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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Jan 13. 2022

책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지구 밖 저 너머에 대한 인간의 탐구,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 명왕성 킬러 마이크 브라운의 태양계 초유의 행성 퇴출기>
마이크 브라운
롤러코스터
2021년 04월





경이롭다. '태양계에 더 이상의 새로운 행성은 없다'는 통념을 깨고 새로운 행성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매달려 온 행성과학자 마이크 브라운. 그가 왜 새로운 행성을 찾는 데에 천착하고 그로 인해 세상에, 아니, 이 태양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치열한 시간을 쓴 회고록은 경이로웠다. 단순히 집념 인내 의지보다 그 이상의 어떤, 거대한 표현을 쓰고 싶은 책이었다.


결론부터 말해, 그 노력의 결과로 어떤 일이 벌어졌냐 하면, 제목 그대로 '명왕성이 죽었다'.


광활한 태양계 어딘가에 분명 열 번째 행성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한 마이크 브라운. 까마득하다는, 멀리 있다는 표현으론 전혀 와닿지 않는 거리에 있는 천체를 발견하고, 좌표와 궤도를 확정하고, 구성 물질을 분석하는 등 지난한 시도 끝에 명왕성보다 조금 더 멀리에서 나름의 궤도를 돌고 있는 천체들을 발견한다. 어쩌면 태양계의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던 발견이었지만, '행성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그 천체들은 왜소행성으로 분류되는 동시에, 비슷한 처지의 명왕성 또한 행성에서 왜소행성으로 강등시켜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6년, 그렇게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짐을 쌌다. 태양계의 막내 행성이었던 명왕성은 더 이상 행성이 아닌 왜소행성이 되었고, 태양계는 8행성 체제가 되었다.


마이크 브라운은 새로운 행성 하나를 발견하려다가 원래 있던 하나를 보내버리게 됐다. 그러니까, '새로운 행성을 발견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리려다가 결과적으로 '기존의 행성을 죽인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1930년 발견되어 거의 80년간 태양계 9행성의 지위를 누린 명왕성의 강등과 퇴출을 둘러싸고 오간 옥신각신 논의는 매우 시끄러웠지만, 이러나저러나 이름은 남긴 셈이다. 이걸 '상처뿐인 영광'이라 해야 하나 싶지만, 정작 본인은 행성 발견자라는 명예보다 '행성의 정의에 대한 학문적 신념'에 무게를 두며 태양계의 질서를 바로잡는 길을 택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분투를 읽으며, 도대체 인간이란 존재는 뭘까 생각을 많이 했다. 우주 저 멀리, 멀리라는 표현으론 어림도 없는, 지극히 지극히 또 지극히 먼 미지의 영역을 이토록 치열하게 탐구하도록 하는 동력은 대체 뭘까.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시간 단위는 '년年'이 아닌 '광년光年'이다. 어찌 보면 당대를 포함해 앞으로 몇 세대 후의 인간사에도 관련이 없을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우주일 것이다. 설사 관련이 있다 해도, 그 거대하고 광막한 우주가 관장하는 일에 고작 인간이 뭘 어떻게 참견할 수 있을까. 우주의 원리와 이치를 안다 해도 인간은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에 젖을 수밖에 없는 데도, 굳이 굳이 또 굳이 알고자 탐구하는 그 노력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어쩌면 인간의 욕심에 불과할진대, 그만큼 아름다운 욕심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명왕성에 대한 애도는 차치하고, 인간의 앎에 대한 본능적 욕구가 아름다웠던 책이었다. 저 광대한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에 비하면 지구상 인간들의 분투가 얼마나 부질없는가 싶으면서도, 오직 앎만을 향한 이토록 순수하고 강한 욕구가 있기에 인간사는 앞으로 나아가며 지금의 발전에 이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들이 달리 보인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도, 보이는 것은 그저 구름뿐인 대낮의 하늘도. 저 아득한 너머에 알 수 없는 무엇들이 가득한데, 그걸 이 땅에 발붙인 인간들이 깨금발을 들고 호기심 빛나는 눈으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사무쳐서다. 작고 작은 인간의 노력이 광막한 우주에 닿고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쩐지 앤디 웨어의 <마션>도, 제임스 P. 호건의 <별의 계승자>도 영 없을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심정적 확증(?)이 든다. 그렇잖은가. 지구와 태양 간 거리의 백 배 거리에 있는 천체의 표면이 얼음인지, 메테인인지 그걸 이곳, 지구에서 알아낼 수 있다는 게 도통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 모든 게 사실이라고 하니……  이 '문과 찌끄래기'는 이게 다큐야, 공상과학소설이야 영문 몰라 하면서도 조금 설레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구 밖에 외계인이 있다는 거, 맞죠?(....?)



