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력의 정확한 의미는 외력의 힘을 내부에서 저항하는 힘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물리적 원리뿐만 아니라 한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서도 같은 원리가 작용한다.
그런 날이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던 날이었다.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도 적당했던 휴일 어느 봄날, 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이던 그때,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평화로워 보일 뿐, 모든 사람들, 모든 생명들이 치열하게 싸우면서 살고 있다는 것. 아기는 먹기 위해 울음으로 싸워야 하고, 어른들은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 싸워야 하고, 길에 핀 꽃 한 송이도 꽃을 피우기 위해, 나무가 땅 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 태양이 타오르며 빛을 내뿜기 위해 모두가 싸우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경외심이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나는 긴장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내력 저항이 약하다 보니 일단 의심부터 해야 했고 어떤 의도인지 파악되지 않을 때면 물러서거나 침묵했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었고 그때부터 진짜 공부를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 집중했다.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어떤 내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것은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다, 수월하다, 수월하지 않다,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다, 그런 것들과는 다르다. 나를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고 나서 오히려 더 힘들 때도 있었고 더 많이 울었고 더 절망했었으니까 단순한 형용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쉽게 얘기하자면 내적저항값을 키우는 일이었다고 하면 맞을 것 같다. 어쩌면 내적저항값을 키우는 일은 나 자신과의 사투가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내적 저항값을 키웠다고 해서 다 끝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일이었으니 나와 관련된 사람들은 전에 살아왔던 방식으로 대했다. 그럴 때 다시 무너지기도 했다. 다시 달팽이집으로 들어가듯 숨어버리기도 하고 전과 다른 태도로 대하는 것에 대해 놀라거나 충격받은 상대를 기다려 주어야 했다.
참으로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만이 근원적인 해결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언제나 자신이 무엇을 향하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거나, 우유부단해지거나, 가래로 막을 걸 호미로 막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 결국 그 짐을 고스란히 자신이 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기본적인 외력값은 언제나 크다. 거기에 내력이 버텨주지 못하면 결국 무너진다. 무너지고 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내적저항값을 키우고 있는 중이라면 소리라도 내자. 내력이 버티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