 소시민은 한국에 대해 무지하다. 그들이 아는 것은 '자판~(일본)’뿐이다.
내 연주실력이 천재적이라면 쫓겨날 걱정은 덜할 텐데, 내 실력은 그다지 좋지도 않으며, 결정적으로 나는 그들의 문화에 무지하다. 문화를 모른다는 것은 그들이 선호하는 노래를 모른다는 뜻도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서적으로 ‘한’이 서린 노래, 구슬프고 드라마틱한 노래를 좋아한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조지안은 멜로디적으로는 좀 플랫한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다지 변화가 없고 음색이 많이 변하지도 않는 그런 곡을..(...) 그래서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다. 인간의 정서와 반응은 문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과거 USSR에 멜로디적 변화가 없는 곡을 좋아하는 문화에서 태어난 할머니가 나의 구슬픈 노래에 열렬히 반응한 건 어째서일까? 역시 음악은 문화적 배경을 조금은 뛰어넘을 수 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