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으니 펴내는 수밖에!" - 멍석을 말아쥐고 시작한 독립출판 도전기
작년 시월, 브런치의 잔치가 열렸다.
두 달 후 열 편의 대상작을 발표하며 화려하게 마침표를 찍은 브런치의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그것. 브런치는 잔치를 열며 누구나 합석(?) 가능한 멍석을 깔아 주었지만, 역시나 나는 내 멍석이 마법의 양탄자가 되는 기적을 맛보지는 못했다.
어줍잖은 독서인의 얄팍한 시선으로 요즘의 출판 트렌드를 보고 있자면, 에세이의 대항해시대는 (아주 천천히) 저물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에세이라는 분류는 이미 폭풍같은 항해를 끝내고 항구에 정박해 밧줄을 걸며 차분한 수요와 잔잔한 공급의 시대로 들어간 듯 했다.
여러 장르 중에서 폭발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던 에세이의 자리는 이제, 제7회 브런치북 대상 작품들의 면면처럼 전문 분야와 실생활 간에 밀접한 무엇을 끌어내어 계발에 닿을 수 있는 지점의 책들이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출판사들이 출판의 위험(?)을 감수하며 선호하는 장르로서는 말이다. 그런 트렌드 속에서 개인적인 서술이 주된 나의 글이 주목받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리라. (상술한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또한 여기서의 '에세이'란 '주로 개인적인 감정과 느낌에 기반한 개성적인 글'을 의미합니다.)
그 잔치가 내 잔치가 아니었다고 해서, 머쓱하게 멍석을 말아들고 집으로 돌아가기는 아쉬웠다. 나는 학창시절에도 축제니 체육대회니 하는 왁자지껄 시끌벅적한 행사가 끝난 뒤, 휑한 쓰레기만 부스스 날리는 운동장을 넋놓고 바라보며 지나간 시간을 곱씹는 애였으니까. 스스로 진단한 요즈음의 트렌드와 다른 브런치 작가들의 '글빨'을 볼 때 나는 이미 '저는 글렀으니 먼저 가세요…' 모드가 되었고, 그렇담 이 멍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한 끝에 '인생이란 마이웨이렷다'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브런치가 안 내주니 내가 내야지.
별 수 있나? (당당)
사진은 해방촌의 독립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의 워크룸 입구
그리하여 '나혼자다하조'의 독립출판 도전기가 시작됐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나는 브런치북 결과 발표가 나기 한 달 전인 11월 말, 눈여겨 보았던 독립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의 책 만들기 클래스를 신청했다. (포기가 빠른 자는 시작도 빠른 법이다)
1월에 시작한 클래스는 4주 과정으로, 클래스를 비빌 언덕 삼아 4주만 어떻게 잘 지내면 책이 '뿅'하고 나올 줄 알았다.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단순한 말 앞에 숨은 '노동을 갈아넣으면' 이라는 조건을 망각했던 자의 4주간이란… 거친 편집과 불안한 디자인과 그걸 지켜보는 전쟁 같은 속앓이 그 자체였다.
'나혼자다하조'의 고됨은
학사졸업과 함께 이별한 줄 알았는데…
원고, 편집, 디자인, 인쇄, 기타 업무까지 모두 혼자 해야 하니 모든 일이 걱정이고 고민이었다. '이걸 다 어떻게 혼자 하란 말이야?' 투덜대며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그걸 혼자 해낸 독립출판인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니 이 독립출판의 세계에서는 아무 핑계도 용납되지 않았다. 서울만 해도 몇 십 곳은 되는 독립서점을 꽉 채우고 있는 수많은 독립출판물들이 있는 판국에 고작 책 한 권을 만들면서 못하겠다고 뻗어버리는 건 말이 안됐다.
게다가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이제는 브런치까지 떠돌며 글을 써오면서 언젠가는 내 책 한 권을 엮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한 것이 벌써 몇 년이었으니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누구도 읽지 않고 누구도 찾지 않더라도, 부족하나마 글을 쌓아온 나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자 선물로써 출판을 꼭 해내고 싶었다. 살면서 그렇게 읽고 써왔으면서도 '나만의 지면紙面' 하나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곤 했으므로.
'브런치가 안 내줘서 내가 냈다'고 '어그로'를 끌어봤으나, 사실은 브런치에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브런치의 브런치북 시스템이, 공모전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도, 언젠가는 출판을 해야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스스로의 미심쩍은 실행력에 질척대고만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하여, <나도 모르는 내 이야기>를 펴냈다.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도통 입밖으로 내지 못했던 내가,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아 눌러붙은 기억과 감정의 부스러기를 긁어내어 비로소 내 이야기를 바깥에 터놓았다. 글로 풀어낼 때에야 나도 몰랐던 내 속내를 새삼 알고,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때론 슬픈 마음으로 때론 기쁜 마음으로 써내려 갔다.
<멀고도 가까운>의 저자 리베카 솔닛은,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다른 이의 귀에 닿지도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192쪽) 라고 썼다. 나는 이 책을 엮으면서 이 구절이 뜻하는 바를 온몸으로 체득했다. 너무나도 작고 조용한 틈에 숨겨 두었어서 차마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나도 몰랐던 나의 이야기들을 꺼내어 엮었다.
마음 속에 꽁꽁 숨겨둔 자신만의 집이 있는 사람에게, 그 집의 문이 너무나 단단히 닫혀 있어서 쉽게 열지 못하는 이들에게 한 문장이나마, 작은 문단이나마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도 모르는 내 이야기> 서지 정보
제 목│나도 모르는 내 이야기
글쓴이│김혜리
분 야│에세이
판 형│119mm * 180mm
출간일│2020년 2월
페이지│168쪽
가 격│1만원
저자 소개
김혜리. 마음의 깊은 심연에서 긁어낸 부스러기를 모아 쓰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nayeriii
책 소개
대체로 폭풍우 같은 감정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지만 때론 삶이 기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는 것이 버겁고 힘겨웠지만 때로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새삼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마냥 좋기만 한 삶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기에, 또한 누구나 저마다의 짐을 지고 외길을 걸어 나가야 한다는 삶의 정률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있기에 엄살을 피우지 않으려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이 책에 실은 글에는 그 마음들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내 이야기> 구입처
아래 서점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 서점의 온라인 스토어로 이동합니다.
스토어에서 책의 목차 및 상세 정보를 확인하고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