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 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보통의 내 나이 또래보다는 많은 일을 겪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가끔 늙어버린 기분, 다 놓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때마다 정신 차리고 안주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동안 제법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본 것 같다. 그만큼 시대도 많이 변했으니까. 20대 시절 회사 사무실 풍경은 지금과 비교하면 믿기 힘들다. 담배를 피우며 일하는 직원들이 있었고, 입에 담기도 힘든 말과 행동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갔으며, 특히 여성들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나중 저 업보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러나 생각하기도 했다.
돈 잘 벌고 못된 인간들이 더 잘 산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 말이 현실적으로는 맞을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사람은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몫의 인생청구서를 받게 되는 시기가 온다고 생각한다. 벌, 이라는 것이 꼭 망하고 피폐해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무엇이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세상이 어떤 것인지, 누구나 피할 수 없이 알아갈 테니까. 사는 동안 끝내 모르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 또한 인생일 테니.
어느 날, 자기 자신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고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 느끼게 되는 순간, 그 감정이 무겁게 내려앉을 때, 그때가 아마 인생청구서를 받기 시작하는 때일 것이다. 새로운 삶,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바로 그때가 기회이다. 죽음 이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생에서의 내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 순간, 그 인생청구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감당하느냐에 따라 다음이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죽으면 그만이지,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동시에 생각보다 길다. 그 길이와 무게는 각자마다 다를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해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결국 인생청구서를 받았을 때 나의 선택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