행성을 날려버린(?) 사람다운 쿨한 표정과 멘트ㅋㅋㅋㅋ(내셔널 지오그래픽 <우주스페셜> 발췌)


너무 귀여운(?) 문장으로 소개된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인터넷서점 소개 페이지에서 발췌)










대체 왜 카론과 소행성 세레스는 행성으로 추가됐지만, 다른 수많은 세레스보다 더 크기까지 한 카이퍼 벨트의 천체는 행성이 아니라는 걸까? 또 크기는 작지만 분명히 둥근 모양인 수많은 천체들은 또 어떤가? 이는 마치 국제수목연맹에서 줄기와 껍질, 잎을 가진 모든 것을 나무로 부르도록 하자고 이야기하면서 오직 오크나무, 단풍나무, 느릅나무 세 가지만 나무라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이상한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올바른 질문을 해야 한다. 나무의 정의를 어떻게 해야 아주 정확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는 나무지만 이 정의에는 정확하게 잘 들어맞지 않는 것들은 어떡해야 하는지.


왜 국제천문연맹은 이런 이상한 짓을 했을까? 나는 그들이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 강력하게 사실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위원회의 결정 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내가 만나본)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 내 나름의 가설이 있었다. 나는 국제천문연맹이 명왕성을 계속 행성으로 유지하고 세 개의 새로운 행성(제나, 카론, 세레스)을 추가하기로 결정한 것이 별로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이제 태양계는 열두 개의 행성을 갖게 됐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행성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최초의 과학적 정의라는 것이 언론에 보도된다면 분명 명왕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만족할 것이고, 그 누구도 충격을 받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338-339쪽 / 12 아주 많이 사악한 사람 중에서)




나는 기자들에게 이제 투표 결과에 따라서 굉장히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으며, 상황에 따라 명왕성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질지 설명해주었다. 마침내 질문이 하나 들어왔다. “당신은 명왕성이 행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한숨을 쉬었다. 행성을 발견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건 분명 소름 돋을 만큼 좋은 일일 것이다. “아뇨.” 나는 대답했다. “명왕성은 행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나도 마찬가지죠. 1930년 명왕성이 처음 발견됐을 때는 그것을 부를 만한 다른 좋은 방법이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명왕성이 해왕성 너머 궤도를 돌고 있는 수천 개의 천체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투표는 1930년에 있었던, 사정을 봐줄 수 있는 실수를 다시 바로잡는 투표가 되어야 합니다. 아홉 개의 행성에서 여덟 개의 행성으로 바뀌는 것이 과학이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351쪽 / 12 아주 많이 사악한 사람 중에서)




하지만 마이크 브라운의 새로운 행성을 찾는 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계속해서 아직 탐험하지 않은 암흑 속에서 새로운 행성이 걸리기만을 기다리며 그물을 펼쳐놓고 있다. 마이크 브라운이 지금까지 발견한 태양계 최외곽 소천체들은 아주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돌면서 해왕성 궤도 근처까지 접근한다. 이런 천체들을 해왕성 근접 천체(TNO, Trans-Neptunian Objects)라고 한다. 이 TNO들은 태양에서 지구보다 무려 100배, 200배 나 더 멀리까지 뻗어 있는 거대한 타원 궤도를 그린다.


그런데 지금까지 발견된 TNO의 궤도 분포에서 마이크 브라운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태양계 최외곽 소천체들이 그리는 궤도가 모두 한 방향으로만 몰려 있던 것이다. 타원 궤도를 그리는 천체가 태양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지점을 근일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태양계 가장 바깥 TNO의 궤도 근일점이 모두 한쪽 방향에 몰려 있다는 뜻이다. 이건 굉장히 어색하다. 태양계 가장자리 소천체들의 궤도가 단순히 우연에 의해서 지금처럼 쏠려 있을 확률은 겨우 0.007%뿐이다. 사실상 이건 거의 불가능한, 아주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이크 브라운은 이것이 TNO들의 타원 궤도가 쏠려 있는 정반대편에 아주 무거운 거대한 행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지구의 열 배 정도 되는 육중한 행성이 다른 TNO들과 정반대로 길게 뻗은 타원 궤도를 돌고 있다고 가정하면 지금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재현할 수 있다. 재미있게도 원래 아홉 번째 행성으로 불리던 명왕성을 쫓아낸 장본인이 다시 새로운 진짜 아홉 번째 행성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다. 마이크 브라운은 태양계 행성으로 구슬치기를 하는 기분이지 않을까?


여전히 다른 많은 천문학자들은 태양계에 있는 거대한 행성들, 주요 천체들은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발견해봤자 그저 시시한 조그만 소천체들, 부스러기 소행성들일 것이고, 새 행성이 발견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라 단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이크 브라운이 보기에 태양계의 지도는 완성되지 않았다.

(413-414쪽 /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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