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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Aug 13. 2019

새벽녘의 인천공항

영영 못 볼 일도 아니건만은, 어쩐지 쓸쓸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어서.






오빠는 내게 늘 다정했다. 내가 하는 말이면 꼭 들어주었고, 어떤 판단을 쉽게 뒤집지 않는 대쪽같은 성격에도 내가 다른 말을 하면 꼭 한 발 물러서곤 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조금의 생색도 내지 않고 그 자리를 채워주던 것도 오빠였다. 그런 오빠는 나를 보면 항상 안아주곤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 나이만큼 들어서까지도, 오빠가 안아주는 품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흔히들 '남매란 남보다도 못한 사이라 남매 아니냐'던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오빠 동생 사이가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하곤 했다. 나는 그 때마다 나도 모르겠다며, 오빠가 못난 동생을 다 이해하고 품어준 덕분 아니겠냐며 웃었다.



그런 오빠가 한국을 떠나는 날이었다. 4년이라는 시간은 짧으면서도 길다. 네 번의 신정과 세밑, 네 번의 설과 추석, 네 번의 크리스마스, 네 번의 생일을 건너야 돌아오는 시간. 나는 그 시간들을 같은 하늘 아래 오빠가 없는 채로 무엇에 기대어 살 수 있을지 스스로의 심지를 의심했다. 한 가족이 일궈온 삶의 터전을 바다 건너로 옮기는 일에는 갖가지 서류를 동반한 복잡한 준비들이 필요했고, 많은 일들을 차근차근 해내느라 그 의심을 두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출국일이 왔다. 잡아놓은 날은 눈 깜빡할 새에 온다더니, 짧은 달력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새벽의 공항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어디로들 그렇게 떠나고 돌아오는 걸까. 이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나같이 섭섭한 심사를 지닌 사람이 있겠지 생각하니 어설피 위로가 되는 듯도 했다.



짐을 부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출국 수속 카운터의 컨베이어 벨트에 몇 개의 무거운 이민가방을 올리고 나니 몇 십 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딸린 아이들이 셋이나 되어 패스트트랙 수속까지 밟고 나니 벌써 출국장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곧 애틀랜타행 비행기에 오를 다섯 식구와 인사를 나눴다. 이제는 올케언니라는 호칭이 어색할 만큼 친언니나 다름없는 언니, 고모를 끔찍이도 생각하는 첫째, 언제나 수줍은 말끝으로 고모를 부르는 둘째, 황소고집을 피워 고모에게 많이도 혼났던 막내 셋째까지. 그리고, 오빠.



오빠가 걱정할까봐 웃는 낯으로 인사하려고 했는데, 울더라도 다섯 식구와 헤어지면 울려고 했는데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오빠가 안아주자마자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터졌다.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놓고 돌아선 오빠는 내도록 훌쩍이는 나를 보더니 두어걸음을 다시 돌아와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번엔 정말 안녕이었다. 오빠는 패스트트랙 검색대의 자동문이 닫힐 때까지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늘 나를 걱정했던 오빠는 여전히 걱정 그득한 낯빛이었다.



영영 못 볼 일도 아니건만, 어째서 마음이 이리도 약해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나약한 마음을 책망하며 북적이는 공항에 좀 더 머무르다 서울로 향하는 길, 이륙 20분 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아까 고모가 울길래 괜찮은지 전화해봤어." 라던 아홉살 첫째 조카. 조금 슬펐지만 이제는 괜찮다는 내 대답에 그 애는 "그래, 아빠는 고모의 오빠니까 슬펐을 거야. 고모가 괜찮으면 됐어." 라고 말했다.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는 고모를 위로하는 듯 담담한 투였다.



영종대교를 지날 때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막 공항에 내리려는 듯 고도를 낮추는 비행기가 흐린 하늘 저 편을 가로질렀다. 공항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떠난 자와 남은 자의 심사를 헤아리지 않은 채 무시로 지나는 비행기들이 몇 편 더 보였다. 무심하게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에게 이 삼십년이 넘는 세월의 애틋함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답 모를 궁리 속에 걱정과 염려를 감춘 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휴대폰 바탕화면에 한국보다 13시간 느린 플로리다의 시계 위젯을 설치하고 창밖을 바라봤다. 무더운 한국의 여름, 짙은 녹음 속에서 플로리다의 시간을 확인했다. 7월 31일 밤 8시 33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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