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감

by 현량

나이를 한 살씩 먹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유대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인데도 서로를 잘 모른다는 느낌. 가까워야 할 관계가 오히려 멀게 느껴지는 순간들. 그 안에서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생각해 보면, 세대의 간격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너무 빠르게 변해온 시간 속에서 윗세대와 지금 세대의 삶의 방식은 많이 달랐고, 그 차이가 자연스럽게 관계의 거리로 남은 건 아닐까. 사람은 원래 다양하니까. 내 부모도, 그 다양함 안에 있는 하나의 모습일 테니까. 그렇게 이해하려고, 나는 자주 생각한다.

그렇다면 유대감은 어떻게 해야 유지될 수 있을까. 왜 난 내 부모, 형제와 유대감이 이렇게나 없게 되었을까. 작년 암으로 부모님 두 분 다 갑작스레 돌아가시게 된 후 나와 가족 간의 유대감에 대해 줄곧 생각해 왔다. 어릴 때는 유대감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 이후부터 점점 옅어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유대감이 두터워질 만한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부모님이 가시고 나서 큰 상실감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씁쓸하기도 하다.

유대감이 두터웠다면 어땠을까. 더 슬프고, 더 보고 싶고, 더 아팠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덜 힘들어서 오히려 나은 걸까. 한편 유대감이 깊은 사람들의 감정이 부럽기도 하다. 그들은 근원적인 헛헛함이 덜하지 않을까. 다행히 나는 그 헛헛함을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서 그 공백을 다른 방식으로 채우려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나도 물론 오랫동안 흔들렸다. 뿌리가 약한 존재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주고 버텨야 하는지, 살면서 뼈저리게 느껴왔다.

그래도 빛나던 순간이 있었다. 나의 노력을 지금의 가족이 인정해 주었을 때, 아이들이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갈 때였다. 흔들릴 때마다, 흔들리고 싶을 때마다 나는 가족을 생각하며 버텼다. 그것이 유대감이었는지, 아니면 나 혼자만의 내력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노력하지 않고는 얻어지는 게 없었다. 지금은 내가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주어진 내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끝까지 해 내는 것. 그 마음뿐이다. 그 마음에 이르기까지 분명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취감이나 즐거움은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행복을 강요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행복은 선택사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행복을 선택하지 않고 싶다. 행복하지는 않되,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지점까지 가는 것. 그 과정에서 잠깐의 고통마저 감당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을 행복이라 한다면 부인할 수는 없다. 내가 배우지 못한 유대감을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진정한 사랑은 사막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매일 만들어가고 있는 유대감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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