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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Jul 26. 2019

책 <카탈로니아 찬가>, 역사에 대한 환멸과 먼 희망.

우리는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 나아가야 한다.





파시즘이 인간을 지배하려 할 때 세계가 어떤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지를 1차 대전에서 목도한 조지 오웰은, 파시즘 세력의 쿠데타로 인한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참전을 결심하게 되었다. 인간 가치를 말살하는 파시즘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막고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결단이었다.



하지만 파시즘을 격파한다는 결의에 찬 의욕도 잠시, 그는 곧 환멸과 회의감에 휩싸이게 된다. '양떼보다도 못한 대오정렬 수준'의 의용군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된 전투는 없었거니와 파시즘에 대항해 혁명을 이룩하고자 하는 정당과 노동조합들은 그들끼리의 이념대립에만 몰두했기 때문이었다. 명분 대신 잇속이, 의기투합 대신 이합집산이 판을 쳤다. 결국 내전을 통한 혁명이 실패하고 프랑코가 독재정권의 목적을 이룬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찌보면 우리의 전후 현대사와도 비슷한 시절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협정 이후 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좌익과 우익의 극심한 이념대립 이후 이승만이 장기간 독재정권을 잡았던 우리의 역사. 이같이 이데올로기 다툼이라는 틀에 갇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건 비단 우리나라와 스페인 뿐만이 아니다. 시기와 형태만 다를 뿐이지 그 허무한 본질을 가진 비슷한 전쟁은 인류 역사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고, 조지 오웰은 이처럼 반복되는 역사에 심한 환멸을 느꼈다. 그는 그 기록을 <카탈로니아 찬가>로 남겼고, 이후에 쓴 <동물농장>, <1984> 등의 작품에서도 대체로 전체주의와 이념 대립에 반대하는 논조를 볼 수 있다.



문득 스페인에서 보았던 풍경들을 떠올린다. 바르셀로나 뒷골목 산 필립 네리 광장의 커다란 포탄 자국들, 그리고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에 걸린 피카소의 '게르니카'. 이베리아 반도에 쉽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나아가 2차 대전 발발의 여지를 주었던 스페인 내전의 흔적들이다. 그 모든 일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고민하고 고뇌해야 한다. 조지 오웰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어제도 오늘도 뉴스를 보며 혀를 찬다. 어쩌면 우리의 실수는 영원히 반복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어쨌든 이것이 그들이 우리에 대해 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트로츠키주의자, 파시스트, 반역자, 살인자, 겁쟁이, 간첩 등등이었다. 솔직히 기분 나쁜 일이다. 특히 그런 일을 자행하는 자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들것에 실려 전선을 내려오며 모포 사이로 눈부신 듯 바깥을 내다보는 하얀 얼굴의 열다섯 살짜리 스페인 소년을 보면서, 이 소년이 위장한 파시스트임을 증명하는 팸플릿을 쓰고 있는 런던이나 파리의 말쑥한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88쪽)



나는 스페인에 대해서 매우 나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스페인 사람에게 정말로 화를 낸 기억은 두 번밖에 안된다. 그 두 번도 모두 나의 잘못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관대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그들은 20세기에 속하지 않는 고귀한 종족이다. 이 점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파시즘이라 해도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견딜 만한 형태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스페인 사람들 중에 현대 전체주의 국가가 요구하는 지독스러운 효율성과 일관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285쪽)



내 역할에 무력함을 느꼈던 이 전쟁은 나에게 대체로 나쁜 기억만을 남겼다. 그러나 전쟁이 없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런 참사-어떻게 끝이 나건 스페인 전쟁은 살육과 신체적 고통은 별도로 하고라도 경악할 만한 참사였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를 잠깐 보았다고 해서 꼭 환멸과 냉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경험 전체를 통해 인간의 품위에 대한 나의 믿음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졌다. 내가 한 이야기가 사람들을 오도하지 않기 바란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완벽하게 진실하지도 않고 또 진실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확신하기 힘들며, 모두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당파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게 된다. 혹시 앞에서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지금 말해 두겠다.나의 당파적 태도, 사실에 대한 오류, 사건들의 한 귀퉁이만 보았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왜곡을 조심하라. 또한 스페인 전쟁의 이 시기를 다룬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똑같이 조심하라.

(294-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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